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책을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있다.
주로 읽다 만 책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체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뭐랄까, 한번에 다 읽기가 심히 괴로운 책들만 결국에 남아서 손을 놓기가 그렇고(왠만하면 다 읽지 않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지 않는다, 뒷처리를 안하고 화장실을 나오는 기분) 한장이라도 나가기 어려운(싫은) 책들이 쌓여서 그 뷁한 기분을 잊어버릴 때 즈음 다시 손에 들고 그리고 진도를 또 한 두어 서너장 나가고, 이런 식인 것 같다.
그래도 어제는 드디어 선과 악에 조금 정을 붙였다. 아마도 김기덕 영화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서인가 보다. 그녀의 또다른 책 중에 선에 관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콜린 윌슨의 잔혹 시리즈와 같이 겹쳐 보면 될 듯 하다. 고전도 읽고 싶지만 집에 있는 책들은 글체가 워낙에 먼지나는 식이라, 또 세로로 된 것이 거의다, 읽다가 보면 지친다.
나도, 나도 그럴까.
나는 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를 잃어, 혹은 바꿔, 혹은 맞춰 가겠지. 잃거나 바뀌거나 맞추기 전에, 현재의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살펴보고 싶은데, 그것은 항상 잘 안된다. 나라는 자기잘남에 빠져 있어서. 결국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하고 다듬기란 타인이 각색하기와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일기란 중요한 것이겠지, 라고 도서관에 앉아 혼자 쉬며 생각했었다. 일기를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하고 싶은 얘기를 잘 갈아서 맛있게, 그리고 최대한 길고 자세하게 써야 한다고. 나중을 위한 백업 과정이다.
주말에는 내내 집에서 보냈다. 일요일에는 보고 싶은 조카가 왔다. 형부가 웅상이라는 곳, 우리집에서는 가깝지만 나는 형부에 의해서 처음 듣게 된 지역이다, 으로 근무지를 옮겼기 때문인지, 전보다 언니네 사이는 평화가 찾아온 듯 하다. 형부의 퇴근시간 펌프가 일정하게 눌려져야지만이 가정의 긴장도가 조절되는 듯 하다. 계속해서 심하게 눌려지면, 가정의 긴장도는 폭발할 듯이 올라가서 결국에는, 폭발하고 말겠지만, 어쨌든 폭발했을 때보다 폭발까지의 왔다갔다한 눈금의 압력이 주위인들에게는 훨씬 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뭐, 요새는 가끔 보니까 그런 두 개의 유리관에 대해서 실질적인 사정은 잘 모른다.
라고 일기를 쓰다 보면, 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 나와 친한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속속들이 아는게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또 드는 것이다. 결국 웹에 올려져 있으니까 겉과 속을 잘 다듬어서 있는 만큼, 사과의 이쁜 쪽만 깎아서 내놓아야 한단 얘길까.
아아, 그렇더라도 진심을 숨기고 오늘은 기분이 무지하게 안좋은데, 좋은 척, 이쁜 웃음 이모티콘을 세개나 달고 있는 일이 이제는 피곤하다. 원래 나는 제멋대로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