알튀세르에게는 어떤 평등한 환경을 조성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에티엔 발리바르)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알튀세르를 처음 만난 것은 1960[발리바르가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해]이다. 발리바르가 펴낸 최근 저작들로는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Galilée, 2012)La Philosophie et Marx(rééd. La Découverte, 2014) [초판은 1993년에 출간. 국역: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문화과학사, 1995)]가 있다.

 

 

- 당신이 1965년에 참가했던 그 세미나의 분위기를 좀 말씀해 주시죠? [그 세미나의 성과물이 바로 알튀세르, 랑시에르, 발리바르 등의 공저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이다.]

 

발리바르 : , 벌써 50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네요. 이제 그건 하나의 고고학적 흥밋거리에 불과하다는 게 논리적 결론이 될 텐데요. 청년 세대를 포함해 전 세계에 많은 󰡔자본을 읽자󰡕 독자들이 있다는 걸 실감한다면, 그 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에 행해진 그 세미나에서 알튀세르는 어떤 평등한 환경을 조성하고 학생들의 지적 욕망과 능력을 고무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알튀세르가 철학과 정치에서 상당히 앞서 있었지만요. 알튀세르가 꾸린 그 학생 모임은 철학과 인문학에서 하나의 혁신을 함께 일궈내려는 욕망으로, 또 마르크스주의가 처한 막다른 골목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구출해내려는 의지로 고무돼 있었습니다. 어떤 새로운 혁명적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때에 그 역사적 위력을 행사할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재발견한다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부가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랑시에르가 쓴 것과 제가 쓴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비판철학적) 이해에 속한다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과학적(실증주의적콩트주의적) 이해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들은 정치적 지향에 의해 과잉 규정된, 모순적인 산 노동의 흔적인데요. 이 알튀세르파 모임은 꽤나 일찍 분열했습니다. 그 일원들은 여전한 우정 속에서도 그 관계에서 긴장된 국면들을 여러 차례 거쳐 왔습니다.

 

 

- 󰡔마르크스의 철학󰡕(1993)이 최근 재판됐는데요. 거기서 당신이 환기한 알튀세르의 장소론적 역사 이념이 무슨 의미인지 말씀해주시죠.

 

발리바르 : 그것은 그 당시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결합하는 독창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이데올로기와 정신분석학적 의미의 무의식이 가지는 상관성이라는 물음에 답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문제 제기를 금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알튀세르에게 유물론적 장소론 통념은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헤겔식 역사 철학의 유산, 다시 말해 내적 변증법을 통한 모순들의 해결로서 그 종점/목적으로 향하는 인류와 문명의 필연적 진보의 이념을 영속화하는 것에 대립하는 것입니다. 계급 투쟁의 역사와는 다른 역사들”, 즉 여성 해방이나 섹슈얼리티, 언어, 문화의 평등을 위한 투쟁 같은 것들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심급들(곧 역사를 만드는 실천들 내지 동력들)이 갖는 차이는 결코 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당신이 󰡔알튀세르를 위하여 쓴 글들󰡕(Écrits pour Althusser, La Découverte, 1991) [여기서 실린 글들은 다음과 같은 한국어본에 나뉘어 번역되었다. 서관모 옮김, 바슐라르에서 알튀세르로: ‘인식론적 단절개념, 󰡔이론󰡕 13, 1995, pp. 157-200; 선영아 옮김, 알튀세르여, 계속 침묵하십시오!; 김석진 옮김, 알튀세르를 위한 조사, 윤소영 엮음, 󰡔루이 알튀세르 1918-1990󰡕 (민맥, 1991), pp. 67-102; 33-38; 윤소영 편역,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 1993), pp. 163-237]에서 알튀세르가 투쟁과 실존을 동일화한다고 했는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발리바르 : 그 책에서 저는 어떤 실존적 중요성을 지닌 알튀세르 자신의 삶의 준칙을 확인함으로써 삶의 비극적 이해와, (fortuna), 즉 잡거나 놓치게 될 기회들의 역사성에 대한 비극적 이해를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을 검토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가장 위대한 유물론적 역사 철학자였다고 알튀세르가 말한 이유, 또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에 관한 아주 유려한 저작(알튀세르 사후 출간된 󰡔마키아벨리와 우리󰡕를 말한다)을 남긴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http://www.magazine-litteraire.com/actualite/etienne-balibar-il-avait-talent-instaurer-climat-egalite-29-01-2015-13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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