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발견한, 타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 문제는 제목인데, 그냥 Being Mortal 원제로 했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쉽게 권하기 어려운 제목이라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많은 이들에게 권한 책. 오해(?)를 무릅쓰고 권할 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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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

오후부터 미열과 두통 때문에 일과를 놓치고 있다. 할일은 많은데 머리는 아프고 손은 더디다. 게다가 어제는 발목까지 삔 탓에 (자업자득이긴 해도) 이래저래 불만이 터져나온다. 그린버그의 글을 정리하는 일을 미루고 잠시 재작년에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란 제목으로 모스크바통신에 올렸던 글을 창고에 다시 정리해둔다. 새학기에 러시아문화에 대한 입문 강의도 (다시) 맡게 되었기에 워밍업도 좀 해두어야겠고. 주된 내용은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이 자유가 필요한가"에 대한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스프스키의 인터뷰 갈무리이다. 그런데, 콘찰로프스키가 누구냐고? 이런, 젠장...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1937- )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모스크바영화학교 동기생이다. 둘 다 미하일 롬에게서 배웠는데, 비슷한 시기에 졸업작품을 만들고, 1960년대 중반 러시아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콘찰로프스키의 데뷔작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타르코프스키의 경우 졸업작품은 <증기롤러와 바이올린>이고 데뷔작이 <이반의 어린시절>(1962)이었다(콘찰로프스키는 <증기롤러와 바이얼린>의 시나리오도 썼다). 1962년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다.

참고로, 주인공 ‘이반’으로 나왔던 소년도, 지난달에 우연히 TV 인터뷰를 보니까, 중견 영화감독이 돼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이 부를랴예프이다. 혹 소년의 얼굴이 생각나시는가? 아래는 그 '소년'의 어린시절과 최근 모습이다.

그리고, 타르코프스키의 두번째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의 시나리오가 바로 콘찰로프스키와의 합작이다.

콘찰로프스키는 내가 알기로 타르코프스키보다 먼저 7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소비에트 몰락 이후 1990년대 중반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정확한 년도는 알지 못하며 짐작에 그렇다). 그의 헐리우드 시절 초기 대표작이 <폭주기관차>이며, 스탈린의 전속 영사기사의 삶을 다룬 <이너 서클>이 또한 그의 작품이다(<아마데우스>에서의 ‘모차르트’가 주연을 맡았다. 톰 헐즈이던가?). 그밖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며 많은 영화와 TV시리즈를 만들긴 했지만(<탱고와 캐쉬>, <마리아스 러버> 같은 영화들도 떠올려볼 수 있겠다), 비평가들은 보통 그가 젊은 시절의 ‘재능’을 낭비한 걸로 평가한다. 동기였던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적 성취와 비교해서도 그렇고, 러시아 영화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그의 동생 니키타 미할코프와 비교해서도 그렇다(콘찰로프스키의 풀네임은 ‘안드레이 미할코프-콘찰로프스키’이다. 거기서 ‘미할코프’를 떼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이 형제의 사이가 원만한지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한다).



러시아로 되돌아온 이후에도 콘찰로프스키는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내가 알기로 그의 최신작은 1996년의 제1차 체첸전쟁을 다룬 <바보들의 집>(2003)이다(실화를 다룬 이 영화의 배경이 전장(戰場)의 정신병원이다). 이 영화로 그는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영화의 비디오CD를 사놓고 아직 다 보지는 않았는데, ‘문제의식’에 있어서 에밀 쿠스투리차의 <언더그라운드>와 유사한 종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어쨌든 ‘타르코프스키의 친구’ 혹은 ‘미할코프의 형’ 정도로 나는 그를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인터뷰는 그의 ‘존재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아예 번역까지 해버렸다. 번역은 ‘정확성’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의역했는데, 그게 ‘유려함’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읽기에는 더 무난할 듯해서이다. 참고로, 나는 인터뷰 내용 중 많은 부분에서 콘찰로프스키에게 공감하는데, 이 때문에 같이 수업을 듣는 독일 학생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내 의견(‘자유론’)은 번역문 뒤에 간략히 밝히기로 하겠다.

