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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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기억이란 보편적으로 상대방도 나와 같은 비슷한 생각을,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기억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접근법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것을 편지라는 색다른 매개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고백하는 부분, 기억하는 부분 그 자체에는 사실상 결함이 많고 그것에 오해와 가설이 포함될 경우 더더욱 위험한 수준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십 년 뒤의 졸업문집.

이십 년 뒤의 숙제.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일지도...

그래서 일까... 지아키에 대한 궁금증이 90페이지에서 풀려나갔을 때 묘한 쾌감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가능성에 대한 가설이 강화되어 버리면 그것이 곧 사실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관계의 확실성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족한 부분과 자신이 믿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전부 포함 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불편함이 없는 수준(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규격화 된 틀이라고 말해야 할까?)에서 그 기억들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상호작용을 만들어간다.

살아오면서 몇 번씩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자신이 어울렸던 친구들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만 보이던 부분이고 믿으려 했던 부분이란 것을.. 사람들 마다 제각각 나에 대해서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서 다른 각도를 (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구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로 인해서 자신이 모르고 있던 어떤 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을 경우 또는 듣게 되거나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실망하기도 하고 관계가 미묘하게 틀어지기도 하며 어긋나기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한 부분과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어떤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느낌은 어떠했던가?

이해관계에 따라, 집단 내에서의 관계역학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같은 사건의 전혀 다른 전개란 사실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때에 따라선 기억이라는 것은 너무나 지독한 편견일 수도 있고 집착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기억에 대한, 혹은 가설에 대한 공유는 너무나 경솔할 수도 있으며 성가신 비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나의 작은 행동, 사소한 단서 하나 하나가 나중엔 어떤 해석을 위한 중요한 도구이자 증거가 되어버릴 수도 있느니 이 또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인의 마음을 알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무모한 노력이고 불확실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는 가설 속에서 상대방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손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되는, 어떤 상황이든 해석은 사실상 많은 부분 오해와 논쟁의 연속이다, 따라서 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어쨌든 사람이 자신처럼 생각하길 바라고 착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보면 이 편지의 대화들은 나름대로 그들의 방식대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낭만적인 이야기들도 아니고 이전 작품들처럼 작가 특유의 전형적인 어두운 이야기들로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지를 적당한 알람을 통해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그렇기에 그렇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의사소통을 서신형식으로만 전달하는 있는 부분이 여전히 생각할 꺼리들을 많이 제공해주고 있었다. 많은 여백을 던져줌으로써 축축하고 물렁물렁한 기분에 젖어 들게 하는 느낌을 말이다.

어쩌면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각,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철저하게 어디까지나 우리의 가정일 뿐이라는 것이다...(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지아키를 그런 지아키로 인지하고 있었으니... 또 반대로 그 지아키가 그런 지아키가 맞다 해도 달리 어떻게 할 방법도 없지만...)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상관관계와 마무리되어지는 인과관계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 짧은 탄식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작게 난도질 당한 느낌이었다.


인간 본성이나 마음에 대한 어떤 설명도 사실 완벽한 이론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그 어떤 설명도 부실해질 것이며 헛된 노력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소설의 역할은 분명 어중간한 심리학 서적 보다 더 많은 사례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다른 설명이 하나도 없는 오직 편지를 주고 받는, 그 편지 내용만을 빌어서 은근하게 재편되는 심리들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왕복서신이라는 현재의 오늘과는 그 전달 수단이 많이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이 조금 흥미롭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부분으로 인해 젊은 독자층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가진 않을까 싶다. 서신이라는 방식을 이용해서 이야기들 전달하는, 기다리는 방식을 경험하는 방법에 익숙지 않은 세대들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선 다소 소재가 가진 선택과 장점이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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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往復書簡 , 왕복서간, 미나토 가나에
    from いきる - mix1110 - 윤재홍 2012-06-22 17:44 
    어떠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기억이란 보편적으로 상대방도 나와 같은 비슷한 생각을,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기억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접근법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것을 편지라는 색다른 매개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