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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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형식은 흥미롭다. 게임 서사로 볼 수도 있겠다.

죽음에서 리셋되는 삶의 분기점이 있으며 거기서 갈라지는 한 여자의 죽음과 생은 그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녀와 관계된 많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모든 죽음이 달가운 것은 아니겠지만, 막간극을 통해 이어지는 삶도 죽음 못지 않은 무게를 지닌 고통의 추를 달고 이어진다.

서사 전개 방식이 워낙 인상적이기 때문에 이 작가가 이 형식으로  다른 작품을 발표해주어도 고마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도 제기된 의문이지만 한 인간을 죽음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힘은 무엇일까.

<모든 저녁이 저물 때>의 주인공이 여러번 되살아난 것을 행운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녀 자신이 끊임없이 죽음에 매혹당하고 기회만 되면 죽음으로 미끄러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죽음으로 가는 여러 길을 보여준다. 피부 속에 갇혀 있는 자신에게 허름한 문을 열어 젖히는 힘은 신이 꾸며 준 삶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하지만 호프만 부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답니다.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는 늘 뭔가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어.

p.281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의 어트랙션을 반복해서 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구조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현기증이고 두려움이기 때문에 어트랙션에서 내리기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소설을 곁에 두고 오래 읽고 오래 살아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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