인터뷰가 게재된 지면은 주간신문인 <논거와 사실(영어로는 ‘Arguments and Facts’)>인데(사진), 발행부수가 많은 주간지의 하나라고 한다(우리의 <일요신문> 같은 종류이다). 어제 처음 한 부 사봤는데, 9루블로 표시된 정가와는 달리 구내에서는 11루블(450원쯤)에 판매하고 있었다. 전체 32면. 일간지인 <이즈베스찌야>나 <니자비씨마야>(우리말로는 ‘독립신문’)와는 달리 활자나 체제가 좀 조잡해서, 정말로 ‘유력지’인지는 의심스러웠다(하긴 대부분의 신문이 그렇지만). 그리고, 정확한 인터뷰 시점은 확인하지 못했다. 러시아 두마(=의회) 선거 직후인 듯한데, 그 선거가 언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제기된 문제가 여전히 현재적이기 때문에(지난주에도 ‘러시아에서의 자유’라는 주제의 TV토론이 있었다), 시점에 구애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터뷰의 제목은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이다. 인터뷰는 한 문단의 서론 이후에 시작되며, ‘기자들’이라고 표시되지 않은 문단은 전부 콘찰로프스키의 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주석에는 *표시를 했다. 이하는 번역문이다.



의원 선거가 끝나고 러시아에 사실상 단일정당 체제의 두마(=의회)가 형성되자 우려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논거와 사실>의 지면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아버지’ A. 야코블레프, 반체제작가 V. 부코프스키 등 여러 사회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실렸다. 그들은 러시아에 대두되고 있는 ‘우려할 만한 정세들’에 대해서 지적했다. 즉, 우리가 지난 수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쟁취해온 시민권적 자유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란 문제와 관련하여 이와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저명한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는 <논거와 사실>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예기치 않은, 역설적이면서 상당히 논쟁적인 자신의 견해를 표명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러시아 국민에게 어떤 요구들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에 무엇인가에 대한 요구(*영어의 ‘need’에 해당한다)가 사람들에게 없을 경우에는, 아무리 유익한 것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요를 얻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가령 캐비어(*상어알젓) 한 양동이를 세네갈 사람들한테 제공한다고 해봅시다. 과연 얼마나 먹고 싶어할까요! 그들은 이 특별한 음식에 거의 손도 대지 않을 텐데, 그건 캐비어가 나쁜 음식이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모자란 사람들이어서도 아니죠. 세네갈 사람들, 물론 훌륭한 국민들인데, 단지 그들에겐 캐비어에 대한 요구가 없을 뿐입니다.

같은 질문을 러시아에도 던져봅시다. 과연 이 나라에서 언제 자유에 대한 요구가 객관적-역사적 조건으로서 제기된 적이 있습니까?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입니다. 플레하노프(*러시아 맑스주의의 ‘아버지’)조차도 레닌에게 미리 경고했었죠. “러시아의 역사는, 구워서 사회주의란 고기만두를 만들 밀가루를 빻지 못했다네.” 즉, 러시아의 역사는 유사 이래 그 발전과정 속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요구를 창출해내지 못했던 것이죠.

