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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ㅣ 웅진 완역 세계명작 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에델 프랭클린 베츠 그림, 손영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인물은 전형적이지만, 가난한 생활에 대한 묘사가 실제 경험에서 나온듯 구체적이어서 작가의 어려웠던 시절을 짐작할 수 있다. 조연들 하나하나가 개성적인 <비밀의 화원>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신파적 멜로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한 <소공자>에 비하면 나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인도 신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당시 영국인으로서는 인도에 대해 편견을 덜 가진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비밀의 화원>의 완역본에서는 인도에 살았었던 메리의 제안으로 콜린이 명상을 통해 자기암시를 하면서 건강을 되찾는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는 소위 '인도의 신비'에 흥미와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상숭배에 대한 주인공의 언급은 작가가 그들의 '예술'은 인정하나 '종교'는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 즉 작가의 흥미라는 것도 결국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인도인은 서구문명, 서구적 정신과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동등한 존재로 인정되는 것이다.)
영국인 특유의 편견은 베키와 주인공의 관계에서도 보인다. 똑같은 처지가 된 후에도 베키는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며, 주인공보다 오히려 더 계급의식이 몸에 배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상호간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애정이 존재하지만, 잊을 만하면 (주로 베키의 말을 통해) 드러나는 '한번 귀족은 영원한 귀족, 한번 아랫것은 영원한 아랫것'이라는 전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위에 언급한 인도 신사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작가에게는 사회계급의 괴리가 인종의 괴리보다 더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걸까? 그 당시 영국인으로서는 특이한 생각이지만,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다국적 자본과 권력의 지배하에 있는 현대에는 오히려 더 친숙한 생각이리라. (야만인은 개종을 하고 주인의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하인이 되는 <로빈슨 크루소>의 논리보다 많이 발전한 모습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