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에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타임 머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나간 신문 기사 중에서 특이한 사건들을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재미 전달이 우선이라 때로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우를 범하지만 나름대로 흥미롭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짧게는 몇 년 전부터 멀게는 몇 십년 전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과거의 모습, 당시 사람들의 행동, 사고 방식 등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즐겨 본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조선시대의 사건을 재구성한 '타임 머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뒷골목'이라는 낱말이 잘 나타내 주듯, 이 책은 조선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알려지지 않은 일상을 담은 일종의 '풍속사'이다.

저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금속활자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 나라 금속활자의 제작이 비록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빠르긴 해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가져온 혁명적인 지식의 보급률(과 그로 인한 지식 독점의 해체)에 비하면 그 결과는 미미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꼼꼼한 문제제기 없이 '민족의 세계적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것은 바로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민족', '민중', '역사'라는 거대 담론의 그늘에 가려 있던 '조선의 뒷골목' 사람 하들을나씩 둘씩 큰 길로 끌어낸다. 돈 없는 서민들을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 내걸고 인술을 펼쳤던 민중의들, 비밀폭력조직 '검계', 기방의 운영자였던 '왈자'패들, 조선시대의 오렌지족이라 불리울 만큼 사치스러웠던 '별감'들, 조선시대의 성性과 성의식, 오늘날 고스톱이 자리잡기 전까지 최고의 유행이었던 투전판 등등.

어찌 보면 씁쓸하기까지 한 사건들도 많지만 이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러한 것들이 바로 살아가는 모습 자체이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네들이 사회와 국가를 지탱해 온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반면 엄숙으로 포장된 주류 계층에 대해서는 관용을 보이지 않는다. 과거를 보면서 책을 가지고 들어가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고 심지어는 돈을 주고 대리 시험을 치르기까지 했다. 과거 시험이 정당한 인재 선발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난장판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양반계층의 도덕적 불감증과 허위 의식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종로에 있는 '피맛골'은 실제로 조선 시대에 평민이나 상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피맛골'에 지금처럼 술집이 모여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허름한 술집들이 즐비하게 들어 선 그 뒷골목에서, 오늘날의 서민들은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괴로운 일들을 한 잔 술로 풀어버리고 있다. 사소한 대화, 사건 하나하나가 바로 삶 자체이다. 초라해 보이는 그 길 속에는 삶의 진정성과 진실성이 묻어 있다. 좁은 골목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오가는 우리네의 이야기를 먼 훗날 누군가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