라디오 <스바보다>에서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란 여론 설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두 가지 답변이 기억에 남는데, 첫번째는, “자유란 무엇보다도 국가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것이다.”이고, 두번째는, “자유란 만약 당신에게 말이 있고, 초원에 천막이 있다면,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필요 없는 것이다.”예요. 이 두 가지 정의는 특별히 러시아적입니다. 두 정의는 그냥 러시아 철학이 아니라, 러시아 농민의 철학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농민들의 철학이란 언제나 국가와의 대립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정해 왔기 때문이에요. 국가는 농민들에게 한번도 뭔가를 주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빼앗아가기만 했죠. 농민들의 역사, 이것은 국가와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의원 선거결과 집계가 끝나자 사회학자들은 어째서 젊은 층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우파에 표를 던졌을까를 분석하려고 했습니다. 이건, 그 정치세력(*우파)이 그들(*젊은 층)의 권리와 자유를 중지시킬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도 말입니다. 몇몇 사회학자들은 아주 슬픈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젊은 층들에게 자유란, 단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의 시간, 그러니까 일할 필요가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러시아에서 모든 서구적 가치들(*사상), 루소나 디드로 등등의 계몽사상가들이 공표한 그 가치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가치들은 단지 소수의 계몽된 그룹, 인텔리겐치아 층에서만 받아들여졌죠. 인텔리겐치아, 이건 순전히 러시아적인 현상입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인텔리겐치아 대신에 그냥 전문지식인들(*인텔렉츄얼)이 있죠(*‘비판적/혁명적 지식인’이 하나의 ‘사회적 계급’으로 존재했던 나라는 러시아가 유일하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교육받은 소시민계급에서 생겨났습니다. 이 소시민계급이란 해방된 농노들이죠. 그 때문에, (의사, 교사 등) 19세기의 ‘잡계급’(*1)들은 ‘나로드’(*2)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죠. “나는 여기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데, 나로드는 여전히 노예상태에 있구나!”(*1860년대의 비평가 도브롤류보프는 딸기잼을 먹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그랬죠, 나로드는 너무도 오랫동안 노예상태에 있었고, 이 때문에 어떠한 삶의 안락도 체험할 수 없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합니다. 러시아의 모든 재앙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쪽에는 서구사상을 수용하여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인텔리겐치아가 있고, 다른 쪽에는 이러한 사상에 관심도 없고, 그걸 이해할 수도 없는 절대 다수의 나로드가 있다는 것(*이러한 분열현상에 대해서 참고할 수 있는 문헌은 이인호, <지식인과 역사의식>(문학과지성사)이다).



 

 

 

(*1) ‘잡계급’은 소수 귀족과 다수 농민/농노가 아닌 제3의 계급을 가리키는데, 19세기 전반기에 형성된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그 출신에 따라 (소수) ‘귀족 출신’과 (다수) ‘잡계급 출신’으로 대별되는바, 전자의 대표자가 작가이자 사상가 게르첸(Herzen)이라면(그는 대귀족의 사생아였다) 후자의 대표자가 비평가 벨린스키(Belinsky)이다(그는 사제의 아들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은 인텔리겐치아의 문학이었다. 하지만, 교육받지 못한 대부분의 나로드 때문에 당시 문맹률은 95%에 달했는바, 다르게 말하면, 그 위대한 러시아문학은 5%에 의한, 5%를 위한 문학이었다.

(*2) 우리에겐 ‘브 나로드’ 운동(심훈의 <상록수>)이라고 할 때의 그 ‘나로드’이다(‘브’는 ‘toward’란 뜻의 전치사). ‘민중’ 혹은 ‘인민’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실내용은 주로 ‘농민’이다. 대략 1840년대부터 제정러시아의 사회적 계급은 짜르(=황제)/귀족과 나로드, 그리고 인텔리겐치아로 3분 된다. 인텔리겐치아는 주로 ‘참회하는 귀족’(작가로선 톨스토이가 대표적이다)과 대학교육을 받은 잡계급 지식인들로 구성되었다. ‘브 나로드’ 운동은 1880년대 인텔리겐치아들의 농촌 계몽운동이었는데(‘농활’의 원조이다), 그 진보적/혁명적 취지와는 달리 이 운동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농민들의 고발로 이들은 (다행히 총살을 면할 경우) 대부분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요구, 즉 캐비어 혹은 거위간의 맛을 아는 소수의 요구와 캐비어가 뭔지, 거위간이 뭔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다수의 요구는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이 계몽된 소수는 나로드가 무얼 원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겐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레닌의 오류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플레하노프는 레닌에게 이렇게 말했죠. “자넨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걸세.” 그러자 레닌이 말하길, “아니요, 혁명은 역사의 산파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앞으로 끌고 나갈 겁니다.”

