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무라카미가 이제 벌써 50이 넘은 중년아저씨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다. 읽다가 그런 기미를 느끼고 나이를 확인해 보고는 놀랬던 쪽이다. 기미를 느낀 것은 이 아저씨가, 요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네코야마씨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글을 보면서 였다. 어려운 일을 비유해서 '고양이에게 발 내밀기를 가르치는 것만큼 어렵다'라는 말을 어딘가에 썼더니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양이를 발을 내밀 줄 안다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고양이는 자유주의자이고 쿨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시키는 일이 마땅찮았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고양이도 살아가려고 사람들한테 잘 보일 필요가 있는 애완동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생각을 하고 나이를 확인하고는 이 아저씨도 많이 늙었군, 하다가 '고양이 전국 회의 같은 게 있어서 혹독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철저한 의식개혁이 필요하다는 결의문이 채택 되어 모두다 발을 내미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까무러칠 뻔했다. 이런 '썰렁한'(이런 표현이 일어에 어떻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도 두번인가 나온다. 자신의 표현이 썰렁하다고 하는 표현이) 상상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라카미는 취향의 문제다. 그를 좋아하는 것도 취향의 문제이지만, 그의 생활도 취향의 문제다. 취향은 현대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고, 그 붐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자'들 중의 하나가 무라카미인 것만은 확실하다. 음식을 만들 때 이런 음악을 듣는 게 좋다느니 하는 '설득력 있는' 생활의 풍요는 잠시 떨어져 생각하면 생기가 부족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영민한 청년이었고, 여전히 영민하고 깔끔 떠는 아저씨. 일본에 살면서 죽어도 일본 사람들 얘기는 하지 않는 사람, 여행으로 스톡홀름을 가더라도 레코드 가게에만 가서 죽으라고 레코드만 골라대고, 그리고는 그것이 좋은 여행이었다고 여기고 있는 아저씨,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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