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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을 위한 행진곡 - 을(乙)이 주인인 세상, 경제민주화 법안들 ㅣ 을을 위한 행진곡 1
민주당 경제민주화 모임 20인 의원 지음 / 비타베아타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최루탄과 화염병, 그 위에 피로 쌓아올린 불과 2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졌다. 물론 아직도 갈길이 멀긴 하지만, 형식상으로나마 우리나라는 분명 민주주의 국가다. 그리고 바야흐로 21세기, 이제는 정치에서의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대국민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경제민주화`, 지난 2012년 대선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이것이었다.
경제민주화의 첫번째 과제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시기에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국민의 양보 및 희생을 먹으며 몸집을 불려온 재벌에 대한 개혁이다.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기업 본래의 존재 목적이다.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가졌다고 욕을 먹을 수는 없다. 노력으로 쌓아올린 부는 헐뜯을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19조 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밝힘으로서 시장에서의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만족을 모르는 데다 집단화되어 도덕적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더욱 탐욕스러워진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직원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납품단가는 후려치고, 유해물질로 상품을 만들어 팔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소비자를 기망한다. 그리하여 타인이 얻어가야 할 이익까지 갈취하는 지경에 이르러 정상적인 이익 추구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이에 개입하여 강제로라도 탐욕을 멈추게 해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경제활동의 열매가 소수에게만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양극화는 내수경제를 침체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며,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성장동력을 악화시킨다. 우리나라 헌법은 또한 같은 조문 2항에서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명문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시장실패를 인정하고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에 힘쓰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여 수많은 을을 갑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고 주인된 삶을 살도록 보장하는 일은 불가능한 꿈인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릿수만 따지면 갑보다 훨씬 많은 우리 을들은 갑들에 비해 먹고 살기 빠듯하여 여유가 부족하거나, 지식·정보가 부족하여 무지하거나, 정치는 나와 상관없다는 이유로 을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대표자를 뽑아 국회로 보내지도 못한다. 이미 뽑힌 대표자들에게 을을 위한 정치를 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못한다. 뿌리깊은 정경유착으로 점철된 국회에 을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마저도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마다 을의 반항을 저지하기 위해 입법로비를 벌이며 반대하는 재계에 가로막히고 만다. 게다가 을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갑의 입장을 옹호하고, 경제민주화 법안을 `재벌 죽이기`라며,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외치는 자들도 있다. 고양이는 절대로 쥐 생각하는 법이 없는데 도리어 쥐가 고양이를 생각해주며 `나 잡아 잡숴`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책 리뷰를 쓰면서 책 이야기는 한톨도 하지 않고 잡설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여기까지 적은 내용들이 대부분 이 책에 있는 내용이거나 책을 읽으며 얻은 생각들이다. 특히 헌법 119조, 특히 경제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규정한 제2항은 내 기억이 맞다면 3차례나 등장하기 때문에 전문을 그대로 적어 보았다. 깊이도 없는 어줍잖은 배경지식이 가미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이미 국회를 통과하였거나 합의를 거친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공정거래, 금융민주화, 기업상생, 노동환경의 4영역으로 나누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013년 발간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 더 많은 법안이 통과되었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할 부분이다.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20인이 공저한 책이지만, 이 당을 지지하고 안 하고가 이 책을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판단기준이 되진 않을 것이다. 법안 내용을 읽어 보면서 이 법안들이 정말 을을 위한 행진곡이 될지 나름 판단해보며 읽으면 될 일이다. 마음이 가는 법안이 있다면, 매일 싸움박질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국회라도 나를 위해 해 줄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이 나라에 주민등록을 하고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상 절대 정치가 나와 상관없을 수 없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깨달은 후에는 국가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회에, 또 정부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법안이 결코 갑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우리 경제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방안임을 갑이 스스로 인정한다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법이란 이 책에 적힌대로 갈등과 투쟁의 산물이므로, 싸우고 설득해서 얻어내야 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