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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온전히 상상력만으로 채워진 세계... 이 세계는 한순간 거대한 비밀 조직에 의해서 대통령이 살해되고 남성들이 권력을 장악하며 여성들의 모든 권리를 앗아간 곳이다. 원자력 발전소 등의 붕괴로 인한 방사선의 누출, 자연환경의 파괴로 인해서 세대 생산력이 낮아지고 생산력을 국가 체제 아래 통제하기 위해서 여성의 권리는 무참해진다.

여성의 측면에서 보면 '빼앗긴다'는 면에서 동일하지만 원인으로 보자면 아주 상반될 이 두 배경은 '상상력'으로 구축되면서 희한할 것이 없게 녹아든다. 다시 말하면 이 두가지가 함께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상상력만으로 채워져야 했다. 하지만 이 부드럽게 연잇는 세계에 구조문제를 따지는 건 싸움할 마음 없는 사람 멱살 잡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은유의 설득력은 그 상상력이 허황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곳은 사령관과 천사와 수호자와 아내와 시녀와 하녀와 눈과 아주머니와 구제자 등의 새로운 계급들로 구성되었다. 시녀는 오브프레드, 오브글렛과 같이 이름을 잃고 누구의 소유가 되었다. 남자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적 사회가 복귀한 것이다. 시녀는 많은 여성 중 생산력 검사를 통하여 구제된 사람들이다. 시녀는 빨간 옷을 입는다. 치마, 속옷 모두.

그 시녀 중의 하나인 오브프레드는 불륜의 남자와 결혼을 했고, 갑자기 바뀐 체계를 벗어나려고 하다가 남자를 잃고 아이도 잃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작스레 바뀐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으로, 무서워서 순종하며 살아간다. 그 날을 위한 그 섹스는, '쾌락을 온전히 제거한 생산'만을 위한 섹스는, 위장으로 인해 방탕한 그룹섹스의 모양과 같다. 그래서, 고개 숙인 베일 너머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그녀의 열정은 다시 살아날 줄을 모른다.

그 오브프레드의 목소리로 구술된 문체는 유머 넘치고 활력 있고 감상적이고, 어째서 그 고통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가 소리를 기어들어가게 하게끔 호소력 있다. 그녀가 세상에서 눈을 돌려 맡는 정원에서 흘러들어오는 냄새처럼. 탁월한 비유들과 아름다운 문체만으로도 걸작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오브프레드의 어머니와 레즈비언 친구 모이라의 이야기는 이 소설이 페미니스트의 극단적 상상력임을 노출한다. 서로 적대하던 여성들 사이에서 살짝 드러나는 속살까지. 그들이 억압받는 세계를 극단적으로 노출해서 가부장적 세계의 입맛을 쓰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걸작에 걸맞는, 그리고 환상문학전집이 천명한 환상문학의 고급문학화에 걸맞는 설득력 있는 해설서와 작가에 대한 해설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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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퇘지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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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구판을 읽었다. 신판에도 역자 정장진의 글이 실려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글이 실려있지 않다면 문단도 구분하지 않으며 스토리를 박진감있게 몰아가는 소설에 비해, 비약과 오류로, 거기다 너무 길게 쓴 역자의 글이 종이가 아깝다고 느낀 출판사의 의도이리라. 만약 이 구판의 역자 글이 있다면 출판사는 다음 개정판에는 좀더 설득력 있는 글로 교체했으면 한다.

역자의 글은 프랑스 출판계의 동향과 '랑트레'를 설명하는데, 재미있는 도입부였다. 하지만 그것의 말미, 그가 랑트레의 마리 다리외세크의 출현을 사강과 비교한 점은 설득력이 없었다(정도가 아니라 말이 안된다). 그렇게 다른데, 나이도 다르고 출신성분도 다르다는데 굳이 둘을 비교하는 이유가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움에 목말라는 하는 정서라니.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이야기하자면 다른 많은 예들이 있으리라. 아멜리 노통이나 엠마누엘 카레르, 베르베르 등의 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역자는 이 소설은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변신의 문제는 다른 소설에서 따온 모티브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인용하자면 '다리외세크의 소설이 사회를 풍자하고 인간 세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기 위해 변신의 테마를 사용하고 있음을 전혀 새로운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마리 다리외세크가 다룬 이 소설을 다룬 의도를 '죽음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언어가 닿지 않는 그 너머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가설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흥미있긴 하지만) 작가의 경험과 인터뷰 내용과 프랑스 혈우병 사건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신 모티브가 '아니라'고 말하고 죽음의 문제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소설 내에서 좀더 많은 근거를 찾아야 하리라. 죽음의 문제를 소설에서 본다는 점은 역자가 감수성이 풍부하는 점을 대변하겠지만, 정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소설 내에서 죽음의 생각에 대해 적은 것은 딱 한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왜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는 이상하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가가 모비딕에서 받은 인상을 이야기하고 결론짓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반면 어머니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이 소설을 굳이 정신분석적으로 보아야 할까'라는 부분, 작가는 모비딕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연관시킨 것이지 이 소설과 연관시켜 설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연결하고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망가에 대한 영향'이 보인다는 설명 이후,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없이 문학의 소명을 길게 설명한 부분은 비약이 심해서 꼭 잘라내야 할 부분이다. 그 이후에 계속되는 '죽음이 현재의 문제'라는 설명 역시 -읽으면서 불만이 계속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문장일 수 있지만 설득력을 잃는다.

