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1950년대의 청춘이 우습다고 비웃기는 쉽다. 엘리트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학생 영웅주의라고 비판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다. 냉전이 종결된 지금 시대에서는 그들의 외골수가 어설픈 피에로의 감상적인 일장춘몽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물론 혁명의 꿈에 휩쓸리지 않고 냉철하게 고요한 언어로 말하던 일부 사람들도 있다. 사상가인 하야시 다츠오의 스탈린주의 비판 문장 같은 것도 그 중 하나다.
"나답지 않다니, 이부키 씨는 아직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스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소녀가 대체 어떤 여자인지 그는 거의 알지 못한다. 겉모습과 얄팍한 정보를 가지고 다치하라 에리코라는 소녀의 이미지를 멋대로 구축했을 뿐이다.
"우선 첫째는 움직여볼 것, 어림짐작이라도 좋으니 앞으로 걸어나가는 겁니다. 두 번째는 멈춰 서서 잘 생각해볼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것.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부키 씨. 이건 제 방법인데, 인생에는 세 번의 시기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젊을 때와 성숙했을 때와 나이를 먹었을 때입니다.
‘그것이 나의 청춘이다. 청춘이라는 말랑말랑한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청춘이 아닌 처춘 凄春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 난 운명에 몸을 맡기면서도, 어떠한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치열하게 이 시기를 헤쳐나갈 것이다.’
신스케 오빠.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가 없는 건가 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돛단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일단 순풍이 불기 시작하면 가만히 있어도 배는 쑥쑥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미덥지 못하고 볼품이 없느냐.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 호주에서 태어나서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훗카이도에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부키 씨와 에리코씨와 함께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어디로 갈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어떤 커다란 운명의 손바닥 위에 놓여서 이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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