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왔지만 마지막 선을 넘지는 않았다.하고 말한다면 남편은 과연 믿을까. 그러나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선은 매우 좁은 의미로 정말 마지막을 의미하는 하나의 선이고 그것을 넘지만 않는다면 해서는 안될 것도 없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봉건적인 부모님에게 교육을 받아서 인습적인 형식주의가 언제나 머릿속에 박여 있고, 그래서 정신적으로야 어찌 되든 남편이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오서독스한 방법으로 성교만 하지 않는다면 정조를 더럽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의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조라는 형식만을 지키면서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 온갖 것을 다 해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답변하기 곤란하지만....
..... 그렇지만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를 운운하며 이제 와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남편이나 나는 서로가 서로를 충동질하고 부추기고 팽팽히 맞서면서 어쩔수 없는 힘에 이끌려 꿈꾸듯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나역시 "자신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들키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나 처럼 다른 사람에게 속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하다못해 자기 자신에게 그것을 말하거나 들려줄 필요가 있다"라고 한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남편이 나의 일기를 몰래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남편에게 읽히는 것도 목적의 하나였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건 그렇고 나의 몸에 음탕한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남편을 죽이려고까지 계획하는 마음이 잠재해 있었다는 사실은 어찌 된 일일까. 도대체 그런 마음이 언제 어느 틈에 파고들었을까. 죽은 남편처럼 성격이 꼬이고 병적이며, 사악한 정신으로 집요하게 조금씩 뒤틀리면, 아무리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고 해도 결국에는 삐뚤어지고 마는 걸까. 그렇지 않고 나의 경우 고지식하고 봉건적인 여자로 보인 것은 환경과 부모의 가정교육 탓으로, 원래는 무서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역시 잘 생각해보지 않으면 어느쪽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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