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혁명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자연과학선집
토머스 새뮤얼 쿤 지음, 정동욱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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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누적적으로 진보하지 않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진보한다는 『과학혁명의 구조』(1962)의 테제는 오늘날 교양 있는 사람들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토머스 쿤이 하버드대학에서 교양 과학 수업의 조교로 일하던 1947년의 상식은 과학이 지식 축적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가 출간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이러한 통념에 대한 『과학혁명의 구조』의 도전을 예비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중심으로 천문학의 내부와 외부가 상호작용해 온 역사를 성공적으로 조망했기 때문이다. 고대 천문학에 대한 1~2장의 서술을 거쳐 3~4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 체계의 외적 함의들로 논의를 확장하는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연구가 천문학 안팎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5~7장으로 마무리된다. 패러다임이 과학에 앞서 과학의 대상과 해법을 결정짓는 원천이라고 할 때, 이렇듯 과학 활동의 지적 배경에 주목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과학혁명의 구조』의 ‘예고편’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예고편’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독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혁명’이라는 용어로 돌아가 보자. 이 용어는 ‘혁명’이 주는 어감 때문에 과학이 단번에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오해를 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과학의 근본적인 개념들이 겪는 주요한 격변들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고 명시한다(357). 과학과 사상사의 결합을 통해 “혁명이 가진 다원성의 중요성을 보여” 주려는 쿤(xii)의 연구 목적을 달성한 것도 이 책의 중요한 가치이겠으나, 상술한 견지에서 필자는 그와 더불어 혁명의 점진적 과정을 섬세하게 기술해 낸 쿤의 관찰력에 주목하고 싶다. 이전의 스콜라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씨앗을 찾는 동시에 이전 천문학 전통의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막강한 구속력을 읽어내는 이 책은 역사를 특정한 기점을 중심으로 분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케 해 준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관통하는 점진성이야말로 혁명의 다원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질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단박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천동설이 아리스토텔레스 역학 그리고 기독교와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명을 지연시키면서 동시에 혁명의 계기를 제공하는 이러한 동맹들은 불안정한 것이기도 해서, 필자는 이를 ‘불편한 동거’로 명명하고자 한다. 책을 통해 과학사의 ‘불편한 동거’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고대인들이 왜 2구체 우주를 믿었는지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이해 방식이 왜 포기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라는 1장의 마무리로 이 책의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시작된다(83). 뒤잇는 2장과 3장은 예비적 작업으로서 코페르니쿠스가 한편으로는 물려받았고 한편으로는 대결해야 했던 고대 천문학과 우주론의 완성형을 설명하고 있다. 쿤(133)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모든 천체 운동에 대한 완전하고, 상세하고, 정량적인 설명”을 제공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은 천상의 힘에 대한 직관 및 운동 법칙과 정합적인 체계를 이루면서 세계에 대한 일관적이고도 통합적인 설명을 제공했다고 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2~3장은 중심의 지구와 바깥의 천구로 이루어진 2구체 우주론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견고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적확한 설명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들이 서서히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완성형’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대로 작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증가한 복잡성은 행성 운동에 대한 최종 결과가 아니라 고작 더 나은 근사치를 제공했을 뿐이었다.”(135-136) 동시에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완전히 들어맞지도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동심 천구는 어떤 ‘변종 버전’으로서만 프톨레마이오스의 복잡한 주전원-주원 세트와 양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행성의 운동 원인을 설명하는 데, 후자는 행성의 운동 양상을 기술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 우주론과 천문학의 미묘한 분화를 읽어낼 수 있다면, 둘의 ‘불편한 동거’가 (‘불편하다’는 것은 후대의 관점이지만)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탄생에 기여하는 아이러니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천문학자들은  더 이상 세계의 구조에 대한 설명에 큰 관심이 없었고, 혁명은 코페르니쿠스가 매달린 천문학의 순전히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그 ‘사소한’ 출발이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뒤바꾼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4장에서도 확인된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기독교의 ‘불편한 동거’로 탄생한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언뜻 코페르니쿠스가 맞서 싸워야 할 전통으로만 보인다. 