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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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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책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 다. 지난주 <쇼아>란 영화를 보고서,, 홀로코스트와 관련해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런 잔혹성을 띨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어떻게 19세기 이래의 민주주의 전통이 한순간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무너질 수 밖에 없었나?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나의 어설픈 진보에 대한 믿음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즉 홀로코스트는 이성의 과잉의 산물인가 결여의 산물인가,, 아니면 이성의 확산을 통한 인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믿음 자체가 허구인가?

마지막으로 가장 당혹스러운 문제.. 홀로코스트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탄압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찌의 유태인관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관 상의 큰 차이점을 발견해 내기란 힘든 것 같다. 특히 힘있는자가 없는 자를 인간쓰레기 취급한다는 점에서...

슈피겔만의 <쥐>는 만화다. 따라서 읽다는 표현대신 보다라고 했다. 이 책은 작가의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란 사건을 경험하게된 경위, 그 속에서의 체험, 그리고 이후 이로인한 상처를 회고담 형식으로 묶은 것이다. 역시 다른 것보다 내 흥미를 유발한 것은.. 아버지의 흑인관이다. 작가는 아버지와 인터뷰과정도 책 속에서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하루는 작가부부와 아버지 부부가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한 흑인이 길가에 서있었고,, 마침 행선지가 비슷한 방향이라 작가의 아내가 차를 세워 그를 태웠다. 다음은 작가 부부와 아버지간의 대화이다.

아버지 ; '믿을 수 없군! 여기 검둥이가 앉아 있다니.' '난 줄곧 저 검둥이가 우리 뒷자리 물건을 훔쳐 가는지 지켜 봤단다.' 작가 ; '말도 안돼요! 어떻게 아버님이 인종차별을 할 수 있죠? 흑인에 대해서 마치 나치가 유태인 애기 하듯 하는군요.' 아버지; '검둥이는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어'

참으로.. 홀로코스트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유태인이 가진 인종차별 의식이란 것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다. 몇년전에,, <바리케이트>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주인공은 서울 변두리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리고 주인공 아버지는 미국에서 불법취업 노동하다 산업 재해를 당해 집에서 병마와 싸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역설적인 것은.. 주인공이 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데 제일 앞장섰다는 점이다.

당시 그 영화를 보면.. 아니.. 일제 30년 강점기를 겪은 것 은 물론이거니와 이 이전에도 외세에 의한 지배로 큰 고통 을 겪은 우리가 타민족 노동자에게 인종적 탄압을 가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부조리한 일인지 생각했다. 참으로.. 혼란스럽니다. 나찌의 살인공장, 즉 아우슈비츠, 트레블린카, 첼름노, 소 비보르 등의 수용소가 폴란드에 밀집해 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바로 폴란드에 존재했던 반유대주의 정서 덕분이었다.

영화 <쇼아>를 보면,, 수용소 주변에서 집단학살을 목격했던 폴란드인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 뉘앙스가 나찌 관계자의 증언과 비슷했다. 홀로코스트 는 유감스런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었으나, 사실 내가 유태인 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극단적으로 '꼴좋다'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는 식이었다.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폴란드인이야 말로 수세기 동안 러시아에게 있는 픽박 없는 탄압 다 당한 설움의 민족아닌가! 이들의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에 일조했다는 사실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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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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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이 심각한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녀의 제국주의관이 문제다. 고대 로마의 대외팽창을 제국주의란 용어로 정의할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로마와 식민지간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공존공영의 관계로 파악하려는 그의 입장에 동의할수 없다. 아니 동의의 차원을 떠나, 어떤 전율을 느낄 정도다. 문득,, 학부시절 일제강점기 시절의 한국사를 공부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오노의 로마 제국주의 옹호는 기묘하게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던 시절에 일본의 한국지배 논리와 왜 이렇게 유사하게 독해가 되는지 모르겠다. 뿐만아니라, 식민지가 자유와 독립을 희생하는 댓가로, 로마는 동맹국의 치안을 보장하고, 로마 가도와 식민도시 건설에 따른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함으로써, 그 결과 동맹국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얼마전 한국사 학계에서 있었던, 식민지 수탈론 대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전을 상기해보게 되었다.

결국 고대로마의 식민지나 20세기초의 한국이나.. 자유와 독립이냐, 질서와 안정이냐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라는 것이 시오노의 식민지관인 것 같다. 이는 바꿔 말해서, 식민지 민족에게 자유와 독립은 무질서와 불안 그리고 생활수준의 저하를 의미할 뿐이란 이야기가 아닐까? 따라서 시오노의 입장에서,, 식민지가.. 로마와 동맹관계든 속주화든 식민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유와 독립을 완전히 박탈당하지 않으면서도, 질서와 안정 그리고 덤으로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경제발전도 이룩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었을까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닐까?

