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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한 장으로 마음에 쏙 드는 커튼 & 쿠션 만들기
웅진닷컴 편집부 엮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05년 12월 2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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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책을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있다.
주로 읽다 만 책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체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뭐랄까, 한번에 다 읽기가 심히 괴로운 책들만 결국에 남아서 손을 놓기가 그렇고(왠만하면 다 읽지 않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지 않는다, 뒷처리를 안하고 화장실을 나오는 기분) 한장이라도 나가기 어려운(싫은) 책들이 쌓여서 그 뷁한 기분을 잊어버릴 때 즈음 다시 손에 들고 그리고 진도를 또 한 두어 서너장 나가고, 이런 식인 것 같다.
그래도 어제는 드디어 선과 악에 조금 정을 붙였다. 아마도 김기덕 영화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서인가 보다. 그녀의 또다른 책 중에 선에 관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콜린 윌슨의 잔혹 시리즈와 같이 겹쳐 보면 될 듯 하다. 고전도 읽고 싶지만 집에 있는 책들은 글체가 워낙에 먼지나는 식이라, 또 세로로 된 것이 거의다, 읽다가 보면 지친다.
나도, 나도 그럴까.
나는 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를 잃어, 혹은 바꿔, 혹은 맞춰 가겠지. 잃거나 바뀌거나 맞추기 전에, 현재의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살펴보고 싶은데, 그것은 항상 잘 안된다. 나라는 자기잘남에 빠져 있어서. 결국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하고 다듬기란 타인이 각색하기와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일기란 중요한 것이겠지, 라고 도서관에 앉아 혼자 쉬며 생각했었다. 일기를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하고 싶은 얘기를 잘 갈아서 맛있게, 그리고 최대한 길고 자세하게 써야 한다고. 나중을 위한 백업 과정이다.

주말에는 내내 집에서 보냈다. 일요일에는 보고 싶은 조카가 왔다. 형부가 웅상이라는 곳, 우리집에서는 가깝지만 나는 형부에 의해서 처음 듣게 된 지역이다, 으로 근무지를 옮겼기 때문인지, 전보다 언니네 사이는 평화가 찾아온 듯 하다. 형부의 퇴근시간 펌프가 일정하게 눌려져야지만이 가정의 긴장도가 조절되는 듯 하다. 계속해서 심하게 눌려지면, 가정의 긴장도는 폭발할 듯이 올라가서 결국에는, 폭발하고 말겠지만, 어쨌든 폭발했을 때보다 폭발까지의 왔다갔다한 눈금의 압력이 주위인들에게는 훨씬 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뭐, 요새는 가끔 보니까 그런 두 개의 유리관에 대해서 실질적인 사정은 잘 모른다.
라고 일기를 쓰다 보면, 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 나와 친한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속속들이 아는게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또 드는 것이다. 결국 웹에 올려져 있으니까 겉과 속을 잘 다듬어서 있는 만큼, 사과의 이쁜 쪽만 깎아서 내놓아야 한단 얘길까.
아아, 그렇더라도 진심을 숨기고 오늘은 기분이 무지하게 안좋은데, 좋은 척, 이쁜 웃음 이모티콘을 세개나 달고 있는 일이 이제는 피곤하다. 원래 나는 제멋대로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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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동문선 현대신서 149
로베르 브레송 지음, 오일환 외 옮김 / 동문선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로베르 브레송/오일환, 김경온 옮김/동문선/2003

"시네마토그래프란 글쓰기의 새로운 방식, 따라서 느끼기의 새로운 방식이다."(p.48)

"시네마는 공통의 자산에서 자기 양분을 꺼낸다. 하지만 시네마토그래프는 미지의 행성 위에서 탐색의 여행을 한다."(p.42)

"진실된 것은 모방이 불가능하고, 거짓된 것은 변형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잡아내기 힘든 것, 어떤 연필, 붓, 펜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것, 하지만 너의 카메라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 낸다. 그리고 무생물 특유의 기계적인 냉정한 정확성으로 그것을 고정시킨다."
(p.45)

