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2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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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등으로 잘 알려진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은 어렸을 때 편역본으로 조금 만나봤을 뿐 명성에 비해서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작가였다.

작품이 총 여섯 편 뿐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으니 조금은 창피한 일인데

그래서 가능한 빨리 전작을 읽어볼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초미에 실려 있는 번역자의 해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주인공인 캐서린과 주변 인물들의 대화 또는 행동들이 그 시대의 어떤 점들을 보여주고 있는가는

사실 21세기의 한국 사람으로서는 알기 쉽지 않은 일일진대,

그 점을 먼저 짚어주고 읽는 것도 작품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예컨대 작품 속에 계속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들과 문학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제인 오스틴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들이라는 것은

그 소설들이 어떤 소설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현대의 독자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역자의 해설을 통해서 어떤 맥락인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속물적인 중산층들의 삶의 모습과 그 속에서 일면 순수한 사랑 또는 애정을 보여주는 이 책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작품 이야기는 이쯤하고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특별히 신경써서 만들어낸 색이라는 예쁜 풀색의 표지와 엄청난 수의 라인업에,

대단한 기획이다.. 싶어 제인 오스틴 읽기의 텍스트로 이 책을 선택했는데..

어라 책을 넘기고 보니 발췌 번역이라는 말이 바로 나온다.

지만지고전선집에 대해서 나온다 말만 들었지 제대로 어떤 기획인지 알지 못했기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보고는 정말 놀라움을 참을 수 없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의 박영률 대표가 내놓고 있는 지만지고전선집은 정리를 해보면

1. 동서양 고전을 약 3천종을 4년 안에 내겠다.

2. 완역보다 약 160페이지 정도의 발췌 번역으로 묶어 내고 일부는 완력으로 다시 내겠다.

정도로 기획을 요약할 수 있는데..

 

우선 발췌번역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직접 완역 원전을 다 읽을 만한 독서력을 가지지 않았을 때에는

많은 고전을 편역으로 접했고,

시간이나 능력이 아직 안되는 사람들에게 발췌본이나마로 쉽게 고전을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나는 발췌본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다.

  따라서 이 <노생거 사원>도 다시 완역본으로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다른 큰 문제가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인 한기호 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한 바에 의하면,

지만지의 라인업에는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는 책들도 있다고 한다.

지만지에서 출판권을 구입하여 출간한다면 지만지에서 다시 완역본을 내주지 않는 한

그 책을 완역본으로 접할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또, 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간된지 얼마 안 된 책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출판권 침해에 해당한다.

기출간한 출판사에서 지만지와 번역자를 동시에 고발해야 한다고 하는데

좁디좁은 나라에서 같이 일했던 번역자와 역시 출판계에서 오래도록 일해왔던 박영률 사장을

고발할 수 있을만한 출판사가 몇이나 될까..

또한 번역자가 기껏 번역해 놓은 텍스트를 놔두고 지만지와 다시 계약했다고 해서

다시 처음부터 번역할 것인가.

십중팔구는 기본 번역한 텍스트 파일에서 발췌만을 하지 않을까...

이것은 시장의 윤리에도 어긋날 수 있다.

쉽게 내기 어려운 고전을 어렵게 기획하여 완역본을 내었는데

그 돈을 받고 일한 번역자가 (얼마인지 몰라도) 다시 돈을 받고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여

같은 텍스트로 줄여서 책을 낸다니..

 

3000권이 넘는 기획 또한 조금 어이가 없다.

일년에 천권씩 내려면 한달에 백권 가까이 책이 나와야 하는데

기획자 몇명이서 그러면 동시에 몇권을 기획해야 하고 몇권을 교정해야 하는가.

제대로 된 기획과 편집이 될지 의심스럽다.

그 엄청난 물량과 기획에 들어갈 돈으로 몇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나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꼭 나와야 하지만 아직 우리 나라에 나오지 않았던 중요한 책들도 라인업에 많으니 말이다.

번역도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노생거 사원>을 번역한 이미애 씨도

이번 차분에서 제인 오스틴 텍스트 6권 모두를 한꺼번에 냈다.

여섯 권 모두를 한번에 번역한다..

기획 준비가 언제부터 되었는지 모르지만 약간 그 질을 의심해 볼 수 있을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책을 읽어 놓고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선집이 아닌 완역본 시리즈가 아닌 이상

지만지의 책을 다시 볼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한기호 씨가 지적한 출판 윤리에 관한 문제는

반드시 지만지에서 적절한 해명이나 설명이 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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