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사회 (양장)
김은성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해관계의 조정과 효율적인 의사결정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정책과 사회』는 이러한 질문들을 바꾸어 “짙은 정책학”을 추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태의 복잡성을 희석하는 질문들을 거부하고 도리어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해외에서 벤치마킹한 정책들이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수용되는가?’, ‘왜 정책의 내용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가?’, ‘새로운 제도적 실천은 어떤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가?’ 이러한 주제들을 연구 목표로 삼는 ‘정책사회학’의 접근법은 빠른 해결책과 명료한 규범적 판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책사회학의 질문들은 더 좋은 ‘판단’과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복잡한 문제를 돌파하는 길은 대개 그 문제의 복잡한 맥락을 깊이 읽어냄으로써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책과 사회』는, 아쉬움도 있지만, 대체로 그 복잡성을 잘 읽어내면서도 한국 정책의 특질을 포착한 책으로 평가됨직하다. 그 이유인 이 책의 장점을 먼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책의 한계를 간략하게 논하고자 한다.


1. 맹인의 손으로 코끼리를 상상하기


『정책과 사회』는 먼저 정책 분석을 위한 다양한 사회학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각 접근법의 장점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이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정책학적 아나키즘”의 장점도 보여 준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장에서 정책사회학의 네 가지 접근법을 소개한 후, 각 접근법을 통한 정책 분석 사례를 2개씩 제시하여 나머지 여덟 장을 이룬다. 저자는 정책사회학의 각 접근법을 『열반경』 속 우화인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하면서, 장님들이 모여 각자의 데이터에 기반한 추측을 논할 수 있었다면 코끼리라는 전체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구성은 이러한 저자의 생각, 다시 말해 정책학적 아나키즘이라는 저자의 지향에 “이론적 다원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2장 「기후변화 정책 설계의 정치」와 5장 「유전자변형생물체 위험 거버넌스와 기술관료주의적 사전예방원칙」은 저자가 추구하는 이론적 다원주의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므로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2장은 이명박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의 형성 과정을 이해관계 접근법과 제도적 접근법으로 분석한다. 이해관계 접근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산업계의 알력 행사다. 특히 발전업계와 제조업계는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으로서, 일차적으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에 반대하고 목표관리제를 지지하여 이명박 정부가 탄소세를 기각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정부는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을 통해 배출권거래제의 시행을 예고하기는 했으나, 제정 이전 3번의 개정 과정에서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단계적으로 배출권의 무상 할당률을 높였다. 당시 OECD 20개국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이 강조되면서, 궁극적으로 100%의 유상할당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환경단체의 반발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분석은 타당하지만, 이명박 정부 당대의 이해관계와 이익집단 정치만이 정책 결정에 관여한 것은 아니다. 역사 제도주의의 ‘경로의존성’ 개념을 활용한 제도적 접근법을 도입하면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구호에 배태된 제도적 유산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 이래로 내려온 발전국가 모델로서, 환경 정책에 경제발전주의를 개입시키는 환경발전주의를 촉발했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식 녹색성장은 기후 변화 산업을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발전 개념과 다르며, “누가 성장으로 이익을 얻는지, 누가 환경보호 비용을 부담하는지, 누가 환경보호를 통해 이익을 얻는지 등 사회적, 세대 간 정의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노동계와 환경단체를 거의 전적으로 제외한다(86). 발전국가 모델은 정부와 제조업체의 긴밀한 협력 및 규제 완화와도 상보적이었으며, 문재인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 설계에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작용했다.


이와 같은 이해관계 접근법과 제도적 접근법의 결합은 ‘기술관료주의’와 ‘사전예방원칙’이라는 이질적 위험 규제가 한국의 GMO 정책에서 어떻게 공존 또는 융합했는지를 분석하는 5장에서도 드러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의 LMO법이 카르타헤나 의정서에 따라 제정한 사정예방원칙은 본디 ‘위험의 최소화’를 추구해야 하나, 정작 그 실천에서는 ‘위험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기술관료주의의 성격도 함께 나타났다. 제도적 접근법으로 보면, 이것은 국제법에 기반한 사전예방원칙의 강제적 동형화와 기술관료주의의 경로의존성이 동시에 작동한 사례이자, 후자로 인한 탈동조화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해관계 접근법으로 보면,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유럽과 유사한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미국 정부와의 GMO 관련 분쟁을 피하고자 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양면적 이해관계로 인해 한국은 미국과 유럽의 중간지대에서 절충적 정책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정리에 의하면 이해관계 접근법은 정치경제학에 지적 전통을 두고, 인간을 “자기 이익과 정치적 신념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자”로 간주한다(46). 반면 제도적 접근법은 조직·제도 사회학에 지적 전통을 두며 인간을 수동적 행위자로 간주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상이한 접근법들을 동원하여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비유한 대로 코끼리의 각 부분을 만진 장님들이 논의를 통해 코끼리라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격이다. 구조에 제약되는 행위자 모델과 구조를 만드는 행위자 모델, 공시적 접근과 통시적 접근 양면의 장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적 다원주의에만 천착하는 도그마를 경계하고, 이론은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현장 연구를 기본적인 바탕에 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권고한다. 앞서 살핀 두 사례는 충실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며 쓰였다고 할 수 있다.


