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단순 암기위주의 입시시험을 대체하는 대입 시험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 새로운 시험이었다. 그래서 당시 고등학교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책이 ˝독서평설˝이었다. 창간이 대략 1992~3년 정도로 여겨지고 나역시 그때 구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 곳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글을 쉽게 읽히도록 잘 쓰여져있고, 내용은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을 만큼 적당하게 잘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역사책 입문서로 손색없다.그러나 공민왕은 반원 개혁에 나선 덕분에 잎선 여섯 명의 왕과는 달리 고려의 왕과 신하들로부터 시호를 받았다. 인문의무용지명렬경효대왕, 줄여서 경효대왕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명이 던져 준 마땅치 않은 시호를 사용하는 것은 원 황실에 넘겨줬던 자주성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p.112(왕의 독립운동 공민왕)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에도 중화 질서에 편입되어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제후의 작위를 받은 왕은 많았다. 그러나 중화 질서를 내면적으로 받아들인 왕은 사실상 이성계가 처음이 아닐까? 조선이야말로 처음으로 중화 질서의 이데올로기인 유학을 국가와 사회의 유일 지도 이념으로 내면화한 왕조였기 때문이다. p.123 (고려권지국사와 조선 국왕 사이 태조 이성계)결국 고종은 이 땅에 있었던 군주제 역사상 가장 높은 지위까지 솟구쳤다가 가장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 존재가 되었다.....1919년 그는 독살 의혹 속에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이미 일제의 식민 지배에 고개를 가로젖고 있던 대한의 민중은 옛 황제의 가는 길에 최대한 애도를 바쳤다. 그 애도와 결합하여 일어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나 마찬가지인 3.1운동 이었다. 고종은 수천 년 왕조의 전통을 한 몸에 끌어안고 가면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p.307(마지막 왕, 첫번째 황제 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