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신화에 대한 책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그리스, 로마 쪽이 아닌, 동북아시아 지역의 신화 이야기다. 작가 신이치는 그중에서도 주로 곰과 관련된 신화와 그것의 변주된 형태로의 신화를 소개하면서 현재의 사회가 왜 야만인지를 풀어가고 있다.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대칭성이다. 과거 신화의 시대에는 자연과 인간은 대칭적 관계 속에서 있었으나 칼의 발견으로 이러한 대칭성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권력을 지닌 왕이 등장할 수 있었고,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신이치가 말하는 대칭성은 루카치의 총체성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총체성이나 대칭적 사고는 모두 신화의 시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의 시대에는 인간과 자연은 하나였다. 모든 자연은 살아있고, 감정을 느끼고,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중 곰은 북방계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로 인간과 같은 먹이(산딸기나 연어등)를 두고 대칭을 이루고 있다. 곰 신화는 환태평양 지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단군신화도 지금까지와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중 독특한 것은 권력의 획득(또는 대칭적 사고의 파괴)이 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검은 결국 무기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서의 검은 아마도 과학기술이 될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 신화 시대의 종말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대칭성의 회복에 대한 문제이다. 작가는 몇몇 군데에서 살짝 자신의 생각은 흘려 놓는다. 그에 주장을 확대해본다면 뛰어난 시인들은 대칭성을 회복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그들의 언어가 과학적인 사고의 언어가 아닌 상징적 언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화의 세계 역시 상징적 언어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작가는 언어로서의 가능성은 시에서, 종교로서의 가능성은 불교에서 찾고 있다. 불교의 공사상은 권력 전복의 힘을 지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근간에 읽었던 시집 중에 가장 재미있는 시집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재미있는 시집이 별로 없다. 달리 말하면 재미라는 것이 시적인 것과 멀다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미정의 시는 일단 읽으면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시는 가볍다. 가볍다는 것은 나쁜 거고 무거운 것이 좋다라는 의미에서 가벼움이 아니다. 그녀의 시는 일상적인 지점에서 출발을 하고 가벼운 상상력으로 전개된다. 이 시에서 시인이 다루고 있는 것을 몇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은 매직이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는 이 현실을 시인은 예사롭게 바라 보지 않는다. '실용적인 마술'과 같은 시에서 보여주는 ' 그의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안마해 주기, 배추로 김치 만들기, 오천 원으로 푸짐한 밥상 차리기'가 바로 생활의 마술이며, '계란 계단과 아줌마'에서 시적화자가 걷는 계단은 신기하게도 계란으로 되어 있다. '매직 부츠 신은 아줌마'와 같은 시에서는 매직 부츠가 촛점이 아니라 결국은 나이를 먹고 평범한 신발에 어울리는 아줌마가 된다는 매직같은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외에도 많은 시들에서 신기한 일상생활에 대한 시인의 발견이 등장하는데 이를 읽는 즐거움은 새롭다. 이러한 매직 중에서 시인이 특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늙는다는 것이다. '매직 부츠 신은 아줌마'에서 '소녀'의 반대말로 '아줌마'가 사용되고 있다. 시인은 '아줌마'라는 말을 통해서도 소녀와의 대비로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늙은 만큼 저항력이 약'하얀 병원''해지기 때문일 테고, '때때로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잊'샴토끼, 혹은 삶, 토끼''고 살게 되기 때문일 테다. 늙는다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쯤으로 해두자. 나이를 먹고, '시인끼리 살아도 로멘틱하게 살지 못하는' 남편을 두고 '드라이한 출산기'로 태어난 아이를 둔 시인은 '식성'과 같은 시에서는 나를 먹는 아이들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러한 두려움이 표출되기도 한다. 이 시집에서 또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시쓰기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다. 시인은 시의 여러 곳에서 자신의 시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드러낸다. '이것이 사라는 데 당신들이 동의하든 안하든 나는 개의치 않겠소''쓰레기통에 버려진 법랑 그릇에 이런 시가 쓰여 있었소'라는 당당한 선언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에서는 '잡념으로 시를 쓰고 고작 손가락 움직여 시를 쓰는''김종삼은 귀가 크다' 시인의 모습이나,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뭔가 시원하게 울어내지 않았다는 생각''눈물을 뼛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나는 왜 시 쓰는 데 예민하지 않고 시인되는 데 더 예민한 건지''시인은 자고로 예민해야'를 반성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뒷부분의 몇편의 시들은 전부 시인에 대한 자서적인 이야기로 시인의 솔직한 시편들이 감동을 준다. 이 시집은 한번쯤 읽어 볼만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른 시집과 다른 매력을 가진 시집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이 시집의 그런 매력은 불행하게도 성미정에게 어떠한 부와 명예를 주지 못할 것이다. 시집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던지 무슨무슨 문학상에 수상한다던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베스트 셀러가 되기에는 너무 무겁고, 무슨 상을 받기엔 너무 가볍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