뿐만아니라.. 온건한 제국주의, 강경한 제국주의란 용어를 끌어들이며,, 로마에 의해 자행된 그리스의 코린트,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에스파냐의 누만티아에서의 대량학살과 노예화에 대해서도.. 마키아벨리를 운운하며,, 가혹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면, 아예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해야한다는 말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목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시오노의 주장대로,, 마키아벨리의 이 발언이 이 사건의 정당화에 동원될 수 있다면,,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도 동일한 맥락-한번에 크게 한껀 한다.. 이게 나찌가 주장한 유태인 문제의 최종해결이 아니었을까?-에서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참으로.. 살떨리는 경험이다. 포에니 전쟁의 스펙타클과.. 한니발과 시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라는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 이러한 발칙하고 음험한 제국의 논리가 숨어있다는 것에 다시금 전율을 느낀다. 더욱이..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라.. 불과 50여년 전만에도 식민지란 경험을 한 민족이 아닌가? 일본제국하면 치를 떨었던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사람들이 <로마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래도 로마 제국은 20세기 대일본제국과는 다른 제국의 질서를 추구했다는 것에 감동받아서 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차별문제에서 드러나듯이.. 우리 자신에게도 제국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해서 일까? 만약 후자라면.. 이것이야 말로.. 저항 민족주의가 가지는 정당성의 결여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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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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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는.. 전설상의 요한 사제 왕국을 향해 모험하는 바우돌리노란 매력있는 거짓말장이의 대로망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음.. 저는 서양사학 전공이라.. 요한 사제 왕국 전설에 관심이 가게 되더군요.. 이 책에도 나오는 바이지만,, 전설이 전혀 사실무근한.. 완전한 허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역시,,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인데요.. 이들은 서기 5세기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본성논쟁에서 이단으로 몰려서,,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이들은 분루를 삼키면서,, 재기를 다짐하게 되는데요,, 중국사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를 경교라 부르죠,, 경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서기 7세기 입니다. 서기 635년 당나라 태종은 .. 알로펜을 단장으로 하는 네스토리우스파 일행을.. 수도 장안에 머물게 하면서,, 포교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이와 관련된 비석이 지금도 서안(옛날의 장안)에 남아있죠..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장안은 어떠한 곳이었을까요.. 장안은 바로 동서문명의 교통로 실크로드의 동쪽 끝인데요.. 결국.. 요한 사제 왕국의 전설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다녀간 사람들이.. 중국에 가보니,,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당시의 서양사회에 유의미한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오늘날 전해지는 형태로 남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설 주인공 바우돌리노의 시대에 이 전설이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몽고제국을 요한사제의 왕국으로 상정했기 때문이죠... 당시의 기독교 세계는 몽고와 힘을 합쳐서 이슬람을 협공할 수도 있을 것 이란 정치적 계산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13세기에 프랑스 왕과 교황은 요한 사제의 왕국 몽고와 동맹을 맺기위해,, 사절단을 수도 카라코룸으로 파견합니다.

즉, 1245년 부활절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요한네스 데 플라노 카르피니는.. 리옹을 출발,, 폴란드와 러시아를 경유,, 1246년 7월 22일 몽고의 궁전에 도착하고,, 1년후, 몽고황제의 서신을 가지고 귀국합니다. 칸의 편지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영원한 천상의 힘을 통해 전체 위대한 민족의 대양과도 같은 칸의 명령' 칸은 편지에서 전유럽이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명합니다!! 바티칸의 문서보관실에서 이 편지의 페르시아어 사본이 발견되었죠..

아마도,, 당시의 서양인들은.. 기독교도와 결혼한.. 징기스칸의 손자 몽케 (1208년 - 1259년)가,, 바로 요한 사제라 믿었을 지도 모르죠... 아무튼.. 9-11 테러란 초유의 사건에 직면하여 문명들간의 상호이해와 대화가 필수적인 과제로 떠오른 지금.. 우리의 이슬람 문명의 이해수준은.. 과연.. 바우돌리노 시대 서양인의.. 중국 문명의 이해수준과 ..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문명에 대한 몰이해를.. 오늘날의 우리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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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여인의 죽음 이산의 책 2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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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스의 작품은.. 17세기말, 그러니까 명청교체기.. 산동성의 탄청현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살았던,, 왕여인이.. 남편과의 불화를 참지못하고 도망쳤다가 결국 실패하고,, 남편에게 목졸라 죽게되는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우선,, 1970년대말에,, 왕여인 이란 일개 농촌촌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먼저 의미심장해 보였구요.. 왕여인 살인사건을 서술하기 이전에,, 17세기말 탄청현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자연재해 혹은 사회불안 (홍수,가뭄,전염병,메뚜기떼,도적떼) 경제생활,, 세금은 어떻게 냈으며.. 결혼제도 및 이혼제도 형법 등등..

