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걸음 - 한 번에 한 걸음씩 기적을 찾아 떠난 산티아고 길, 2010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순진 지음 / 샨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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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때에는 당장이라도 달려 가고 싶어서 몸서리쳤었다.

아 이 세상에 이런 곳과 길이 있었다니..

참 힘들었던 때였는데 당장이라도 그곳에 달려가 걸으면 나에게 뭔가 큰 변화가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내 자신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내가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로 나를 끌어갈 무언가가 발현하기 전까지 자신을 추스리며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저 그곳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끔씩 읽으며 그곳을 그려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서 만난 또 하나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며 아마 대여섯 번째로 만나는 책인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순례기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30년 정도 살다보면 누군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 책을 저자 순진 씨도 굴곡과 아픔을 지니고 있는 이이다.

그리고 불현듯 스페인으로 떠났다.

다른 무엇보다도 몸이 불편하여, 그것도 걷기 순례에 가장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발목이 원인모를 통증에 수십년 동안 시달리고 있는 이가 무려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를 떠나기에 적합치 않으나

그저 떠나야만 했었을 만큼 그녀는 절박했는지 모르겠다.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걷는 순례.

보통 사람의 반도 안 되는 속력으로 천천히 걷는 그녀의 순례는

다른 이들의 그것과 조금은 달랐고,

솔직하게 울어버리고 주저앉고 언제든지 포기하고 돌아갈 거라면서

절박하게 떠난 것치고는 편안한 마음 상태로 걷는 그녀가 맘에 든다.

 

책 중간에도 나오지만

얼마나 일찍 일어나는지, 얼마나 많이 걷는지에 매달리는 이들이 태반이고

아마도 나 역시 멋모르고 갔다면 그러 했으리라.

걷는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그저 하루의 목표치를 걷는 것은

순례가 아니라 극기 훈련이나 군대에서의 행군일 뿐.

처음에는 몸이 주는 제약 때문에 천천히 걸었으나 순례와 걷기의 의미를 차츰 알아가는 것인지

버스나 차를 타고서도 기꺼이 순례길의 천사가 되어 가는 저자의 모습이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그녀는 참으로 솔직한 성격이지만,

그녀의 솔직한 성격으로도 드러나지 않는 깊은 곳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가운데서 공감하고 알아주는 이들을 만나면서

그녀 역시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보다 큰 사람이 되어 간다.

 

그저 신만을 갈구하는 구도의 모습이나,

사람만을 보고 느끼는 다른 이들의 어떤 글보다도 솔직하고 깊은 공감이 있는 순례기.

산티아고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언젠가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순진 씨가 좀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기를 빌고 감사하는 마음을 놓고 오리라.

그리고 그녀 만큼 천천히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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