이 책은 로베르 브레송이라는 (감히 감독이라 불리우기 어려울) 영화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노트에 쓴 단편적인 메모들을 모아 만든 제목 그대로 단상의 엮음이다. 1907년에 태어나 1999년에 생을 마감한 로베르 브레송은 자신만의 이미지와 생각, 창조적인 작품으로 영화, 곧 그의 의미대로 시네마토그래프를 만든 몇 안되는 영화작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내게는 굉장히 큰 영광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흩어져 있는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해주고, 그리고 한 곳으로 모아준다. 영화를 영화로 보는 것, 영화를 무엇으로 보는가, 영화로 말하는 것, 영화 스스로가 말하는 것, 감독이 영화를 예술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 지금 영화가 있는 곳이 낭떠러지 옆의 보물동굴이라는 것..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그의 영화노트를 보고 있으면 정리가 된다. 주옥같은 문장 앞에서는 십분을 넘게 곱씹어 읽는다.
영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단순히, 왜 좋아하는 영화가 극장에 쉬이 걸리지 않는걸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배우가 서투르게 영화를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카리스마가 영화를 뒤덮어버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까지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면, 그런 영화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걸까 하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또는 더더욱 단순히, 로베르 브레송이라는 사람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아마도 영화를 구상하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불이 날 거다.)

Index
1. 단상들
모델들
시선들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자동주의에 대하여
가난에 대하여
시각과 청각
몸짓과 대사
실 재
단편화에 대하여
연습들

2. 또 다른 단상들


서문
여기 창조의 다른 경사가 있다.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에서 <호숫가의 랑슬로>에 이르기까지, 또 <잔 다르크의 재판>에서 <돈>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이미지의 물결에서 밀려오는 생생한 에너지는 그 경쾌한 흔적들, 그 빛나는 섬광을 남기고 있다. 해가 가고 세월이 가도 로베르 브레송은 늘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 배우와 모델에 대해서, 이 새로운 예술의 용도에 대해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시네마라고들 일컫지만, 브레송 자신은 고집스럽게 시네마토그래프라는 번거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이 아직 새로운 예술로 어떤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질문하는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마술 앞에서 사람들은 나무를 보고도 경악했다. "나뭇잎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질문들이 브레송의 영화 작품을 낳았을까? 아니면 영화 작품들이 질문을 낳았을까? 이런 질문들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질문은 자극하고, 성찰하고, 지혜를 찾는 데에 소용되는 법이다. 질문은 새로운 언어, 완벽성을 발명하는 데에 사용된다.
영화 작품을 만드는 사람(브레송은 영화적 창조자라는 명칭과 연출가, 감독 등의 명칭을 구별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연출가, 감독의 명칭은 연극에서 비롯된 개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은 허구를 창조하는 군주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다. 오직 인간일 뿐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의 감각의 떨림에 형태를 부여해서 드러내어 밝히려고 절망적으로 시도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는 신도, 영웅도 아니다 : 인간이다.
로베르 브레송은 일지를 기록한다. 그는 간단한 몇 단어로 자신이 발견한 사실들을 썼다. 한 인간을 만드는 모든 것, 즉 그가 좋아하는 것, 그가 혐오하는 것들에 대해 썼다. 브레송은 특히 허영심, 지적 유희, 순응주의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을 표명했다. 그러는 반면 성실성, 본성(고문 담당자들을 대하는 잔 다르크의 '선한 본성')에 대한 애착도 표명했다. 또 예술에서의 경제와 정확성에 대해서, '보이기'에 대립되는 '존재하기'에 대해서, 즉 배우에 대립되는 모델에 대해서 썼다. 브레송은 모델이라는 단어를 영화 연기자를 지칭하는 일반적 어휘인 배우보다 더 애호한다. 모델은 고양감, 영감 그 자체이다 : "영혼, 모방할 수 없는 육체"이다.
여기서, 부주의 때문인 듯 두서없이 흩어진 이 메모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러한 모험의 정수이다. 절정의 충만 속에서 이따금은 극단적인 고통의 상태에까지 체험되었던 그 모험은 브레송을 영화적 창조의 창공으로 인도했다. 이 단어들의 간결함과 순수성 속에서 우리는 브레송의 진리를 향한 욕망, 완벽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느낀다. 우리는 타협과 저속함, 그리고 돈의 힘에 대항한 그의 끝없는 싸움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년 전부터 자신의 <창세기>를 연출하기 위해 투쟁해 온 브레송에게 필요했던 모든 용기와 고집을 우리가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진실된 것은 모방이 불가능하고, 거짓된 것은 변형이 불가능하다." 브레송에게 예술은 무력감의 쓰라림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의지이다. 그러나 또한 예술은 그 이상의 것이다. 브레송은 실재의 가시적 부분만을 드러낸다. 그 점에서 브레송은 위대한 화가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과 야수파 화가 마티스와 가깝다. 또 이 메모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선불교 사상에 깊이 젖은 도양ㅇ 예술, 호쿠사이(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일본 판화가)의 회화흫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것, 그것은 방법들의 경제성에 대한 같은 감각이고, 감각적인 것에 대한 같은 취향이며, 감각의 미세판 파장과 노니는 같은 유희이다. 또한 그것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는 강력한 물결 속으로 이끌며 떠내려가는 삶이다. 이미지들, 소리들은 느낌에 지나지 않는 한순간을 현실로 만들어 놓는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물로 표출하기, 바람은 지나가면서 물을 조각해 놓으니까 말이다." 이와 같이 브레송은 놀라움의 예술을 가르친다. 즉 자기 먹이를 산 채로 포획하는 행복을 가르친다 : "낚시꾼이 자기 낚싯대 끝에 뭐가 걸릴지 모르듯이 너 역시 네가 잡게 될 것에 대해 무지하라(어느곳에서도 난데없이 불쑥 튀어오르는 물고기)."
......생략
-르 클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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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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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The Sputnik Sweetheart
무라카미 하루키/자유문학사/1999

