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좋은 기회를 통해서 정말 거의 4년 만에 조정래씨 작품을 읽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아리랑 전권이었으니 참 반가운 일이었다.
조정래 작가하면 대하소설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의외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장편소설들도 많이 있었다.
거기다가 오래된 책들이 개판돼서 나오니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비탈진 음지』 또한 70년대 만들어진 책이 약 40년 만에 새로운 책으로 빛을 보게 된 듯하다.
책을 펴들고 처음 읽어 내려간 부분부터 공감을 하게 했고 짠하게 만들었다.
'굶주리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시인 릴케의 고통스러운 읊조림입니다. (중략)
소설가로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독자들 또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입니다.
『비탈진 음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작가의 말에서부터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대충 알게 해줬으며
책을 덮는 순간까지 주인공은 안타까움에서 불쌍함 끝내는 처참한 모습으로 나를 슬프고 화나게 만들었다.
『비탈진 음지』는 1970년대 급속도로 변해가는 대한민국에서 일명 '무작정 상경 1세대'를 그리고 있었다.
황석영 씨의 『낯익은 세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좀 더 자세하게 그 시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무작정 상경 1세대'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고향에서도 버림받고 먼 타향에서도 버림 받는 그들의 삶은
끝내 지독한 가난이라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4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과 그때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복지정책이며 서민정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때 배고픈 사람들은 지금 여전히 배고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부자가 계속 부자이듯이 가난은 아주 별다른 일이 없다면 대물림 되고 있고, 배고픈 사람은 끝도 없이 배고플 거란 생각을 했다.
“한 목숨 사는 것이 말맹키로 고렇크름 쉬움사 무신 걱정이 있을랍이여. 다 모르는 소리요. 니나 네나 다 한시상 사는 것이제만 고것이 천층만층이니께. 동정 한 닢 땀세 10리럴 걷고, 주먹밥 한 덩어리 땀세 살인도 허는 것잉께. 사람 사는 시상언 다 구구각색이고 한시상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고 그런법이요.”
『비탈진음지』의 주인공인 복천영감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처참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그에게는 왜 그렇게 안 좋은 일들이 끈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겪어 보지 못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너무 하다 싶을 정도의 나락이었다.
어떻게 사람 삶이라는 게 이렇게 까지 비참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문득 생각했다. 불평불만이 많았고, 부모님께 투정부린 내 생활을 생각했다.
삼시세끼 배부를 수 있고, 돈 걱정 없이 공부 할 수 있는 내 생활이 얼마나 천국인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느끼게 했고, 참 배부르다 못해 배터진 짓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가 야속하기만 했다.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남을 속이지 않으면,
도둑질 하지 않으면,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아니 살아남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멍청하게 끌려 다니고 바보처럼 웃고 있다 보면 이용만 당할 뿐이었다.
누구보다 이기적이 여야하고
나만 생각해야 며 남을 짓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자본주의라는 게 참 무서운 거란 생각을 몇 번씩 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얻으면 무엇이 남을까? 라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러나 복천영감처럼 이기적인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들도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니까.
결국 모든 결론은 정부로 넘어간다.
서민정책, 민생안전 말만 그럴싸하게 하지만
언제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자신들을 위한 정책만하는 그들이다.
며칠 전에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복지 정책하겠습니다. 세금 적게 걷겠다는 말에 속는 국민들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뭐 너무 속아서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지만 후회하기에는 늦었으니 다음에 더 잘해야겠지..)
내가 뽑을 정치인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그리고 나서 투표권을 누려야한다.
무턱대고 우리 교회사람 우리 지역사람 우리 학교사람이라는 말이 통해서는 안 되는데 자꾸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복천 영감이 비탈진 음지에서 나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야하는 시점이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인색한 시민이 아니라
서로 손을 내밀어 주고 잡아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나부터라도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정말 좋은 책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처참함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준다.
(복천 영감도 희망을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