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삼국유사, 이 땅의 기억
이주향 지음, 정선자 사진 / 살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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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철학자가 쓴 글을 읽었다. 이 책의 기본 텍스트인 삼국유사의 저자가 일연스님인 관계로 아무래도 불교적 사상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이 책에서 상당부분 다뤄지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자세 혹은 인식을 현재 시점의 한 철학자가 지금 우리 삶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 읽기에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올해 동안 있었던 나의 모자람과 집착과 독선 그리고 여러 마음의 혼돈을 돌이켜보며 한 해를 정리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책을 읽는동안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과 신화를 주제로 하여 철학자의 고찰 그리고 함께 실려있는 사진까지 참 잘 어울려져 있는 책이다.



나는 생각합니다. 삼국유사는 스님의 창작품이 아니라고 그것은 이 땅이 낸 이야기. 이 땅의 이야기라고. 그 이야기의.힘을 알고 있었던 그는 그저 이야기를 모았을 뿐이라고. 중요한 이야기에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아무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집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8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효를 느끼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전해오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편견에 편견을 더하며 진창이 되어버린 삶에서 일순간 편견을 뚫고 생각을 깨고 나타나는 진실의 꽃을 본 느낌이랄까요. 아마 원효도 종종 생각의 진창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p.47

경순왕은 무능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의 무능을 알았던 점에서 그는 무능하면서도 무능한지도 모르는 리더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렇다고 경순왕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목숨 걸고 싸우다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때에야 빼앗길 일이지 천 년의 사직을 어찌 그리듀 선선히 넘겨주느냐˝는 마의 태자의 결기가 훨씬 힘이 있고 매력적입니다. p.82

그러나 언제나 잘 나가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곰처럼 호랑이처럼 쑥과 마늘로 버터야하는 동굴의 시간이 오고야 마니. 그 시간은 소중한 것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게되는 몸살의 시간입니다. 그 길고 긴 몸살 후에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 웅녀가 될 수도 있고, 혼돈의 경험 속에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호랑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p.99

그러고 보니 꿈인 줄 알고 사는 삶이 깨어 있는 삶이고 , 꿈인 줄 모르고 집착하며 허우적거리는 삶이 중생의 삶입니다. 꿈인 줄 모르고 집착하며 아웅다웅 아귀다툼이니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또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요? 지금 내가 사랑하거 미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모든 것은 또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꿈을 깰 수 있을까요? p.113

불타지 않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언제나 그의 삶을 그에게 주지 못하는 불이 ‘나‘를 괴롭히니까요. 기대의 불이 실망의 불이 되어타오르고, 애착의 불이 분노의 불, 절망의 불로 변해 뜨겁게 ‘나르태웁니다. 모두 자기로부터 시작된 불입니다. 그의 삶은 그에게 주어야 나의 정원을 불태우지 않고 가꿀 수 있습니다. p.162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태양도 있어야 하고 바람도 있어야하고 손길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그러한 인연으로 피어난 한 송이 꽃은 자성이 없는 겁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에게 공명하며 피워낸 춤입니다.  그 춤도 영원한 춤이 아닙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꽃을 피워냈던 힘은 어느 순간부터는 꽃을 지게 하는 힘이 됩니다.열흘 붉은 꽃이 없습니다. 영원히 사는 인간이 없습니다. 영원한 권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자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 대상에 대한 집착이 끊어 지겠지요? 그러면 전체가 노사나불입니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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