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해관계의 조정과 효율적인 의사결정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정책과 사회』는 이러한 질문들을 바꾸어 “짙은 정책학”을 추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태의 복잡성을 희석하는 질문들을 거부하고 도리어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해외에서 벤치마킹한 정책들이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수용되는가?’, ‘왜 정책의 내용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가?’, ‘새로운 제도적 실천은 어떤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가?’ 이러한 주제들을 연구 목표로 삼는 ‘정책사회학’의 접근법은 빠른 해결책과 명료한 규범적 판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책사회학의 질문들은 더 좋은 ‘판단’과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복잡한 문제를 돌파하는 길은 대개 그 문제의 복잡한 맥락을 깊이 읽어냄으로써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책과 사회』는, 아쉬움도 있지만, 대체로 그 복잡성을 잘 읽어내면서도 한국 정책의 특질을 포착한 책으로 평가됨직하다. 그 이유인 이 책의 장점을 먼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책의 한계를 간략하게 논하고자 한다.
1. 맹인의 손으로 코끼리를 상상하기
『정책과 사회』는 먼저 정책 분석을 위한 다양한 사회학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각 접근법의 장점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이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정책학적 아나키즘”의 장점도 보여 준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장에서 정책사회학의 네 가지 접근법을 소개한 후, 각 접근법을 통한 정책 분석 사례를 2개씩 제시하여 나머지 여덟 장을 이룬다. 저자는 정책사회학의 각 접근법을 『열반경』 속 우화인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하면서, 장님들이 모여 각자의 데이터에 기반한 추측을 논할 수 있었다면 코끼리라는 전체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구성은 이러한 저자의 생각, 다시 말해 정책학적 아나키즘이라는 저자의 지향에 “이론적 다원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2장 「기후변화 정책 설계의 정치」와 5장 「유전자변형생물체 위험 거버넌스와 기술관료주의적 사전예방원칙」은 저자가 추구하는 이론적 다원주의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므로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2장은 이명박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의 형성 과정을 이해관계 접근법과 제도적 접근법으로 분석한다. 이해관계 접근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산업계의 알력 행사다. 특히 발전업계와 제조업계는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으로서, 일차적으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에 반대하고 목표관리제를 지지하여 이명박 정부가 탄소세를 기각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정부는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을 통해 배출권거래제의 시행을 예고하기는 했으나, 제정 이전 3번의 개정 과정에서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단계적으로 배출권의 무상 할당률을 높였다. 당시 OECD 20개국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이 강조되면서, 궁극적으로 100%의 유상할당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환경단체의 반발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분석은 타당하지만, 이명박 정부 당대의 이해관계와 이익집단 정치만이 정책 결정에 관여한 것은 아니다. 역사 제도주의의 ‘경로의존성’ 개념을 활용한 제도적 접근법을 도입하면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구호에 배태된 제도적 유산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 이래로 내려온 발전국가 모델로서, 환경 정책에 경제발전주의를 개입시키는 환경발전주의를 촉발했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식 녹색성장은 기후 변화 산업을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발전 개념과 다르며, “누가 성장으로 이익을 얻는지, 누가 환경보호 비용을 부담하는지, 누가 환경보호를 통해 이익을 얻는지 등 사회적, 세대 간 정의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노동계와 환경단체를 거의 전적으로 제외한다(86). 발전국가 모델은 정부와 제조업체의 긴밀한 협력 및 규제 완화와도 상보적이었으며, 문재인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 설계에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작용했다.
이와 같은 이해관계 접근법과 제도적 접근법의 결합은 ‘기술관료주의’와 ‘사전예방원칙’이라는 이질적 위험 규제가 한국의 GMO 정책에서 어떻게 공존 또는 융합했는지를 분석하는 5장에서도 드러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의 LMO법이 카르타헤나 의정서에 따라 제정한 사정예방원칙은 본디 ‘위험의 최소화’를 추구해야 하나, 정작 그 실천에서는 ‘위험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기술관료주의의 성격도 함께 나타났다. 제도적 접근법으로 보면, 이것은 국제법에 기반한 사전예방원칙의 강제적 동형화와 기술관료주의의 경로의존성이 동시에 작동한 사례이자, 후자로 인한 탈동조화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해관계 접근법으로 보면,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유럽과 유사한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미국 정부와의 GMO 관련 분쟁을 피하고자 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양면적 이해관계로 인해 한국은 미국과 유럽의 중간지대에서 절충적 정책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정리에 의하면 이해관계 접근법은 정치경제학에 지적 전통을 두고, 인간을 “자기 이익과 정치적 신념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자”로 간주한다(46). 반면 제도적 접근법은 조직·제도 사회학에 지적 전통을 두며 인간을 수동적 행위자로 간주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상이한 접근법들을 동원하여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비유한 대로 코끼리의 각 부분을 만진 장님들이 논의를 통해 코끼리라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격이다. 구조에 제약되는 행위자 모델과 구조를 만드는 행위자 모델, 공시적 접근과 통시적 접근 양면의 장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적 다원주의에만 천착하는 도그마를 경계하고, 이론은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현장 연구를 기본적인 바탕에 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권고한다. 앞서 살핀 두 사례는 충실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며 쓰였다고 할 수 있다.
2. 더 넓은 “So What?”의 과녁을 상상하기
2.1. 한국 정책의 두 축, 관료주의와 발전주의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독자가 상이한 접근법들로부터 한국 정책의 공통적 특질을 추출할 수 있게 쓰였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한국 정책의 특질을 논한 장은 없지만,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료주의’와 ‘발전주의’라는 두 가지 특질에 주목할 수 있다. 먼저 상술한 제5장과 더불어 제3장 「캠프 캐럴 갈등 거버넌스와 주한미군지위협정」, 제4장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과 전사적 위험관리」에서 공통적으로 관료주의가 드러난다. 3장에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명령과 통제의 위계에 따라 관료주의적 갈등 관리를 강행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제4장에서는 본래 기업의 자율규제에서 기인한 전사적 위험관리를 청와대가 ‘지침화’함으로써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를 통제하려 하는 전통적 관료주의의 경로의존성이 나타난다. 과학적 실증주의와 전문가에 대한 신뢰, 시민 참여의 배제, 불확실성 고려의 최소화는 3~5장의 한국 정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질이다. 특히 5장에서 식약청 관계자의 인터뷰를 인용한 다음 대목이 이러한 특질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