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외교 정책을 펼친 군주라는 책의 부제답게 이 책의 절반 가량이 당시 동아시아 정세와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할애하여 서술되어 있다.광해군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이 책은 당시 주변정세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해석을 자세히 알려준다는 면만을 보더라도 의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다 하겠다.하지만 반대로 책의 부제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의도적이었겠지만.....) 광해군의 국내 실정(대규모 궁궐공사, 역모사건 등)에 대해서는 왕권강화 내지는 세자시절 겪었던 수모에 따른 컴풀렉스 등으로 인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측면 혹은 외치를 바쳐주는 내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중점을 두고 서술되어 있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경험에 빠진 군주 - 오항녕의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 한명기의 광해군 - 탁월한 외교 정책을 펼친 군주만약 광해군시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3권의 책을 함께 읽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단적이다. 부정적인 평가의 경우, 인조반정을 성공시켜 광해군을 쫓아냈던 서인들의 집권이 이어진 상황에서 광해군에 대한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죽이기를 계속함으로써 그의 본 모습을 가리는 측면이 있다. 긍적적인 재평가는 식민사관(만선사관)이 지닌 정치적 노림수에 말려들 위험성이 적지 않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양쪽 압장 모두 지극히 정치적이다. p.33광해군의 왕권은 정인홍과 이이첨의 협력을 받아 어느 정도 높아져 갔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은 더 높은 신권의 확보를 추구했다. 특히 이이첨이 왕권강화를 빙자하여 자신의 권력을 키워가고 궁극에는 그것을 남용한 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정인홍과 광해군도 파멸의 길로 몰아갔다. 인목대비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광해군과 맺은 악연의 끈도 참으로 질겼다. p.87비록 정권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이첨 등은 사림의 여론을 움직이고 그들의 심복을 얻오내는 것이 권력만으로 되지 않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광해군과 더욱 밀착하는 수밖에 없었다. 왕권을 등에 업고 왕권강화를 외치면서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해가는 방식이다. 폐모살제의 비극은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p.131궁궐건설에 대한 광해군의 집착은 일단 그의 소시뫈 성격, 왜란이후의 간난신고, 천도 사도가 좌절된 데 대한 보상 심리 등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왕실의 위엄을 세우고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는 욕구와 연관된 것이다. p.152왜란이 끝난 이후 명은 조선에게 그만큼 버거운 존재였다. 명이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보다봬애 한다는 의식이 퍼져가면서 명은 더욱 생색을 내고 조선은 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와중에 명에서 심각해지고 있던 광세의 폐가 조선에서 변형되어 재현되었다. 요컨데 조선은 ‘재조지은‘을 ‘은‘으로 갚아야만 했다. p.182원정군 가운데 1만은 조선의 정예병만을 선발하여 훈련했다. 이제 장수와 병사들이 서로 숙달하게 되었노라. 그러니 그대는 명군 장수들의 명령을 그대로만 따르지 말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오직 패하지 않는 전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라. p.215조정에는 ‘삼창‘이 조정 바깥에는 정인홍이 버티고 있었다. 서인이나 남인들의 눈에 그것은 철옹성이었다. 광해군 대에는 그 때문에 주변부에서 빙빙 돌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권력을 잡은 이상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삼창이나 정인홍의 정치적 행태는 배울 가치가 충분했다. 인조 반정 주체들 사이에서 ‘물실국혼‘, ‘숭용산림‘의 밀약이 나왔던 것은 바로 이론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p.287아 훈신들이여 / 잘난 척하지 말아라그들의 집에 살고 /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고그들의 말을 타며 / 또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당신과 그들이 / 돌아보건디 무엇이 다른가반정공신들의 행태에 비판적인 분위기는 이처럼 당시 사대부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p.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