하지만, 좌건 우건 갑작스런 진동(*혁명)은 매번 재난을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에 ‘역사를 앞으로 끌고 나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체험했습니다. 혁명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로의 길로 진입한다는 게 그런 것이죠. 무엇을 얻게 되었습니까? 다수의 절대 빈곤화와 국가 체제의 완전한 붕괴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아무런 구심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나로드에게 자유는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누가 자유를 향유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벌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고작 한줌의 무리들뿐이죠(*이 한줌의 무리를 ‘노브이 루스끼’, 즉 ‘새로운 러시아인’ 혹은 ‘신종 러시아인’이라고 부른다. 그 말의 함의는 그들이 ‘본래의 러시아인’이 아니란 얘기다. 그들은 자본주의 이행기에 한몫잡음으로써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현 러시아 사회의 새로운 ‘귀족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독일의 어느 도시보다 많은, 비싼 독일차들이 굴러다니는 건 이들의 과시적인 부(富) 덕분이다).

Soviet poster -

그것이 우리가 우리 국민의 요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입니다. 누가 국민의 요구를 이해했을까요? 스탈린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한번은 서기장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소파에 누워서 대답하기를, “어머니, 짜르가 무엇인지는 아시죠?” “그럼, 그럼, 알지.” “그게요, 그거랑 거의 비슷한 거예요.” 스탈린은 나로드의 요구가 전대권력에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고, 러시아인들이 그를 지지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비극이 아닙니다. 짜르가 폭군이 되느냐, 성군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자들) 당신의 생각대로 한다면, 우리는 짜르시대로 후퇴해야만 할 거 같군요. 자유로운 사회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왜 자유 곧 전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는 1990년에 자유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우린 러시아 나로드에게 그들이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앞으로 전진했습니까? 대답을 해보세요! 러시아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돼 버렸어요. 그걸 타고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기자들) 가긴 가겠죠. 하지만, 문제는 어디로, 어떤 속도로 가느냐겠죠.



-그게 그겁니다. 요컨대, 자유가 반드시 전진은 아니라는 것이죠… 1990년대 초의 그루지야를 예로 들어봅시다. 거기서는 절대 자유선거에 의해서 감사후루지아(Gamsakhurdia)가 선출됐었죠(*그때 선출된 대통령인 모양이다. 사진). 98%가 표를 던졌습니다. 그가 시작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루지야 인텔리겐치아의 절반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게 전진입니까? 대답해 보세요! 감사후르지아는 실상, 권력의 찬탈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루지야가 전진했던가요?

-보통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자유와 안전 중에서 어느 걸 선택할 것인지.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기자들) 안전.

-당연하죠! 러시아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보살핌입니다. 나의 증조부이자 저명한 철학자 표트르 콘찰로프스키는, 1940년대에 파리에서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쓰셨더랬죠. “자유란 위대한 선물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축복은 아니다. 자유를 잘 다룬다는 건 원자력 에너지를 다루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때문에, 자유가 러시아인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슬프지만은 않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만족스런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는 동물이 될 겁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아있기 위해서는 불만스런 조건이 필요합니다. 물론, 합리적인 한도 내에서 말입니다. 예컨대, 인간은 적당히 추울 때 적극적으로 일을 합니다. 어째서 3,000킬로미터의 적도 부근이 절대 빈곤지대입니까? 거긴 덥거든요. 당신이 누워 있으면 나무에서 바나나가 떨어집니다. 그걸 먹으면 되고,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너무 덥기 때문에. 하지만, 좀 추운 곳으로 가면, 일을 해야 따뜻해질 수 있고, 그런 곳에서 정상적인 부르주아사회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국가는 이 ‘만족스런 조건들’과 ‘불만스런 조건들’ 사이에서 균형을 창출해야만 합니다. 국가(=정부)란 것 자체가 나로드를 보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죠. 그건 커다란 환상입니다. 국가란 인간이 동물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가는 인간의 탐욕과 본능을 제한합니다. 인간은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니까요…

 

 


 

유감스럽게도, 러시아 문화의 몰락은 넘쳐나는 정보가 서서히 인간의 정신적 체험을 잠식해가고 있는 것과 관계 있습니다. 체험이 더 증가하는 게 아니라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의미는 줄어듭니다. 인터넷, 이건 쓰레기통입니다. TV도 쓰레기통이고, ‘맥도널드’도 쓰레기통입니다(*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이런 게,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미국식 대중문화’이고, 이건 ‘미국문화’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위대한 시인이 출현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시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늘날엔 영화도 끝났고, 예술은 자신의 권위와 대중에 대한 매혹을 잃었습니다.



