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영어 고급 학습자는 아니다. 응시해본지 5년도 넘은 토익점수도 700점을 넘겨보지 못했고, 그 뒤로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 수준의 내가 `고급`을 표방하는 문법책을 붙들고 씨름하자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수준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태초부터 문법이라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그럼에도 겁도 없이 고급이라는 영문법 책을 붙들어 보고자 한 것은,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7번 읽기 공부법>을 읽고 얻은 자신감 덕분이었다. 7번을 읽으면 머리에 책 한 권이 복사(!)가 된다는 것이 그 책의 주요 요지다. 밑져야 손해볼 것은 아니니 한 번 해 보자 싶었다. 이 고급 영문법 책이 그 공부법을 실천해보기 위한 시작이었던 것이다.그렇게 7번을 읽고 나서 이 기록을 쓴다. 공부법이 효과가 있었다고는 아직 말 못하겠다. 그저 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7번 넘겼다는 사실 자체를 작은 성과로 삼고 싶다. `다 이해하고 외우기 전까지는 책장을 넘기지 않겠어!`라며 정독에 목을 맸더라면 한 50장, 아니 10장도 못 넘기고 책을 저 멀리 치워버렸을 것 같아서 말이다. 머리에 남을 테면 남고, 남기 싫으면 말아라는 마음으로 읽으니 일단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이 책으로 당장 어떤 시험을 준비한다든가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고급에 걸맞은 실력일 때 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말 구어(속어)적인 표현이나 극히 드문 예외까지 언급하면서 높은 수준의 문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구분해서 공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미국영어와 영국영어의 차이점들도 많이 담겨 있다. 물론 꼭 알아야할 기초 문법들은 당연히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머릿 속에 먼저 넣을 것을 선별해 내려면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다.나처럼 단순히 영어 문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여보고자 한다면 괜찮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개념들이 법조문처럼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예문들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비롯한 실제 문헌에서 뽑은 풍부한 예문들이 엄청나게 들어있다. 뒷부분에 정리되어 있는 인용작품 목록을 보고 있으면, 이 많은 책들에서 좋은 문장들을 골라 뽑아준 저자의 정성에 감동하게 된다.중간중간 양념처럼 들어있는 영화 해설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교양지식까지 더해준다. 문법보다 그런 내용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문학이라는 예술 영역에서 뽑았기에 문장들 자체가 생활영어보다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고급은 고급다워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