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1 - 소인배와 대인들 땅의 역사 1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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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다 몇번 이 책의 저자가 진행하는 제목이 같은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여행 전문기자답게 전문가적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방송이었던거 같다. 이 책도 방송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지역과 관련된 얘기 뿐만아니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당시 배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다만, 다소 많은 주제를 담아서 그런지 다소 내용이 축약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기자정신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주제 말미에 한 두문장으로 메세지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묻어나는 마무리는 가슴에 썩 와닿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최근 읽은 책중에서 문장을 가장 짧게 구성하는 점이 색달랐다. 이또한 사실관계를 잘 전달해야하는 기자의 문법일지도 모르겠다.


공신 명단이 발표되던 날, 사관은 이렇게 썼다. 단서철권을 만든 것이 당초 이처럼 구차한 데 쓰려고 한 것이겠는가(1604년 6월 25일 선조실록) 단서철권은 공신 표창장 두루마리와 쇠로 만든 표지이니, 훈장을 이 따위로 줘서야 되겠는가라는 뜻이다. p.27

조종암은 이 같은 숭명배청과 조선중화사상의 시초요 상징이었다. 조종은 가평의 옛 이름이기도 했지만, 제후가 황제를 배알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더군다나 조종천눈 만절필동, 조선에서 보기 드물게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아닌가. 조선이 망할 때까지 많은 유림들이 이 궁벽한 가평응 찾아 제사를 올리곤했다. p.65

수양대군을 끌어내리려단 충신들은 모사꾼의 변절로 죽었다. 변절자 이름은 김질이다. 그리고 190년 뒤 우직한 장군 임경업이 한 간신배의 모략에 누명을 쓰고 죽었다. 이 간신배가 바로 유자광, 임사홍과 함께 조선 3대 간신으로 꼽히는 김자점이니 사육신을 배신한 모사꾼 김질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다. 충신무리와 간시배 무리가 200년만에 만난 것이다. 제멋대로 굴러가는 듯 보여도 이렇듯 역사는 법칙이 있다. p.140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이외의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고,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히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1925년 1월2일 동아일보 신채호「낭객의 신년만필」 p.142

황현은 ˝내가 죽어야 할 의무는 없으나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하고 아편을 먹고 죽었다. 스스로 죽어서 일본을 이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지식인들은 망명을 택했다. p.173

경주에는 삼국 통일 주인공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심유신을 모신 통일전이 있다. 통일전은 1977년에 건립됐다. 경주 시내 황성공원에는 김유신 동상이있다. 같은 시기에 건립됐다. 김춘추 동상은 없다. 남쪽 서라벌 분지를 향해 있던 동상은 1980년대 북쪽으로 방향을 바뀌었다. 건립 취지문은 작가 노산 이은상이 썼고 글자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썼다. 자세히 보면 호인 노산은 지워지고 전주라 세겨놨다. 또 일중을 지우고 안동이라 바꿔놓았다. 영호남 통합과 고구려가 있는 븍쪽을 향한 군인의 동상. 의미는 적나라하다. 신라인의 생각지 않았던 삼국통일이 1970년대 갑자기 민족의 염원이 돼 버린 것이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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