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진실의 빛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절판


어쩌면 사이조에게는 미래에 관한 선택지가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직업 선택의 여지는 꽤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던들 지금과 똑같았으리라.
일에 매진하여 성과를 올린다.
그 외의 일은 모두 하찮고, 남들보다 잘나 보이고 싶다는 과시욕이나 허영심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그 안에서 와타비키처럼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인물이 나타나고, 톰처럼 몰래 원한을 품는 사람도 나오겠지.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사이조는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다.
약삭빠르게 세상을 헤쳐 나가겠다는 야심 같은 건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데서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범인을 쫓는 것만이 나의 존재이유인데. 이제는 그 존재 이유마저 뺏기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가족마저 잃고 말았다.
존재할 의미가 없는 빈껍데기. 그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동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었다고 하면 그야말로 완벽히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환상이라고 판명된 이후의 허탈감. 불쑥 뱃속에서부터 웃음이 터지려는 충동이 치밀었다.
기가 막히게 우스워서, 벤치에 혼자 앉은 채로 키득키득 새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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