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1년 11월
구판절판


이윽고 우중충한 오늘 하루와 음산한 내일의 예측에 풀죽은 나는, 마들렌의 한 조각이 부드럽게 되어 가고 있는 차를 한 숟가락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정수로 나를 채우고, 그 즉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였다.-51쪽쪽

그러자 소녀는 갑자기 미소를 거두고, 삽을 주워 들자마자, 내 쪽을 뒤돌아보지 않고, 온순한, 야릇한, 앙큼한 표정을 짓고 멀어져 갔다. 이러한 모양으로 내 곁을 질베르트라는 이름이 지나갔다. 한순간 전까지만 해도 소녀는 막연한 형상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 이름에 의해 인격이 주어진 것이었다. 말하자면 부적처럼 주어진 이름, 이 부적이 언젠가는 나를 그녀와 만나게 해줄는지도 몰랐다. 이처럼 이 이름은 말리와 꽃무 위에 울리며, 초록빛으로 칠한 물뿌리개의 물방울처럼 살을 에는 듯이 시원하게 지나갔다.-69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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