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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ㅣ 워프 시리즈 2
알렉산더 케이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2년 9월
평점 :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향해 내려갔다면
예술은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하는 권능이다.
그러니 작품을 만드는 일은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_블랑쇼,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어둠에서 벗어나기> p.69
인간의 삶은 때때로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10대 초반, 나이트 라이더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작가, 알렉산더 케이의 대표작이다.
그는 어머니마저 의문사 당한 뒤, 형제들과 유산을 노리는 친척 집을 전전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도 아이로서 느끼는 어른에 대한 공포와 위압감이 깊게 드러나 있다.
"코난은 뭐라고 대답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곧이어 현명하게도 입을 다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나를 도와주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그제야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p.78
이 소설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착취하려 하며, 비웃으며, 무자비할 정도로 폭력적이고(심지어 코난의 이마에 낙인까지 찍는다), 재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리화 한다.
그러나 폭력과 재난에 이중으로 노출된 아이들은 그속에서 무력하며 어른들을 미워할 수도 없다.
실제로 소설속에서 코난과 라나는 어른들에 대한 증오를 여러번 드러내는데
그때마다 자기안의 내면화된 선하고 겁먹은 자아에 의해 검열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조금이라도 힘이 센 더 큰 아이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코난과 라나를 억누른다(올로는 알렉산더 케이가 어린시절 경험한 사촌형에서 캐릭터를 가져왔다고 한다).
코난과 라나는 종종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취지의 생각을 곱씹는데,
알렉산더 케이도 뼈저리게 경험한 감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역설적인 것은 인간의 의식 가장 지하에 흐르는 두려움과 공포를 이야기하는 이 소설이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는 것.
아이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현명해져야' 한다.
이러한 세계의 혹독함은 라나와 코난이 서로를 지켜주면서 성장하게 만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각색처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의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들이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결말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저 버티는 것...이 최선의 결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내일은 오고,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은 다음날로 계속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