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서 마지막에 언급된 소설)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초반(3장)을 읽다보면
가족들은 오클라호마의 농장을 빼앗기고 캘리포니아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이 작품은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대공황기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강제 이주가 결국엔 새로운 착취 공간으로 이동될 뿐이지만...)
마치 그들의 이동과 마찬가지로 육지거북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앞으로 조드 가족이 겪게 될 여정을 미리 보여 주는 일종의 예고편이자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암시하는데...
B가 투숙할 때 마다 사라지는 책장의 공백과 그 책들을 뒤따라 읽으며(모두 이동하는 서사의 책들이다. 에렌디라의 도피, 말로의 여행, 조드 가족의 서부행이나 오즈의 마법사 등등 ) B와 은밀한 교신(독서를 통해 B의 이동을 상상.. 아니 서서화)하던 '나'는 그의 마지막 방문에 사라진 책인 분노의 포도를 읽게 된다.
소설 속의 '나'는 B를 직접 소유하지 못한다(아니 그럴 수 있다 한들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B의 흔적을 보존한다. (오가와 요코 문학의 매무 중요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B는 이동하기 때문에 사라지고 나(화자)는 흔적을 수집하기 때문에 B를 붙잡는....
영화배우 B는 그가 가진 화려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 이동(어딘가로 묵묵히 이동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을 계속한다.
오가와 요코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동을 믿어주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었다.
B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그가 계속 걷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약속된 이동'이란 어딘가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이동을 기억해주고 증언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이동하면서 스스로를 잃기도 하고, 자신을 되찾기도, 되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라진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 끝도 목적지가 아니라 흔적일 것이고 그 흔적을 기억하는 타인의 행위가 이동을 구원으로 바뀌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또.. B가 읽고 가져간 책들은 그 소설 속 이동을 B자신이 이어받은 것으로 B역시도 그 길을 새롭게 걷는 인물이 되는 것일 수도...
나도 이동하고 있다. 약속된? 이동을 향해서... 걸어가고 또 걸어가고 있다.
오늘처럼 오가와 요코의 호텔 객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고, 과거 에렌디라에서는 마르케스의 사막으로 갔었고, 어둠의 심연에서는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분노의 포도에서는 66번 국도를 따라가던...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물리적으로는)현실의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계속 이동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소설 '약속된 이동'에서는 B가 책을 가져가서 공백을 남겼고 소설 속의 '나'는 그 공백을 따라서 B의 이동을 추적하는데...
내가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면 미래의 누군가(그것이 나 혼자일 뿐이라도)는 그 문장을 따라 나 삶을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ㅋㅋ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취미와 즐거움으로, 단순히 좋아서 남기게 된 지난 기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블로그만 해도 20년이 넘어가는데... 때때로 과거의 기록을 다시 바라보면 이 기록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보인다.
그 별것 아닌 기록들을 보게 되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증언하는 특별한 느낌이랄까?
친구도 없고 외롭지만 이렇듯 기억해주는 다른 사람이 없어도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증언해줄 수 있다는 믿음...
종교도 없고 필요치도 않는 나는 구원이라는 말을 종교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완전히 소멸하지 않게 해주는 것에 나는 큰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도 모두 시간처럼 결국엔 지나간다. 읽었던 책도, 생각들도, 기쁨도 감동도, 그 시절의 그때의 나도 다 지나간다.
그렇지만 기록을 남기면 아주 작더라도 흔적이 생기고 그 흔적들(그것이 한 문장이든 사진 한장이든)은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와준다.
어쩌면 지금 내가 블로그에 작성하고 있는 이 생각들 자체도 글로써 미래의 나에게 보내놓는 작은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여기 있었고, 이렇게 생각하던 나는 그렇게 이곳을 지나갔다.. 하고...
어느 예정된 목적지에 간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사라져가는 것을 다음 시간으로 계속 데려간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구원이다.
소설 읽기라는 것이 전혀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미래에도(그럴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어디에 도착하려 또는 어떤 사람이 되려 읽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읽고 싶어서 읽고 생각하고 싶어 생각도 하고 단지 좋아서 기록도 한 것이다.
그렇게 '약속된 이동'의 메세지처럼, 이르러야 할 장소가 어딘지 무엇인지 몰라도 계속 나 역시 이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되돌아보니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꽤 멀리 와 있다. 그리고 목적 없이 걸었는데 작은 나만의 길이 생긴 것 같아. 쑥스럽지만 흐뭇하다.
별 것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연결과 구원의 매개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블로그의 기록은 내 이동의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에서 주목받고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 누군가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내가 지나온 시간이 정말로 사라지지 않았음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지도이자 기억의 장소이길 바래왔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서... 그리고 내가 무엇을 보고 읽었는가보다 나는 무엇을 따라서 함께 걸어왔는지, 어떤 작품들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변해왔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계속 걷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준다면 그것만으로 구원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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