"사람에게는 각각 어떤 특별한 연대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 작은 불꽃 같은 것이다. 주의깊고 운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유지하여 커다란 횃불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 불꽃은 꺼져버리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스미레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귀중한 불꽃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p.241)


책을 소개하는 게시판을 만든 것은, 책읽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자는 의미도 있고, 그동안 읽은 것들을 정리하자는 생각도 있어서였다. 꽂혀진 책들 중에서 하나씩 꺼내, 이 게시판을 위해 책을 다시 훑어보는 일이 즐겁다. 나는 왜 이 페이지에서 감명을 받아 접어둔 것일까, 아, 이건 그 때 그랬어 라는 식으로 생각들이 페이지마다 차곡차곡 묻혀 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고, 그래서 결국은 전자의 의미도 만족시켜준다. ^^;

아마도 지금과 같은 나이에 그를 만났더라면 또 달랐을 것이다. 하루키는 내 어린 시절에 어른의 세계, 혹은 성의 세계에 대해 환상처럼 흔들리고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주었고, 그래서 어느 일정 부분,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불편한 인생이지만 즐겁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극적이지 않고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는 뭐 그런...
사람들은 하루키의 장편 소설보다 그의 단편들을 좋아하지만 난 그래도 긴 소설이 좋다. 오래오래 읽다 보면 몇시간 동안, 혹은 며칠 동안 그의 세계에 푹 빠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즐겁다.
처음 그를 접했을 때처럼 슬프고 우울하지 않은 건 왜일까.
어쨌든간에 이제 난 어른이고, 중학생 때 처럼 숨어서 몰래 읽지는 않아도 된다. -_-;

ps.
스푸트니크
1957년 10월 4일, 소련연방은 카자흐스탄 공화국에 있는 바이코널 우주기지에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다. 직경 58센티미터, 무게 83.6킬로그램인 이 인공위성은 96분 12초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다음 달 3일에는 라이카라는 개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는데, 이 덕분에 라이카는 우주 공간으로 나간 첫 생물이 되었지만 위성이 회수되지 않아 결국은 우주에서의 생물 연구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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