 

 

 

프랑수아 모리악이 말한 대로입니다. “20세기는 축구의 세기가 될 것이다.” 그의 예언은 약간 빗나갔는데,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가 스포츠의 세기가 되었습니다. 어디로 돈이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까? 축구, 테니스, 야구, 농구, 각종 레이스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슈마허나 베컴은 톰 크루즈만큼이나, 더는 아니더라도, 유명합니다. 왜인가요? 돈이죠! 시장은 이미 예술에서 스포츠로 옮겨갔습니다.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에선 다행스런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발가락으로나 썼을 법한 작품을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팔아넘긴다든가, 원칙적으로 배우로서의 조건이 안되면서 마지막 사무라이를 연기하는 것보다는(*톰 크루즈를 염두에 둔 얘기 같다. 원한이 좀 있는지?) 잘 뛰어다니는 게 그래도 나으니까.



-(기자들) 러시아의 영혼은 남아있습니까?

-러시아의 영혼은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영혼이 반드시 청렴을 뜻하는 걸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은 악이고, 영혼은 선이라는 이분법은 큰 오류입니다. 영혼이 사악할 수도 있고, 반면에 돈이 순수할 수도 있으니까요.<끝>

여기까지이다. 이상, 콘찰로프스키의 다소 ‘도발적인’ 견해에 대해서, 독일 학생들은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헤겔의 후손들답게(그들이 헤겔을 거명하진 않았지만), 인류사의 진보는 자유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전제가 그들의 뇌리에는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그것이 '러시아 영혼'과 대비되는 '독일 정신'이다). 하지만, 나는 콘찰로프스키에게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동의는 그의 주장에 깔려있는 ‘역설’에 대한 동의까지 포함한 것이기에 ‘전적’이다. 그가 말하는 러시아가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이다. 전제주의나 독재는 나쁜 것이지만, 그것이 자본의 ‘합리적인’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일까? 이 질문은 “과연 후세인이 부시보다 더 나쁜 놈일까?”란 질문과 같은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 ‘자본’(대부분 유태계 자본이라고 한다)의 독재를 얼마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가’이다. 이 국가란 푸틴의 국가관료체제를 말하는바, 그래도 그 점이 자본과 결탁했던 옐친과는 다른 푸틴의 면모이다. 그리고, 현 러시아적 문맥에서, ‘자유에 대한 요구’는 현재 감옥에 있는 ‘기업가’ “호도로프스키에게 자유를!”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요즘(물론 재작년 얘기이다) 씨아일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G8(러시아언론은 ‘G7+1’ 대신에 ‘G8’이란 표현을 쓴다) 정상회담 얼마 전에 러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을 주제로 미의회에서 열린 청문회(헬싱키위원회)에서도 호도로프스키 사건은 도마에 올랐었다.



이 청문회에는 세계 체스챔피언으로 이름을 날렸던 카스파로프가 푸틴을 맹비난하는 증인으로 나서 눈길을 끌었는데, 이 소식을 전하는 <이즈베스찌야>의 기사 타이틀은 ‘카스파로프 대 푸틴’이었다. 카스파로프는 푸틴이 임기중에 개헌을 밀어붙이고 다음 대선에 또 나올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미리부터 전개하고 있다. 현행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은 1회에 한하여 연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난 3월의 대선에서 연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푸틴은 다음 대선(2008년)에는 출마할 수 없다. 푸틴에 대한 불만의 대부분은 몇몇 기업인들과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는바, 탈세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최대의 부호(富豪) 호도로프스키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요컨대, 일부 러시아의 지식인들과 미의회 지도자들이 보기에, 러시아는 정치적 경쟁자라고 해서 (무죄한!) 기업가를 감금하는 나라, 그래서 아직도 ‘덜 민주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미국같이 ‘민주적인’ 나라에서는 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기업인들의 기부금으로 정치하면서 대통령도 되고, 대통령이 되어선 기업들 뒤를 봐주기 위해서, ‘자유의 이름으로’ 전쟁도 서슴지 않는 나라야말로 ‘자유주의’의 천국 아닌가?(이 ‘천국보다 낯선’ 천국의 일상에 대해서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자세하게 보고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민주적인’ 나라가 ‘덜 민주적인’ 나라보다 과연 ‘더 좋은’ 나라인지 확신할 수 없다.