2. 더 넓은 “So What?”의 과녁을 상상하기


2.1. 한국 정책의 두 축, 관료주의와 발전주의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독자가 상이한 접근법들로부터 한국 정책의 공통적 특질을 추출할 수 있게 쓰였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한국 정책의 특질을 논한 장은 없지만,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료주의’와 ‘발전주의’라는 두 가지 특질에 주목할 수 있다. 먼저 상술한 제5장과 더불어 제3장 「캠프 캐럴 갈등 거버넌스와 주한미군지위협정」, 제4장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과 전사적 위험관리」에서 공통적으로 관료주의가 드러난다. 3장에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명령과 통제의 위계에 따라 관료주의적 갈등 관리를 강행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제4장에서는 본래 기업의 자율규제에서 기인한 전사적 위험관리를 청와대가 ‘지침화’함으로써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를 통제하려 하는 전통적 관료주의의 경로의존성이 나타난다. 과학적 실증주의와 전문가에 대한 신뢰, 시민 참여의 배제, 불확실성 고려의 최소화는 3~5장의 한국 정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질이다. 특히 5장에서 식약청 관계자의 인터뷰를 인용한 다음 대목이 이러한 특질을 잘 보여 준다.


"소비자가 참여하여 안전성 평가하는 것은 도움이 전혀 안 된다. 그분들은 다른 제도적 평가를 할 때 (참여 가능하다). …… 대신에 (위험평가에 있어) 소비자 단체의 전문가 추천을 받는다. 소비자가 참여하는 자체는 말이 안 된다.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전혀 문외한이 와서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182)


두 번째 특질인 발전주의는 앞서 언급한 2장과 더불어 6장, 7장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7장 「사회기술적 상상과 융합기술정책의 세계화」는 서구의 ‘사회기술적 상상’이 한국에 어떻게 ‘번역’되었고, 그 양상이 왜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의 지체를 야기했는지 분석한다. 기술발전주의, 즉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부국을 건설한다는 비전은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에 필요한 민주적 거버넌스 및 새로운 연구개발 평가 시스템과 공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분석은 한국식 녹색성장이 산업 동력에 치중하여 에너지 복지와 같은 사회정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2장의 분석과 유사하다.


이러한 정책사회학적 진단들은 당면한 구체적 정책 문제를 넘어 “한국적 관료주의와 발전주의의 경로의존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보다 거시적인 물음을 던지게 해 준다. 필자가 서두에서 더 좋은 ‘판단’과 ‘해결’을 위해서도 정책사회학이 필요하다고 서술한 이유가 부분적으로 여기에 있다.


2.2. 협의적 제도를 넘나드는 물질적 접근법

이 책의 세 번째 장점은 좁은 의미의 제도에 대한 사후적 분석뿐 아니라, 시민들의 공유된 규범과 같은 광의적 제도의 분석이나 근미래에 필요한 정책적 쟁점까지 제시한다는 것이다. 8~9장에서 활용된 물질적 접근법이 이러한 강점을 잘 보여 준다. 8장 「딥 러닝과 알고리즘 거버넌스의 주인-대리인 문제」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비롯한 신유물론적 관점을 빌려 알고리즘을 블랙박스화된 행위소(actant)로 분석함으로써 전통적인 주인-대리인 문제의 범위를 확장한다. 이는 주어진 문제와 해결책을 넘어 새로운 문제제기로 정책사회학적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저자의 지향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이러스와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시민권이 구성되는 양상을 다룬 9장 「코로나19 감시와 좋은 시민권 회집하기」는 ‘제도’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통으로 작용하는 외적 제약인 한편 자발적으로 내면화되면서 그 부담의 불평등한 분배를 비가시화하기도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 대응 초기에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이 ‘좋은 시민권’의 요건을 인구 밀집 장소와의 적대적 관계 맺기로 재구성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더 큰 부담을 지거나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이 장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장점은 모두 더 넓은 “So What?”의 과녁을 상상하는 작업이라고 명명해 볼 수 있다. 1장에서 저자는 정책학자들이 대안 없는 사회학적 비판에 대해 ‘So What?’으로 대응하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So What?’은 중요한 물음이다. 단지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정책사회학자보다는 정책학자에게 더 적절한 물음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작업은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까지 “So What?”이라고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 묶음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더 많은 장님들’을 호명하는 셈이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코끼리라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 무언가를 옮길 방법도 더 명징한 시각에서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님들’은 저자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So What?”이라고 물어야 한다.


3. 사소하지 않은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정책과 사회』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먼저 저자에게서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 부분적으로 포착된다. 예컨대 저자는 해석적 접근법을 소개하면서 “이해관계와 제도들은 정책행위자들을 강제하는 외생적인 변수가 아니라 행위자의 정책 담론으로 구성되는 결과로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23), 실제로 해석적 접근법을 적용한 6장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와 미래 탄소시장의 상상」에서는 “탄소시장과 상품시장의 상호적 공동생산은 시장경쟁력, 기업 불평등, 사회 불평등에 관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 따라 선택적으로 일어난다.”고 서술한다(231). 해석적 접근법을 적용하면서 담론을 이해관계에 의해 구성된 결과로 간주한 것이다. 그 결과 6장은 같은 문제를 이해관계 접근법으로 다룬 2장의 서술과의 차이점을 근본적인 관점 차원에서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실제로 인간과 제도의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에서 현격하게 다른 접근법들은 의도치 않게 ‘주목하는 서술 대상’에 차이가 있는 관점들 정도로 평면화된다. 또한, 같은 문제에 동원된 접근법들이 충돌 및 발산하는 해석 대신 수렴하는 해석들만 서술하는 것은 접근법 간의 상이성을 약화하고 상보성만을 강조하는 결과에 경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정책과 사회』는 정책과 사회를 둘러싼 깊고 복잡한 맥락을 읽어낸다는 본래 목적의 달성에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명료한 답변이 종종 기대되는 시대에 “복잡한 문제는 복잡하게 읽어라”라는 원론적 가르침을 경험적 데이터와 체계적인 분석 도구로 제공하는 이 책은 ‘복잡하게 읽는 법’을 원하거나 알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