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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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곱씹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기메는 애써 명랑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당찬 성격은 리큐를 닮았으리라.-478쪽

날카로움을 내보이는 것도 감추는 것도 자유자재. 한없이 날카로워질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을 솜으로 싸서 감추고 웃음으로 가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리큐따위가 흉내 낼 수 있는 재주가 아니었다. 다구를 보는 눈이나 다실을 꾸미는 일에 관해서라면 천하제일임을 자부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는 인간으로서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간 사람의 길은 다도의 길보다 심오하다.

속으로는 서로 미워해도, 방에 들어와 차를 사이에 놓으면 예절을 갖추고 이야기할 수 있다. 차는 바로 그런 때 유용했다.-382쪽

여자가 손을 내밀기에 붓과 회지를 건넸다. 무궁화 꽃을 바라본 다음, 붓을 눌렀다. 꽃은 물을 흡수해 생기를 조금 되찾았다.
槿花一日自爲榮 무궁화는 하루뿐이나 스스로 영화를 이룬다.
"백거이로구나."
요시로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도 아는 시였다.
언젠가 마당에 무궁화가 피었기에 기타무키 도천에게 무궁화를 노래한 한시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도천이 가르쳐준 것이 백거이의 시 한 구절이었다. 무궁화는 하루밖에 피지 않지만 그래도 대단한 영화라고 읊는 시였다.
요시로는 북과 종이를 받아 여자가 쓴 옆에 한 줄 덧붙였다.
何須戀世常憂死 어찌 세상에 연연하고 죽음을 근심하라.

인간 세상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죽음을 근심해보았자 소용없다.
그러나 제 몸을 부정하고 생을 혐오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삶과 죽음은 전부 환영, 환영속의 애락에 어찌 관심을 두는가. 시는 그렇게 맺어졌다.
글을 써서 보여주자 여자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어지간히 기뻤는지 몇 번씩 거듭해 읽으며 눈물을 글썽였다.-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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