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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포에닉스 1
김진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김진은 언제나 매력적인(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그녀 역시 어떤 분명한 '각인'을 갖고 있으므로. 그리고 사실 그것이야말로 소위 '카리스마'의 실체이다. 만인에게 다 통하는 카리스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카리스마, 아니면 후까시다.)설정과 캐릭터를 제시한다. 아쉬운 점은 그것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단점일 뿐인가?
그녀는 언제나 다른 세계를 꿈꾼다. 우주, 역사속의 시공간, 화목하고 코믹한 대가족, 혹은 어딘가 일본의 어느 도시.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녀의 실제 아이덴티티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반항적 락커이거나 냉혈한 남성이거나 유약한 소년이거나 팜므 파탈이거나 귀엽고 연약한 소녀들이다.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달아나려는 몸부림. 보들레르의 '어디든 좋다, 이 세상 밖이라면!'이라는 절규를 생각나게 하는. 하여간 이런 낯설게 하기의 장치를 씀으로써 그녀는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녀는 뛰어난 상상력과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쩌면 자신이 만든 세계의 뛰어난 인형술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의식은 어느새 그녀를 따라잡는다. 그녀가 만든 모든 세계에는 유령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자의식이라는 유령이다. 포에닉스 시리즈같은 경우는 '유령' 그 자체도 많이 등장하지만, 김진의 만화 전반에서 그 유령은 종종 격렬한 감정의 표출-때로는 독자가 따라잡기 힘든-로 나타난다.
정말로, 그 '감정'들은 종종 인물이나 상황과는 별개의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자신만의 생명을 갖고, 도깨비처럼,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유령을 통제하지 못하며 통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녀 만화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서투름 속에 드러나는 어떤 진정성. 그것은 유시진(역시 자의식 만빵인 작가)이 제시하는 잘 짜여지고 노련하게 '연출된' 세계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나는 그녀가 자의식을 포기하거나 은폐하려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그럴 것 같지도 않지만) 그보다는 그 자의식을 넓히길, 자의식 속에 우주를 담으려는 시도를 바란다. <바람의 나라>에서 그녀는 분명 그런 시도를 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포에닉스>가 더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