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역사학자 모임에서 나온 전작인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의 제목이 직설적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책의 제목인 ˝욕망너머의 한국고대사˝는 훨씬 더 세련되게 느껴진다. 은유적이지만 실제 그들이 비판하고 싶은 대상의 본질을 한마디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든다.학자들은 역사학 특히 사료가 많지 않은 고대사에 대해서 언제나 조심스러운 결론을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심해서 받아 들여야 한다. 소위 환빠 또는 국뽕이 단순히 민족적 자긍심만을 이야기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매우(?) 고구마스러운 결론을 내리지만 그것이 잘못된 역사해석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는 학자적 양심이라 하겠다.그러면에서 이 책의 제목은 짧은 문장으로 책 내용 전체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하겠다.이러한 연구에 덧붙여 이성시는 19세기 말 이래로 광개토대왕비문 해석을 두고 벌어진 한일 양국 연구자들의 논쟁이 사실상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탐구였다기보다는 근대 일본의 욕망과 이를 부정하려는 근대 한국의 욕망이 서로 대립해 온 과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1600여년 전 비문 작성의 당사자인 고구려인의 욕망을 끄집어낸 것이다. p.92이 시기에 고구려나 백제, 왜, 당은 신라 입장에서 모두 외세였으며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에 민족이라는 터울 씌우는 순간 역사는 역사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관점 속에 있는 상상 속 산물이 될것이다. 그러한 산물 속에서 김춘추는 사대주의자로 포장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대의 산물, 인식을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실재한 것처럼 덮어씌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p.185즉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란 인물은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상징적 인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p.216김석형의 분국설은 북한에서는 아직 정설이며 한국에서도 모자란 복제품 수준의 주장이 이따금씩 제기된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이제 학설로서 생명력을 거의 상실했다. 그의 학설이 성립하는 결정적 근거였던 일본열도내 조선식산성이 6~7세기 대 유적으로 밝혔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그의 연구에서 학설사적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연구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왜를 야마토정권과 무비판적으로 동일시하는 일본 역사학계의 관성에 경종을 울렸다. 본격적인 일본서기 사료 비판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p.230그렇다면 이들이 줄기차게 주장한 국민정신혁명의 기본인 민족사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공산주의의 전략에 대응하는 반골의 체계로서 자유와 민족 개념을 상고사로부터 뿌리내린 하나의 가치관으로 묶어 내려는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민족사관의 반대편에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을 놓고 이들에 대한 사상적 대비 차원에서 민족사관을 정리해 나갔다. p.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