 

 

 

 

사실, 러시아에서 ‘자유’나 ‘민주주의’는 이제 겨우 십수 년의 역사밖에 갖고 있지 않다. 걸음마 단계인 셈. 다른 한편으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공부해볼 수 있는 아주 유익한 ‘현장학습장’이다. 여기선 ‘민주주의의 발생과 진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민주주의의 ‘빅뱅’ 현장처럼. 그러니, 민주주의를 공부하려면 미국에 갈 게 아니라, 러시아에 와야 할 것이다(물론 한국도 민주주의의 생생한 ‘학교’이지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민주주의가 어떤 공모관계에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유에 대한 ‘원자론적’ 이해가 아니라(“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숭고한 구호들에서처럼), 자유라는 가치가 놓여있는 시스템에 대한 ‘체계론적’ 이해이다.



지난 화요일(6월 8일) <이즈베스찌야>의 쟁점란의 주제도 요즘 유행하는 ‘자유’였다. 거기에서는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짐작하게 하는 설문결과도 제시됐는데, 열거된 단어들 가운데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는 무엇인가란 설문의 결과, 1위는 질서(61%)였다. 이어서 2위가 정의(53%)이고, 자유(43%), 애국심(40%), 안정성(40%), 러시아인(34%) 등이 뒤를 이었다. 민주주의(19%)가 15위이고, 시장(13%)이 19위로서 20위인 사회주의(12%)와 비슷했다. 35개의 단어 중 1%로 공동 꼴찌를 차지한 단어들은 개인주의, 혁명, 자유주의, 자본주의 등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혁명’이며, 러시아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자본주의’ 모두 ‘혁명’적인 걸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이 ‘자본주의 혁명’에 대한 콘찰로프스키의 견해를 상기해 보라).

러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이데올로기는 “정의-안정성-노동-평등-집단주의”를 내세우는 사회주의(19%)였고, 민족주의(12%), 자유주의(8%), 공산주의(5%)의 순이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자유-시장-서구-비즈니스-민주주의”라는 개념쌍들로 구성된 ‘자유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콘찰로프스키의 견해는 특별히 ‘도발적’이거나 ‘논쟁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정의나 평등이 없는 자유주의’보다는 ‘자유나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에 더 호감을 갖고 있는 다수 러시아인들의 ‘주류적인’ 정서를 ‘역설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겐 ‘병역’만큼이나 신성한 ‘민주주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지는 생각보다 낮다. 장년세대는 아직도 19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에 대한 ‘시대착오적 환상’을 갖고 있다. 얼마전 이 브레즈네프와 그의 시대에 대한 역사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기도 했다. 우리의 ‘박정희 판타지’와 비슷한 현상).

자유(주의)에 대한 체계론적 이해라는 것은 그것을 “자유-시장-서구-비즈니스-민주주의”처럼 일련의 개념적-가치론적 사슬 속에서 이해하는 걸 말한다. 이러한 사슬은 물론 다른 모든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발생론적, 계보학적 근거를 갖는다. 이것이 자유에 대한 나의 논점이다. 그에 따를 때,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는바, ‘장사꾼(부르주아)들의 자유’와 ‘농부들의 자유’(러시아의 경우엔 ‘나로드의 자유’)가 그것이며, 이 둘은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그걸 뭉뚱그려 ‘시민의 자유’라고 하는데(이 ‘시민’은 오지랖이 넓어서 재벌도 시민이고, 백수도 시민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다른 ‘자유’가 혼종돼 있어서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러시아어에서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용하게도 두 종류의 자유를 적절하게 구별해서 표시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볼랴(volya)’와 ‘스바보다(svoboda)’가 그것이다. ‘볼랴’는 ‘의지로서의 자유’이며, ‘스바보다’는 ‘법적인 권리로서의 자유’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농부들이 요구하는 자유는 ‘볼랴’이며, ‘스바보다’는 장사꾼들이 요구하는 자유이다. 영어의 경우 ‘freedom’과 ‘liberty’가 거의 구별없이 쓰이는 듯하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각각 ‘볼랴’와 ‘스바보다’에 대응될 수 있다. Free-will이란 조어에서 볼 수 있듯이, freedom에는 생래적/자발적 의지의 관철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으며, 'liberty'는 'liberalism'(자유주의)과 연계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리버럴리즘은 콘찰로프스키가 이의를 제기하는바, ‘진보주의’란 함의도 갖는다.