이 ‘전통’ 안에서 어떤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쿤은 먼젓번보다 더 분명하게 밝히는바, 니콜 오렘의 논증이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다. 신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오렘은 지구의 유일성과 부동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명을 무화하려 한다. 그의 관심은 오직 논리적 가능성에만 있었지만, 후대인들은 그것을 물리적 실재를 재구성할 근거로 재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리 예측할 수 없는 혁명의 ‘밑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의심은 천문학이 아니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이 뒤바꾼 지리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임페투스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아니라 역학에 대한 대안이었고, 르네상스의 신플라톤주의는 태양 숭배와 수학적 조화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정신적 경향일 뿐이었다. 그러나 전자는 갈릴레오에게, 후자는 케플러에게 영향을 주면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완성하는 추동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통시적 구성에 충실하게 제시되는 이 책에서의 과학사를 끊임없이 앞뒤로 넘나들면서 재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작업은 프톨레마이오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에 뒤잇는 갈릴레오의 작업은 뷔리당의 임페투스 이론에로, 6장의 케플러의 작업은 4장의 신플라톤주의에로 각각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혁명은 이렇듯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단선적으로 따라가면서 서술 가능한 현상도 아닐뿐더러, 목적론적으로 서술 가능한 현상도 아니다. 지상과 천상의 법칙을 부분적으로 통합하면서 뷔리당은 지동설의 출현을 예견한 것이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 또한 천구의 기능적 정합성을 훼손하면서 그것이 사라진 데카르트의 무한한 우주는 상상하지 못했다. 5장에서 말하는바, 그의 관심사는 우주론과 천문학의 모든 전통을 유지하면서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더 잘 설명하는 체계를 고안하기 위해 오직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쫓겨난 행성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천문학 밖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그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고, 그 결과 그의 혁명은 많은 반발에 부딪혔으되 생각보다 ‘혁명적’이지 않게 되었으며, 그의 스케치를 전유한 후계자들에 의해서만 완수될 수 있었다. 전통 안에는 혁명의 씨앗이 있었으며, 혁명 안에는 전통의 유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과학혁명은 전통의 품에서 태어나 기어이 자신의 탯줄을 끊는다. 그리고 전통과의 긴밀한 연속성 속에서 과학혁명의 다원성과 점진성을 선명하게 그려낸 성과야말로 이 책의 주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때의 전통이 단일한 관념이 아니라, 애초에 균열을 내재한 ‘불편한 동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혁명이 그 균열의 주위에서 잠들어 있다가 서서히 깨어나는 과정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치밀하게 보여 준다.


하지만 과학과 사상사의 결합이라는 영역으로 시야를 넓히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 일반화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서 의문 부호를 떼기는 어렵다. 쿤(8)은 책의 서두에서 “우리 시대처럼 과학이 중요해진 시대는 당대에 당연시하는 과학적 믿음들을 검토할 수 있는 관점이 정말로 필요하며, (…) 만약 우리가 현대의 몇몇 과학적 개념의 기원과 그것이 이전 시대의 개념을 대체한 과정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현명하게 그 생존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마따나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전형적이지 않다. 과학사에서 이만큼 지대한 영향을 사상사와 주고받은 사건이 얼마나 있을까? 새가 공룡이라는 발견이 철학으로부터 받거나 철학에게 준 영향을 선뜻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말하자면 과학 활동 일반에 적용하기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파급력은 지나치게 이례적이었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독자들의 이목을 자연스럽게 ‘대문자’ 과학사로 집중시키지만, 그로써 과학자들에게 익숙한 ‘소문자’ 과학혁명들의 진상에서는 다소 멀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쿤이 훗날 『과학혁명의 구조』를 저술한 이유가 부분적으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호소력이 있다. 천문학 혁명이 자신을 가로막던 비천문학적 믿음을 뛰어넘고 종국에 그 비천문학적 믿음까지 변화시킨다는 대칭적 서사는 매력적일 뿐 아니라 중요한 교훈을 준다. 과학이라는 미명으로 지우지 말아야 할 겸손의 미덕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과거의 ‘엉터리’ 과학자들이 당대의 사고 체계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 발전을 성취했는지, 오늘날의 ‘더 현명해진’ 우리가 얼마나 구속받고 제약되어 있는지를 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지난한 과정 속에 생생하게 펼쳐내고 있다. 이것이 되새김질의 여유를 지양하고 끊임없이 자기 갱신을 통한 미래로의 걸음을 재촉하는 과학계에서 ‘고전’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과학’ 이전의 과학사와 현재가 연결되는 순간의 즐거움을 아직 느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과학 활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서구에서 과학이 달리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었겠는가?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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