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절판


여자라는 말에는
어떠한 것도 용서해야 한다.
여자가 저지른 잘못에
그렇게까지 놀라지 말지니.

여자의 거짓말, 여자의 변덕, 여자의 방종은
여자가 입은 기모노의 꽃과 새 무늬처럼
모두 여자의 아름다움이니
칭찬하며 바라보아야 하는 것.

훔치고 속여도 비난하지 말라.
남의 눈을 속여가며 여자들이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나도
질투하거나 체면 운운하지 말라.
언제 어떤 경우에도 관용을 베풀라.
마음을 너그러이 하라, 여자야말로 꽃 중의 꽃
하나, 사랑의 기술을 모르는 가짜 여자
그 여자는 경멸하라.
그들은 여자이며 여자가 아니니.

나는 가을꽃을 좋아한다.
가을꽃은 바람을 품고 있다.
억새도 오이풀도, 들판에서 횡횡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면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바짝 마른 느낌이 좋다.
색감이 빠진, 깊은 아름다움.
시들지 않았는데 시든 것처럼 보이는 정취도 좋아한다.
역시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그 자유로움은 무엇일까. 마음을 활짝 연 사람의 자유로운. 투철한 마음과 맑은 눈, 나그네 같은 여유로움과 늘 거기에 어려 있는 고독.
가을꽃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드넓은 곳에 피어있는 그 불안함이 찡하다.
우뚝, 가녀리지만 강하고 당차게 피어 있다.
가을꽃은 몸이 푸르르 떨릴 만큼 섹시하다.

남성 친구와 연인의 차이는 육체관계의 유무에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육체관계는 도처에 존재하고, 그것까지 포함한 철벽 같은 우정도 존재한다.
연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상황은 때로 절망적이지만, 우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때로 멋진 일이다.
그러니 남성 친구와의 관계에서 금기시해야 할 것은 섹스가 아니다.
대게는 마음먹기 나름이니 금기는 애당초 각자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는 잤느냐 안 잤느냐를 꽤나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참 묘한 일이다.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가령 유명한 호텔의 바와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거실에서, 침실에서 있었던 수많은 특별한 순간이 이 소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일종의 애정 속에 그려져 있다.

모든 아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권태로워한다.
아름다운 책과 마찬가지로 절망에 젖어 있는 것이다.
세계를 미쳐 상대화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구슬처럼 투명하고 딱딱하고 고립되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 없는 쾌락이다.

나무처럼 커다란 램프 갓 아래에서 밴더데켄 언니가 동생들에게 읽어준 이야기. 이야기가 끝나자 동생들은 말했어요.
"또 읽어줘, 응? 언니."
그런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이애나 혼자만 이렇게 말했지요.
"둘이 다시 만나서 정말 잘됐다."
‘어린이의 정경’을 읽고 난 후, 자신이 행복한 다이애나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여행이란 몸에 지닌 것으로 결판이 난다.
자신을 위해 마련한 것도 아니고, 있을 곳이 일정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가족도 없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와도 이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그 며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머리와 마음과 몸과 가방 하나, 그 홀가분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무언가 예정한 일은 없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종종 있어 우습다.
예정이 없는데, 예정에 없는 일은 있다니.

어떤 음악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 또는 사건과 연결되는 일도 있다.
기억이란 완강한 것이라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단박에 밀려와 현재를 위태롭게 한다.

음악은 늘 곁에 있었다.
비처럼 내려와 느끼고 생각하기 전에 내게 스며든다.
음악에서 힘을 얻기도 하고 동요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움직인다.
그 결과 어떤 에너지가 생긴다.
내일도 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매력있는 여자죠... 에쿠니 가오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이런 말이 반드시 적절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비밀노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레벨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여기서 레벨이란 즉 정신적인 장소,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장교에게 쌍둥이가 "자살할 거면 거들어드리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장교는 "고마워, 친절하군."이라고 대답하지만, 어느 쪽의 말에도 일말의 빈정거림이 섞여 있지 않다.
성실함 속에서, 이런 대화가 성립하는 레벨.
엄마와 여동생의 뼈를 갈고 손질해서 이어 매다는 것도 그렇다.
감정을 똑바로 직시하고, 모든 기준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려 하는 것, 아주 동물적인, 그 판단.

어린 시절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모든 것이- 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다.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아이들 위로 그저 내려온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린 시절이 특별한 이유 중에는, 어린아이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말로-후회나 실망, 고독과 애달픔도 그렇다- 질서정연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도 하나 있다.
하나의 개념을 말로써 파악하는 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현저하게 잃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에 이유를 부여해 슬픔을 경감해주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이와나미 쇼텐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책을 많이 만드는 출판사이면서도,
'절판'과'대망의 한정 재출간'을 반복하는 행위는 그만두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말에 대해.
내일 또 보자.
밤에 잠들기 전, 나와 동생이 반드시 나누는 인사말이다.
잘 자라고 말한 후에(또는 대신), 꼭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단박에 행복해진다. 내일도 놀 수 있다고.
내일이 있다는 것은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면 새삼스럽게 기쁘다.
안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또 보자.
얼마나 행복한 말인가.
내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

몹시 난처하게 되었다고 한심한 표정으로 칭얼거렸더니, 기운 나게 노래를 부르자고 한다.
<백설공주의 노래>(아동용 레코드에 실려 있는 노래다. 동생이 어렸을 때 애청했다.)와 <갖가지 인생>(이건 기운 내고 싶을 때 부르는 노래다)을 부른다.
...............
도망쳐. 필요하다면. 나는 격언을 날조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오꼬.아내와의 칩거 창비세계문학 22
후루이 요시끼찌 지음, 정병호 옮김 / 창비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인상적인 묘사와 문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오꼬.아내와의 칩거 창비세계문학 22
후루이 요시끼찌 지음, 정병호 옮김 / 창비 / 2013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아마 요오꼬는 자기 병의 뿌리를 제대로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이 생기든 평생 변할 수 없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알고 아래층 언니를 향해 자신을 환자로서 병원에 보내도 상관없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두사람 모두 대단해지면 되지."
요오꼬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음식을 먹는 방식을 의식하고 어색해졌다.
두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 속에 빠져 있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숨조차 죽이고 먹고 있노라니 자신의 맹목적인 생명 속에 비스듬히 잠겨들어가 눈만 밖으로 내놓고 스스로를 응시하는 듯한 고독감이 있었다.
한참 지나서 요오꼬는 크림 속에 드러난 딸기를 포크 끝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옛날에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의 사소한 버릇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벌써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무리해도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어..."
요오꼬는 언제까지고 딸기를 쿡쿡 찌르다 다시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올려 그가 먹는 모습을 애처로운 듯이 바라보면서 다시 말했다.
그렇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 남의 버릇을 좋아하게 된다는 걸 조금 이해한 느낌이 들어."

"억지로 헤치고 들어가려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두려는 것도 아니고, 너의 병을 꼭 끌어안으려는 것도 아니고, 너를 병으로부터 끄집어내려는 것도 아니야... 나 자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중간한 면이 있거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마주 보고 함께 먹으며 있을 수 있는 거야. 난 지금 네 앞에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느 한쪽이 한번 더 힐문하면, 서로 마음 안에서 범한 사소한 부실을, 사소하면서도 의외로 깊은 부실을 서로 비난하는 수밖에 없는 곳까지 와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쨌든 십 년간, 소년 소녀에 가까웠을 무렵부터 청춘이 끝나갈 무렵까지 헤어지지 않고 걸어온 남녀의 평형감각으로 멈춰 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