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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이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그냥 평범하고 차분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폈고, 조용히 즐기리라 따뜻한 차한잔을 준비했다.
아이를 만들 능력도 없고 이렇다할 작품도 없는 프랑스인 이혼남
아내와 함께한 나날들에 대한 추억이라곤 대형텔레비전, 전자동 잔디깎이, 낡아빠진 시보레(내차)와 최신형 메르세데스(안나의 차), 이기심 약간, 체념듬뿍, 소소한 거짓말들 그리고 개한마리 뿐인 남자 폴 페레뮐터.
그리고 그 한마리의 개마저 죽어버렸다.
어찌이리 암담할 수가 ㅠㅠ 더이상 심해질 수 없다고 생각할때쯔음 일은 하나씩 더 늘어났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랬던건 아니었다.
p.24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일에 얽매이지 않고 내마음대로 사는 것 뿐
행복을 누릴줄 알고, 행운이 찾아오리라 믿고 있었으니까.
마치 곰날의 곰처럼.
그도 활기차고 열정에 넘치던 청년이었다.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부터 그의 삶이 점점 갇혀만 간다. 이렇게 자유로운 마음이...
읽을수록 자꾸만 우울해지는, 절망스러운 폴의 상황...조금 당황스러웠다. 귀여운 책표지와 더불어 제목의 글자체까지 왠지 발랄한 분위기를 냈기에..
당황함은 잠시, 차분하게 우울의 늪에 폴과 함께 빠져들었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언제 터질까..조마조마 했던 폴이 (하지만 그는 터질?수있는 그런위인은 아니었다.) 돌연 여행을 떠난다.
p.63
하지만 마이애미를 떠날 때도 난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는 순진한 후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내목표는 단 하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움직이는 것, 낮 동안 땀흘려 일하고 나서 밤이 오면 막일꾼처럼 곯아떨어지는 것이었으니까. 아내도 책도 개도 구덩이도 없이.
점점 그의 본 모습이, 잃어버렸던 모습이 조금씩 가면을 벗는듯 했다. 답답함과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려면 아직 멀었지만.
자신의 마음이 닿는데로 가다 보니 폴은 어느새 자신의 아버지와 만나고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아버지의 비밀들을 알게되고 부H히고 괴로워하다가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P.155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물폭탄'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도들려왔다. 순식간에 난 흠뻑 젖어버렸다. 하지만 춥지 않았다. 한없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세상의 먼지가 다 떨어져나간 듯.
마이애미에서 네이플스로, 의문스러웠던 아버지의 죽음이 있었던 캐나다 북부의 호수. 그리고 '더러운 숲'...험난한 여행 길 동안 그는 여러사람을 만나며 상처받으며 또 상처를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팠다.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그와의 여행은.... 안주해 버리고 상처받기 싫어, 남에게 보이기 싫어 감췄던 것이 드러나는거 같아 자꾸 신경이 쓰였다.
p.241
생각난다. 나뭇잎 새로쏟아져 내리며 내 점퍼에 빛얼룩을 지게 했던 햇살이.
생각난다. 발밑에서 자그락대던 자갈길이. 갑자기 눈앞이 텅 비며 햇살이 내 눈을 소아대던 게.
생각난다. 눈앞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먼지구름이. 곧이어 이제 트럭이 나타나겠구나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던 게.
생각난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트럭을 기다리는 동안 고통과 피로가 죄다 사그라지던 게. 드디어 해냈다는 자부심과 기쁨마저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난 살아있으니까 행복하고 웃고 즐기고 또한 상처받고 괴로웠던 것이다. 왠지 아침 공기가 어제보다는 더 상쾌하게 느껴진다. 이젠 마음껏 살련다.그냥 내 모습 그대로.
문득 그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라는 유쾌한 제목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너무도 프랑스 적인 유머'라 하고, 너무 프랑스적이기에 다가가기 힘들었다는 평들을 읽고 잠시 제껴두었던, 그 책이 읽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