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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어루만진 의사, 장기려 ㅣ 청소년인물박물관 2
임정진 지음 / 작은씨앗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을 위한 책을 주문하기 위해서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을 검색하다가 장기려선생님의 전기를 주문했다. 아이들의 책이 배달오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은 엄마다. ' 야 , 이거 재미있겠다 ' 금새 다 읽고는 느낌을 받은 구절을 읽어 준다. 그리고 우리 둘째가 책을 이어서 읽는다.
' 정말 재미있어! ' 그리고 내가 읽는다. 마지막으로 중3이라서 항상 시간에 쫓기는 우리 큰딸이 읽는다. 그리곤 식탁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한다.
" 장기려 선생님은 정말 훌률하신 분이구나 "
아이들의 엄마는 장기려 선생님이 평생 홀로 살면서 북에 남아 있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어온 것이 가장 감동적이란다.
아이들은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의사선생님이 자신의 부를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쏟아부은 모습이 인상적이란다.
나는 어떻게 평생을 이토록 일관된 삶을 살 수 있을까 ,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가 궁금했다.
" 신앙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
아내는 대답한다.
화려한 성전을 짓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선교활동을 펴고 있는 지금의 한국의 교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항상 신과 마주하고 대화하면서 흔들리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신앙의 힘 말이다.
장기려 선생님도 교회가 아닌 성경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을 하셨다니까.
아이들과 함께 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내와의 영적인 사랑
장기려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에 남북으로 갈라진 아내와의 사랑을 40여년이 지난 후에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 여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리없건만, 혹시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봤으나 그저 깜깜한 어둠뿐 . 택용 어머니, 나는 요즘도 이따금씩 당신과 아이들의 꿈을 꿉니다. 다 내 불찰입니다. 그날 당신과 애들을 먼저 대동강변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또 종로거리에서 차를 세웠더라면.... ' ( 1990년 동아일보 기고 )
책에서 장기려 선생님이 서로 헤어지기 전에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다. 장기려가 마루에서 원고를 쓰고 있다가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아내를 물끄러미 내다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보통때와 달리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마당으로 내려가 아내를 지그시 안아주며 속삭였다. " 사랑하오" 결혼한지 15년이나 된 남편이 그런 말을 하자 아내의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그녀 역시 깊은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
장기려 선생은 아내와의 사랑을 영적인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죽기전에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같이 만나서 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장기려 선생은 수없이 많으 수술을 하셨으면 서도 수술전에는 반드시 관련서적을 읽고 기도를 하고나서 수술에 임했다고 한다.
" 선생님, 이 수술은 선생님 같은 분이면 눈 감고도 하는 수술이잖아요. 또 책을 보실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
" 다 아는 것 같아도 다시 보는 게 좋아요. 의사란 모름지기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장기려선생님은 간절제 수술등으로 의학계의 탁월한 권위자였지만 경성의전, 서울의대등의 돈과 명예가 있는 곳에 있지를 않았다.
기율병원, 전쟁중의 천막병원, 복음병원....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곳에, 또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짓고 무료로 치료를 하기 위해서 온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전에 힘든이끼리 서로 의료비를 마련하던 청십자조합을 만들어 22만명이 가입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병원 옥상에 20평정도의 옥탑방 ,- 원래 관사가 아닌 전화교환기를 설치하려고 했던 곳 - 에 낡고 작은 풍금과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서재가 있는 소박한 숙소를 남겨놓고 갔다.
그가 주는 세벳돈은 항상 천원이었고 식사는 주로 병원 구내식당에서 했다고 한다.
죽을 때 남긴 돈은 천만원이었는데 그돈은 병간호를 해준 간병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남겨두었다.
1995년 돌아가실 때 당시 라디오칼럼을 진행하던 이만열 교수는 " 방금 우리는 , 우리 곁에 있던 성자를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