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암소 - ...한줌의 부도덕
진중권 지음 / 다우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시칠리아의 암소는 고대 시칠리아의 사형기구였다. 기요틴을 제작한 이와 마찬가지로 이 기구를 만든 제작자도 자신의 기술로 사형을 당한다. 시칠리아의 암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걸로 어떻게 사형을 시켰는지 궁금했으나 책에는 그런 언급이 없다. 작가는 도리어 '그냥' 이런 제목을 썼다고 말한다. 2000년도에 나온 시사 관련 책을 2009년에 읽으려니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알고 있는 이야기는 스타 블로거로 활약 중인 한윤형씨의 고등학교 때 일화 정도? 이 책이 나올 당시의 나는 중딩 꼬꼬마였고, 한참 연예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에게 시사나 상식이 있었을 리가. 그래서 책을 읽는 게 참 더뎠다. 책을 언제 손에 잡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책 읽는 속도가 더뎠다. 알듯 말듯 하면서도 머리에 박히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6장 정신, 유희, 구원에서는 도리어 아는 게 없으니 빨리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쓴 칼럼이 아니었던 건가?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6장의 첫 번째 칼럼과 두 번째 칼럼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호라 통재라! 철학적 상식의 부재가 이렇게 뼈아플쏘냐.. 
 


사실 책머리에 나와 있는 말처럼 이 책은 진중권씨의 배설물이다. 많은 곳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어서 그럴지는 몰라도, 한 가지 주제로 엮을 수도 없고 온갖 주제들이 정신없이 난타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9년 전 계간지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앞부분을 읽고 있을 때는 동저 '호모코레아니쿠스'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으나 호모~는 훨씬 더 문체가 부드럽고 좀 더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모~도 칼럼을 엮어 낸 책이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진중권의 글쓰기도 유하게 변했다- 시칠리아의 암소는 무지한 내 자신을 탓함과 동시에 이런 책을 읽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여러 철학자들과 미학이론에 대한 완역본을 읽으며 내 생각을 정립하는 연습을 해야지, 이렇게 남이 배설해 놓은 생각만 주워 먹는 것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도움이 된 게 있다면 들뢰즈가 시뮬라르크에 대해 정의내린 것에 관심이 생겼고 근대와 탈근대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조가 궁금해졌다. 유희하는 글쓰기가 제일 중요한 것이며 좌파로 살고자 하는 나에게 어떤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지에 대한 통찰도 주었다.

물론 거기까지였다- 현대의 정치사를 몰라서는 안 되겠지만 현 시류의 정치, 사회 이야기도 잘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9년 전의 강철 김영환이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 진교수가 당부한대로 이런 남이 사정해놓은 글은 그만 읽고 생각을 정립하는 시기를 가져야겠다. 제일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이 머리에 든 거 없으면서 활동력만 왕성한 좌파들 아닌가. 하고 있는 정당 활동이나 여러 가지 활동을 살펴보니 내가 지금 딱 상종 못 할 그 꼴로 달려가고 있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둘러봐야 할 때가 찾아온 것 같다. 책 읽자 책 읽자 책을 좍좍 넘기자.

 

책 내용에 대한 언급은 도저히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가 없어서 포기. 그냥 중궈의 마음속을 잠시 엿본 느낌이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만 하나 골라 언급하고 마치겠다.

『 자,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하자. 선택하기도 전에 내게 강제로 주어진 삶의 양식, 사회적 가치관, 세계관 등. 이를 한번 의심에 붙이고, 통념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평균치에 구애받음 없이 나 스스로 내 삶의 목표를 정하고, 내 가치를 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으로 내 행위를 규제할 내 도덕을 내가 만들어 쓰는 거다. 이렇게 스스로 창조한 게임 규칙에 따라 내 삶을 이끌어나감으로써 삶을 작품으로 가꾸어 가는 것, 자기에의 배려. 이게 나의 주관적 미적 이데올로기. 인간은, 아니 적어도 나는, 제멋에 살 때 가장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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