'<르 피가르>지의 수다스럽기만 한 작품도, 프랑스 기자들이 마구 늘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작품도 아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보통과 다른 역자의 '용기'를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말한 것이 그렇게 엄청난 작품도 아닌 것에 대한 설명이었던 것일까. 출판사는 책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을 품지도 않은 역자를 동원한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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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무라카미가 이제 벌써 50이 넘은 중년아저씨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다. 읽다가 그런 기미를 느끼고 나이를 확인해 보고는 놀랬던 쪽이다. 기미를 느낀 것은 이 아저씨가, 요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네코야마씨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글을 보면서 였다. 어려운 일을 비유해서 '고양이에게 발 내밀기를 가르치는 것만큼 어렵다'라는 말을 어딘가에 썼더니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양이를 발을 내밀 줄 안다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고양이는 자유주의자이고 쿨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시키는 일이 마땅찮았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고양이도 살아가려고 사람들한테 잘 보일 필요가 있는 애완동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생각을 하고 나이를 확인하고는 이 아저씨도 많이 늙었군, 하다가 '고양이 전국 회의 같은 게 있어서 혹독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철저한 의식개혁이 필요하다는 결의문이 채택 되어 모두다 발을 내미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까무러칠 뻔했다. 이런 '썰렁한'(이런 표현이 일어에 어떻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도 두번인가 나온다. 자신의 표현이 썰렁하다고 하는 표현이) 상상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라카미는 취향의 문제다. 그를 좋아하는 것도 취향의 문제이지만, 그의 생활도 취향의 문제다. 취향은 현대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고, 그 붐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자'들 중의 하나가 무라카미인 것만은 확실하다. 음식을 만들 때 이런 음악을 듣는 게 좋다느니 하는 '설득력 있는' 생활의 풍요는 잠시 떨어져 생각하면 생기가 부족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영민한 청년이었고, 여전히 영민하고 깔끔 떠는 아저씨. 일본에 살면서 죽어도 일본 사람들 얘기는 하지 않는 사람, 여행으로 스톡홀름을 가더라도 레코드 가게에만 가서 죽으라고 레코드만 골라대고, 그리고는 그것이 좋은 여행이었다고 여기고 있는 아저씨,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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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문화 : 스타일의 의미 - 문화교양 9
딕 헵디지 지음 / 현실문화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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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 현실문화연구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오자에 대한 사항을 지적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도 없고, 책에 이러한 정보도 나와 있지 않아서, 여기에, 쓴다.

현실문화연구 출판사에서 낸 책만큼 논쟁적으로 읽힐만한 책을 내는 곳도 없을 것이다. 디자인이나 사진 등도 획기적이어서 소비자를 혹하게 한다. 하지만, 현실문화연구 책을 보고 번번이 실망만 한 것 같다.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만 읽을만 했던 것 같다.

41쪽, 한 페이지만을 대상으로 지적해 보겠다. 40쪽부터 시작되는 2장의 처음은 흥미로운 글로 '보인다.' 펑크가 발생하기 전의 상황을 영국의 유례없이 '뜨거워던' 날씨와 젊은이들의 반항을 한데 결합시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단어의 분위기만으로 짐작할 뿐 '번역' 자체가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

1. 오자
책에서 오자가 후두둑 떨어진다. 이 정도로 심한 책은 학교에서 펴내는 교지에서도 본 예가 없을 정도다. 41쪽만 해도, '으례 그랬던것 이상'은 '으레 그랬던 것 이상'으로, '아니러니'는 '아이러니'로 고쳐야 한다.

2. 비문
같은 페이지 41쪽을 보자. 위에서 말한 아니러니가 포함된 문장이다. '그리고 나이든 이들의 날씨에 대한 추리는 상식의 영역 내에서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의 의무적인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졌다.' 무슨 말인가. 여러번 되씹어 보아도 알 수가 없다. 나이든 이들이 날씨에 대한 추리를 왜 하며, '최소한의 의무적인 아이러니'란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최소한의 의무적인이란 적어도 해야하는 일텐데, 아이러니를 적어도 해야하는 일도 있는가.

책을 팔려면 자신들이 돌려보는 책 이상으로는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건 학생들 세미나 같은 작은 모임에서 프린트물 형태로나 나눠져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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