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신 같은 존재가 있다면, 부디 리에 씨의 마음속의 굳게 닫힌 검은색 문을 열어주기를...-193쪽
손에 전달돼 오는 감촉, 내 손안에서 자유자재로 여러가지 모양이 생겨납니다. 효모의 힘으로 부풀어 오른 반죽을 화덕에서 구우면 색깔이 변하면서 전혀 다른 향이 태어납니다.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가 돈을 내고 사주고 우리는 그 돈으로 생활합니다. 무엇에 지불한 돈인지 하나하나 분명한 점이 샐러리맨 시절하고는 달라서 나는 무척 맘에 듭니다.-182쪽
리에 씨는 혼자서 자주 '달과 마니' 라는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그 모습이 왠지 무척 슬퍼 보여서 바라보는 나까지 슬퍼졌습니다. 가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미즈시마 씨도 슬퍼보였죠. 그럴 때면 리에 씨가 마음속 깊은 곳에 어둠을 품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달이 있기에 마니가 있어. 마니가 있기에 달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분명히 있죠. 리에 씨는 문득 손을 멈추고 아야를 바라봤습니다. 아야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리에 씨는 그대로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 했습니다.-148쪽
밤이 깊어가자 아베 씨가 폴카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폴카는 옛날에 유행했던 때가 있었잖아요. 아야가 내게 손을 쓰윽 내밀며 춤을 추자고 청했습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춤을 잘 못 추기 때문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아야의 얼굴을 보니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손벽을 치며 박자를 맞추는 가운데 둘이서 춤을 추는데 어느 틈엔가 히로카와 씨 부부와 미즈시마 씨 부부도 춤을 추고, 요코씨와 우편배달부 청년도 이상한 포즈를 하고 춤을 췄습니다. 아야는 모든 걸 잊고 춤추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런 아야의 모습을 보는 건 오랫만이었기 때문에 나도 꿈을 꾸듯 황홀한 기분으로 춤을 추었습니다.-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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