흥미로웠던 것은,, 17세기말은 명청왕조가 교체되는 것으로 주목받는 시기인데,, 이 고장의 입장에서 보면,, 명관군에서 만주족 군대로 주둔부대가 바뀐 것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으로,, 아무일도 없었던 시절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시기는 또한 청의 중흥을 이끈 강희제의 치세와 겹치는데,, 뭐.. 이 마을의 입장에서는.. 별달리 중흥된 것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17세기말을 살았던 왕여인에게,, 명청교체든, 강희제의 선정이든.. 'Not my business !!' 였다는 주장처럼 보입니다. 아무튼,, 한 아버지의 딸에서, 남편의 아내로, 자식의 어머니로,, 사회적 관계가 개별적 존재를 압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전근대 사회의 여성들의 저주받은 운명속에서.. 왕여인의 죽음은,, 나에게도 개인적인 보다나은 삶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마르땡 게르의 귀향>의 베르트랑 드 롤스의.. 그 사람이 가짜 남편인줄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속아주고 같이 살기로 결정한.. 그 프랑스 농촌여성의 당당함과.. 뭔가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질문드렸던 것입니다.. !! ^^ 마치,, 두 여인은 '나에게도 자아가 있다'라고 외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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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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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기본적으로.. 우연히 곤경에 처하게된 한 소녀가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모험담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 이 메세지를 해석하는 것이 이 영화를 행복하게 즐기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라는 광풍이 몰아치는 21세기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 우화란 생각이다. 폐허가 된 `놀이공원'을 두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90년대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니 거품 경제때문에 망했지'라고 설명한 대사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첫째, 기성세대는 인간으로써의 품위,정체성을 상실한 채 돼지로 전락해 버렸으니, 여러분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하쿠가 센에게 한 충고, '자신의 원래 이름을 잊지말아라'라고 이야기한 맥락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꼿꼿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둘째, 우리의 관심이 적절히 기울여지지 않는다면 대자연은 악취의 근원으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 부디 자연사랑으로 문명과 자연의 공존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자연친화는 감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온마을을 악취로 물들이는 오물의 신은 사실 강의 신이다. 이 강의 신이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오물의 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오물신이 온천을 향해 오는 장면도 퍽이나 재미있는데 , 이 오물신은 주인공 센의 정성으로 쓰레기를 토하고 다시 강의 신이 되고,, 그 보답으로 '귀중한 환약'을 센에게 선물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주인공의 자연사랑의 결실인 '환약'이 부모님과 세상을 구원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셋째,, 배금주의에 물든 기성세대에 맞서서, 여러분들은 황금을 유혹을 당당히 거부해야 우리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가령,, 얼굴없는 요괴 카오나시가 황금을 주려하자.. 주인공은 '난 받을 수 없어,,,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은 이것이 아냐..'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넷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 현실,, 고용불안,노동강도의 강화 등 임금노동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감독 스스로 '온천은 현대일본사회의 축소판'이다란 지적을 한바 있다. 우선 고용불안의 부조리함.. 온천 주인 유바바의 경영철학은.. '일하지 않는자는 이곳에 필요하지 않다..'이다. 그런데,, 보일러실 가마 할아범과 센의 대화를 보면,, '여기는 네가 일할 자리가 없어'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 뭔가.. 일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도 일할 자리를 찾을 수 없는.. 21세기 자본주의 임노동 현실의 패러디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이데올로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운명도,, 노동강도의 강화란 고통을 겪게 마련인데,, 팔이 여덟개나 되는 가마 할아버지는.. 항상 바쁘고.. 동시에 여섯개의 일을 할 수 있어도,, 그의 노동은 쉼없이 이루어 진다. 마치 ..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을 보는듯 하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몸보다 더큰 석탄을 보일러의 화로로 옮기는 꼬마 숫검뎅이들의 노동을 보면서,, 노동강도의 강화에 대한 패러디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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