 

 

 

자유가 하나의 이념으로서 전면화되는 것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이다(*대혁명의 이념은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도 파급되며, 1825년 12월의 ‘제카브리스트 봉기(=12월당 봉기)’를 낳는다). 그리고 이념으로서의 자유, 혹은 ‘자유주의’는 혁명의 주체인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농부들도 장사꾼(부르주아)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요구하지만, 그 요구는 내 생각에 ‘이념화’될 수 없다. 그러니까 ‘농부들의 자유주의’란 말은 넌센스이다. 즉 ‘스바보다’는 ‘이즘’이 될 수 있지만, ‘볼랴’는 ‘이즘’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콘찰로프스키가 들고 있는 예에서처럼, 농부들에게 자유란 자기 말과 천막이 있는 걸로 충분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자기가 경작할 수 있는 논밭을 소유한 걸로 충분한 것이 농부의 자유이다. 그것은 ‘더 많이!’(볼셰)라는 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 많이!’라는 건 장사꾼들의 요구이며, 볼셰비키들의 요구이다.



 

 

 

<근대성의 구조>의 저자가 잘 보여준 바대로, ‘기업가 정신’과 ‘혁명가 정신’은 동일하다. 레닌은 탁월한 혁명 사업가이며, 예컨대 정주영은 비즈니스에서의 특출한 레닌주의자이다. 그들은 밀가루 없이도 빵을 만들어낸다. 그들을 묶어주는 키워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투(project)로서의 헌신이고 투자(project)이다. 그리고 이 헌신/투자는 중단 없는 과정이다. 편집증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공산주의’란 미래, ‘초일류기업’이란 미래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멀미’를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비즈니스로서의 혁명’의 질주, 혹은 ‘혁명으로서의 비즈니스’의 질주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농민의 마인드, 나로드의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닷새 일하고, 이틀 쉬는 걸로 더 바랄 게 없는 (순환적인) 삶! 

‘자유’는 언제 ‘자유주의’가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주어졌다. 그것이 ‘돈(=근대 자본주의)’과 결합될 때이다. 농민의 자유가 ‘농민-영주’, ‘나로드-국가’라는 2자적 관계에서 문제되는 것이라면, 장사꾼의 자유는 돈을 매개로 한 3자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모든 형이상학의 문제가 1이냐 2냐의 문제로 환원된다면, 모든 정신분석학의 문제는 2냐 3이냐의 문제로 환원된다). 즉, ‘부르주아-돈-국가’. 라캉-지젝이 즐겨쓰는 도식을 빌어와서 말하자면, 농민의 자유는 충동적 자유, 즉 충동으로서의 자유라면(2자적 관계에서 욕망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에), 장사꾼의 자유는 욕망으로서의 자유이다(이때의 자유는 항상 자유에 대한 금지로서의 ‘법’과 연관된다. 금지가 없으면 욕망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의 제한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그래서, 법과 자유는 서로 길항하지만 공모적이다). 이 ‘자유에 대한 충동’과 ‘자유에 대한 욕망’이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할 때,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이 자유에 대한 욕망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콘찰로프스키는 같은 생각을 캐비어와 거위간에 대한 ‘요구’는 다를 수 있다는 사례를 들어서 말했다(욕구로서의 자유!). 비록 요구(필요)와 욕망이 구별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나는 콘찰로프스키의 논변이 궤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보 이반’의 나라 러시아에는 욕망으로서의 자유(=돈)에 대한 요구가 없다는 것이며, 그런 자유(=돈)는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상의 근거가 장사꾼도 아니고 인텔리겐치아도 아닌 ‘나로드’(=농민)이다. 나로드의 자유는 인텔리겐치아나, 시민(부르주아)의 자유와는 다르다는 것(러시아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19세기 후반에서야 비로소 형성되며, 서구에 비해서 상당히 미약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나는 그에게 동의한다(물론 한국은 러시아와는 또 사정이 다르지만)...

