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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후 지겨웠던 직장 생활을 때려 치우고 집에서 골골 거리면 지내던 차에 연락이 닿아 선배가 사는 상해를 방문하는 동안 아버지의 퇴임식이 있었다.
멀리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찾아뵙지는 못하니 전화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언니의 메세지가 있었다. 선물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 자식들 모두가 아버지께 편지를 한 장씩 쓰기로 했다며 오후까지 써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다가 받은 전화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하고 나도 바로 피씨방으로 달려가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다. 가끔씩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리고 한 두번 써보기 했었지만 정말이지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었다.
예전에 드리고 싶었던 말씀들을 담아서 얼추 끝을 맽기까지는 여러시간이 걸렸다.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감사만 드리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내심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가득한 사람이다. 물론 가족에 대한 염려 때문이긴 하셨겠지만 집안에서 언제나 위엄만을 보이셨고, 차가운 그 모습 때문에 우린 아버지를 무서워 하기만 했었다. 학교가 파하고 마루에서 TV를 보면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도 아버지가 퇴근을 하시고 집에 돌아오시면 인사만 겨우 하고 제방으로 들어가버리기가 일쑤 였고, 아버지의 이른 퇴근은 집안에서 우리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책에서 묘사하는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 세대와 비슷한 것 같다. 경제적 역할과 가부장적 태도가 부각되었던 그 세대. 그래서 정작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나중이었고, 그들에게 위엄을 보여야만 했던 그 세대.
주인공 정수는 아내와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임종을 앞두고서도 자신의 정리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자금과 아내의 미래를 위해 작은 제과점이라도 마련하려는데 남은 시간을 다 쓰는 아버지이다. 자신의 고통은 혼자서만 감수하려하고.....
작가는 아버지인 정수의 표현되지 않는 사랑을 알아주지 못했던 고상한 아내, 똑똑한 딸아이, 공부에 전념하는 아들아이와 점점 멀어져 가다가, 가족들이 정수의 병세를 알고 난 후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나 역시 화해를 하는 대목에선 눈물을 한 없이 많이 흘렸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의 짜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던 가족을 탓하기라도 하는 듯한...
가족들 대신 자신의 친구인 남박사에게 내면을 보이고, 우연히 알게된 이소령이라는 여자의 거의 무조건적인 세심한 배려와 관심에 마음을 열게 되는 정수. 그런 정수에게 가족들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
나도 알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그리워 했던 사람이 다름아닌 아버지였고, 또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힘든 생활을 꿋꿋히 해내기도 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원망은 한다. 좀더 따뜻하게 우리를 안아줬더라면 나의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도 꽤나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이제는 변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말이다. 나도 곧 어머니가 될 것이고, 나의 남편도 곧 아버지가 될 것이다. 우린 아버지 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 가족 모두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대화하며 이해하는 그런 가족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