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이타주의, 동정, 연민 오로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것들로 생각하기 쉽다.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코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은 아니라고 많은 동물(특히 유인원과 포유류..코끼리 사례는 놀라울 따름이다)들의 예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런 감정들은 본능에 더 가깝다고 말하고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러한 본능을 자꾸만 숨기려할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본능에 충실하기보다는 내 본능을 숨기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도록 스스로 배운 건 아닐까? 아니면 그렇게해야 살아남는다는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건 아닐까?
결국 타인에 대한 공감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100을 자라면서 얼마만큼 잃어버리느냐의 문제가 아닐까한다.
작가는 우리가 공감을 받아들이는 정문과 스위칙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정문을누구에게 열어주고 혹은 그 스위치를 언제 켜거 끄는지에 대해 우리는 결정하고 책임지는 존재인 것이다.
우라는 공감의 문을 열어두고, 스위치를 켜 두는게 더 본능적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종종 집단적인 이익을 소녀들과 공산주의자들이나 갖고 있는 낭만적인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라는 논리를좋아한다.
예를 들면 제방건설에 투자하여 지역 전체를 보호하는데 돈을 쓰는 대신,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안전만을 신경 쓰도록 하면 되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p.22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가 도시에 살고 지동차와 컴퓨터에 둘러싸여 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으로 똑같은 심리적 욕구와 욕망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p.48
하버트 스펜서는 사회 경쟁의 장을 허물고 평등화를 시도하는 이들을 매도했다. 그에게는적자가 비적자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비생산적인 것이었다. p.52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이기적 유전자의 비유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우리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면 우리도 이기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p.66
하품의 전염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힌트를 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자폐증 있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하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자폐증 증상을 규정하는 사회적 분리를 잘 보여준다. p.84
우리가 곡예사의 몸에 간접적으로 들어가 그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독일어는 이 과정을 Einfuhlung(들어가느끼다)이라는 단어로 세련되게 표현했다. 그 후 립스는 그와 동등한 단어로 강한 애정이나 열정을 경험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empatheia를 내놓았고 훗날 영미 심리학자들이 이 단어를 받아들여 empathy가 되었다. p.100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다. 반대로 동정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타인의 상황을 개선해주고 싶다는 욕구를 반영한다.
공감은 쉽게 일어나는 데 반해 동정은 상당히 다르게 조절되는 완전히 독립된 과정이다. 동정은 결코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p.133
거울 속 자신을 알아보는 종은 관점바꾸기나 맞춤돕기처럼 높은 수준의 공감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반대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종은 이러한 공감 능력이 모자랄 것이다? p.179
게코원숭이 어미는 새끼의 불안해하는 비명 소리에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명소리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미는 마치 자기가 물을 건널 수 있으면 모두가 건널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처럼 행동한다.
감정전이는 온전했지만 다른이의 괌점을 수용하는 능력이 없음을 이 모든 것이 보여준다. p.197
하지만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도 다른 모든 생물들과 연속성을 갖는다는 두번째 메시지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남아있다. p.282
만약 내가 신이라면 나는 공감의 범위를 손보겠다. p.279
공감을 지난 200만년 동안 급속 성장한 우리의 전두엽괴 연결 짓는다는건 우린의 존재와 정체성에 있어 공감이 차지하는 비중을 부정하는 것이다. p.2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