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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작품 모두 시공간 여행을 소재로 한 소프트 SF로, 선남선녀의 로맨스가 부각되는 해피엔딩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제인>이 잘만든 할리우드 영화 같다면('존 말코비치 되기' 정도) <개는>은 수십가지 재료로 구축된, 혹은 직조된 건축물, 혹은 태피스트리 같다.(이 소설이 시작에서 끝까지 결국 대성당의 완성에 매달려있고 마지막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는 책을 덮으면서 이 소설과 대성당이 일종의 병치를 이루는 것을 느꼈다.)
<제인>은 가볍고 얕다. 시종일관 착상과 이미지 위주이며, 그것들은 반짝 터져버리는 불꽃처럼 표면적 재미 이상을 끌어내지 못한다. 초현실주의자 반대 시위, 리처드 3세 공연, 하이픈을 토해내는 책벌레 등의 장면(말그대로 '장면')등은 그래도 재미있고 신선했지만. 인물들은 쉴새없는 사건과 액션에 종속되어 허둥지둥 쫓아간다는 인상이며, 하데스는 물론 서즈데이의 캐릭터조차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애매모호하다. 때문에 (무려 셰익스피어의) 인용도 패스티쉬에 머물고, 로맨스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양념처럼 겉돈다.
<개는>은 (쉴새없는 대사 때문에) 일견 가벼워 보여도 깊다. 작가는 여러가지 차원에서 치밀하게 작품을 '쌓아올리고' 있다. 난무하는 하이퍼텍스트들은 단순히 끌어온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데 구실한다. 거기에 시차증후군이나 타임패러독스, 시공간편차 등 SF의 장치들이 치밀하게 어우러져 시간, 사랑, 운명 등 진부할만치 추상적인 개념들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캐릭터들은 살아있는 듯 개성적인데, 이는 다분히 작가의 탄탄한 필력과 재치에 힘입는다.
<제인>은 SF인지, 로맨스인지, 패러디인지, 액션물인지 애매하다. 재미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있을 뿐이다. 그러한 작품은 아무리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있더라도 킬링타임용에 그친다. <개는>은 탄탄한 기초공사에 힘입어 빅토리안 키치, SF, 추리소설, 코미디, 로맨스의 재미를 고루 살려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읽고난 후 아 재미있었어 하고 잊어버리는 소설이 아니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