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 - History
최백호 노래 / 신나라뮤직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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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을 때 목소리로 듣는 것보다 오히려 더 좋네. 원숙하고 무르익은 목소리와 창법.. 물론 젊을 때 목소리도 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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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aGa - The Fame (New Version)
레이디 가가 (Lady GaGa)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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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레이디가가를 제대로 느낄려면 라이브 동영상을 일단 봐야 한다.  

뮤직비디오도 좋지만, 특히 라이브 동영상 말이다.  

예를 들어,  여기 링크한 파워플한 '포커페이스'의 라이브 동영상을 보시길..   

(개인적으로 나는 외계인같은 의상입고 라이브하는 영상도 맘에 든다.  

아니면 네이버 블로그들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동영상들을 보시던지..) 

이런 라이브동영상에서 레이디가가는 단번에 무대를, 그리고 관객들을  

파워플한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서서히 달아오르는게 아니라 시작하자 마자 곧바로  

자신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사람들을 몰입시킨다. 

물론 그녀의 의상, 노래스타일, 춤스타일은 지극히 전위적이다.  

전위적이란 말은 실험적이란 말이기도 하는데, 의상 콘셉은 많은 경우 

'외계적'이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4차원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텐데,  

이 말에는 오타쿠적인 느낌이 강해 정확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레이디가가의 것을 '똘끼'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더 나은 표현 같다.. 

또한가지, 레이디가가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클럽에서 울리는 댄스음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녀의 음악은 우리의 일상, 일상적 느낌, 일상적 기분에 강하게 도전한다.. 

예술과 외설을 넘나드는 듯한 아슬아슬한 동작이나 의상, 음악, 비트, 소품 등을 통해서  

기존의 느낌과 일상성에 도전한다.  

그런 점에서 레이디가가는 '아티스트'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키치'에 온몸과 마음이 물들어 있는 이 시대의 많은 스타들에 비하면...  

이제 갓 20대의 어린 아티스트인 레이디가가에게는  

분명 뭔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정신이 엿보인다.  

아티스트란 그런 것이다. 익숙한 것에 도전하고, 뭔가 새로운 것, 낯선것,  

그래서 얼핏 생각하기에 약간 불편한 것, 그런 것을 들고 나오고 만들어 낸다.   

한번 그녀의 뮤직비디오를 보시길... 한마디로 전율이, 그리고 흥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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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aGa - The Fame (New Version)
레이디 가가 (Lady GaGa)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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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가가는 라이브 동영상을 봐야 함. 그녀의 파워플한 무대는 정말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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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황런위 지음, 박상이 옮김 / 가지않은길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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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레이황이 지은 [1587년...]은 명대 말기의 조락해가는 왕조의 모습을 깊이있게 그리고 있는 책이다. 그에 따르면, 1587년은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가 없이 그럭저럭 유지된 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심각한 한계를 드러낸 해였다는 것이다.

레이황이 이야기하는 명조의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그에 따르면, 명조의 통치는 태조 홍무제 때 만들어진 소박한 제도와 간단한 법률적 장치들, 그리고 채 1만 명도 못되는 관료집단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이와 같은 소박한 제도적 법률적 장치들은, 유교정치사상에 입각한 관료들의 도덕적 판단과 각종 의례와 예법들로 구성된 '문화적 장치'들로 보완되었다. 물론 소박함을 강조하는 문화적 통치체계는 홍무제 이후 얼마동안은 잘 작동했다. 하지만 1587년경에 이르면 명조는 홍무제 시기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도 발전하여, 그에 따른 각종 사회적 문제와 왜구의 노략질이라는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였다.

그렇다면 명조는 어떻게 나아가야 했는가? 후반부로 갈수록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바이지만 레이황은 정교한 법률체계와 전문가 관료집단을 구축해서 과거의 소박한 관료정치 전통과 유교이념에 입각한 관료들의 도덕적 판단의 자의성을 대체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장치란 정교한 사법, 민법, 상법과 그에 바탕한 전문가 관료체계를 의미한다. 명조 후반기에 이루어진 경제적 사회적 성장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각종 이권분쟁과 범죄행위들을 낳았는데, 이런 문제들은 상급 하급 관리들과 수보, 그리고 황제의 도덕적 판단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명조에 요구되었던 개혁안으로 레이황이 제시한 정교한 법률적 체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정교한 법률적 체계는 결국 근대 자본주의 국가체제가 등장하면서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명나라의 대안이 자본주의와 유사한 국가여야 하는가?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으며, 또 그것이 당시로서 가능이나 했겠는가? 명을 대체한 청은 과연 그와 유사한 체계를 만들어 내었는가? 레이황은 이 지점에서 무리한 역사적 가정과 희망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시대에 대한 역사서술에서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맹아에 대한 서구나 동아시아의 역사가들의 집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레이황역시 이러한 역사서술의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약간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통중국사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책이다. 레이황은 전통 왕조체제의 본질을, 그리고 퇴락해가는 왕조체제 속에서 각 개인이 겪었던 내면적 고뇌와 모순을 밀도있게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설명한 명조의 통치형태는 평소 내가 품어왔던 중국의 무게, 단일 국가체제에 대한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제공한다. 중국대륙과 비슷한 면적을 갖고 있으면서 여러 국가로 분리되어 있는 유럽대륙과 비교해보라. 어떻게 십수억의 인구를 가진 이 나라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수억이라는 인구의 무게는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쉽게 감당하기 힘든 무엇이었을 텐데, 그들은 제국의 인민을 부양하고 제국의 대일통大一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정치적 문화적 장치들을 만들어낸 것일까?

전통중국의 문화적 통치체계는 레이황이 지적했다시피 관료들의 '인격과 도덕성'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행정과 통치행위 자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무시했으며 이는 결국 관료들의 각종 비리를 낳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같은 문화적 통치가 궁극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인구와 땅덩어리를 하나로 묶게 만든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유학의 사서삼경을 단일한 텍스트 체계로 삼아 동일한 정치적 지향점을 가졌다. 황제로부터 저 아래 지현知縣에 이르기까지 공유하였던 유교이념과 예법과 각종 의식은 제국을 하나로 묶는 문화적 통치의 수단이었으며, 수억의 인민들 각각이 지닌 욕망을 어느 정도 단속하고 그들 사이의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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