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대하여 - 다니자키 준이치로 산문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고운기 옮김 / 눌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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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신에도 ‘숭고한 정신’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육체에도 ‘숭고한 육체’라 불리는 것이 있다고.
게다가 일본 여성에게는 무게가 나가는 육체를 가진 이가 매우 적다고.
있더라도 그 수명이 아주 짧다.
서양 부인은 여성미의 극치에 달하는 평균 연령이 31 32세 – 곧 결혼 후 몇 년 사이라 하지만, 일본에서는 18세 19세부터 겨우 24,25세까지의 처녀 사이에서라야 겨우 적은 수의 아름다운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것도 대부분 결혼과 동시에 바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가끔 아무개의 부인이라든가, 여배우나 게이샤 중에 미안 소리를 드는 이가 있지만,
대게 그런 것은 여성잡지에나 나오는 그림상의 미인이고, 실제 맞닥뜨려 보면 피부가 처지고 얼굴에 푸르죽죽한 화장독이나 검버섯이 생기고, 눈 바탕에 초라한 방사의 과잉에서 나오는 피로한 빛이 떠 있다.
특히 처녀 때의 눈처럼 희게 부푼 가슴과, 가득 차 넘칠 듯한 허리의 곡선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그대로 지닌 이는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좋다.
30세가 되면 어깨살이 죽고 허리둘레가 이상하게 빠져서 호리호리하게 되어, 좀체 양장이 몸에 맞지 않게 된다.

결국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일본 옷을 입거나 화장의 기교로 끌어올린 것으로,
가녀린 아름다움은 있을지라도, 정말 남자를 그 앞에 무릎 꿇게 할 만한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성스러운 음부', 아니면 '음란한 정부'라 불리는 타입의 여자가 있다면 있되.
일본에서는 이것이 있을 리 없다.
일본의 여자는 음란해짐과 동시에 처녀의 건강함과 단정함을 잃고,
혈색도 자태도 늙어져서, 작부와 가릴 바 없는 낮은 격의 음부가 되고 말았다.


클라라 보우 유의 '그것'과 온나다이카쿠 유의 '색기', 어느 쪽이 좋은가는 사람의 기호에 맡겨 둘 뿐이라도,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미국식 노출광 시대에, 레뷰가 유행하여서 여자의 나체가 문득 드물지도 신기하지도 않은 시대가 되었다면,
그것의 매력은 점점 잃게 되지는 않을까.
어떤 미인이라도 알몸 이상을 더 드러낼 일은 불가능하기에, 나체에 대해서 모두가 둔감해져 버리고 만다면,
모처럼의 그것도 결국 사람을 도발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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