06.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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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Grammar in Use 시리즈

2002년도 쯤에 학원 홈페이지에 올렸던 칼럼 글입니다. 요즘 제가 네이버 지식인 놀이(?)에 열중인데, 문법 공부로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Grammar in Use 책 이야기도 종종 등장하구요. 그래서, 예전 글이지만 여러모로 참고될 것 같아 다시 옮겨 놓습니다.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은 꼬리글을 달아주시거나, Q&A 게시판에 질문해 주세요. 제 학생분들은 수업중에 궁금하신 점을 올려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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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바로 이 책, "Grammar in Use" Series

 

 Grammar in Use 는 Cambridge의 유명한 영문법 교재입니다. 그냥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 유명세에 걸맞는 알차고 훌륭한 내용을 가진 책이라 저도 첼시에서 강의 교재로 사용하고 있지요.

  지금 시중에 볼 수 있는 Grammar in Use가 아마 다섯종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아서 다섯가지의 구분을 중심으로 이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동안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 남색 표지에 'English Grammar in Use'라고 타이틀이 적힌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 책과 비슷한 디자인인데 색깔만 빨간색으로 'Essential Grammar in Use'라고 된 것도 함께 잘 알려져 있지요.

 

 

   이 두 권이 바로 Grammar in Use 시리즈를 대표하는 소위 original이지요.

  보통 파란색은 intermediate(중급학습자)용, 빨간색은 Elementary(초급학습자)용으로 구분되는데, 단지 level의 구분을 떠나서 각각의 유용함과 특징이 있는 좋은 교재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세가지 Grammar in Use는 무엇일까요?

  전에는 자주빛 커버였다가 이번 2002년 판으로 CD가 딸린 은보라빛 Grammar in Use가 있죠? 이 책은 앞서 말한
파란색 Grammar in Use의 미국영어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Cambridge가 영국계 출판사지요? 영문법이나 영작 쪽으로는 전통적으로 영국쪽이 강세지요. 원래의 Grammar in Use 시리즈는 영국 철자와 영국식 표현이 사용된 영국 영어판입니다. 예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잘 살펴보면 영국 version은 영국적인 내음이 물씬 나는 이름들이, 미국 version은 보다 미국적인 이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2002년 은보라색 미국판은 약간의 편집 순서와 구성도 조금 더 바뀌었습니다.

  영국판이 몇년간 별 변화가 없는 반면, 미국판을 이번에 새로이 CD까지 포함하여 발간한 것을 보면 앞으로는 이 책을 주력적으로 마케팅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들더군요. 적어도 한국에서는요. 인터넷 서점들을 봐도 일찌감치 미국판 구판은 깨끗이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지금 중급 Grammar in Use 수업 시간 중의 교재로 이 2002년 은보라색 미국판을 사용하는데, 예전에 쓰던 파란색 영국판에 익숙해서인지 조금 낯설고 헷갈립니다. 하지만 미국식 철자나 표현에 보다 익숙한 한국 학생들에게는 아마 미국판 쪽이 좀 더 편안할지도 모르겠군요. 영국판의 경우 종종 책 속의 낯선 스펠링이나 표현 때문에 학생들이 질문을 하던 기억이 나거든요.

  영국판 빨간색 Essential Grammar in Use는 미국판에서 은색커버의 Basic Grammar in Use로 나왔습니다. 제가 Basic Grammar in Use 시간에 교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영국판의 Advanced Grammar in Use 입니다. 저자도 Edmond Murphy가 아닌 Hewings로 바뀌었고, 보다 깊이 있고 확장된 문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고급 학습자나 문법을 심도있게 연구하려는 학생이 아니라면 파란색 혹은 은보라색 Grammar in Use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리 널리 쓰이지는 않지요. 그래서, 보통 Grammar in Use 시리즈라고 하면 전자의 두권(영국판/미국판 모두)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도 대개 그렇게 얘기하구요. 어쨋거나 이 책은 약간 탁한 자주빛 커버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판은 본 적이 없구요.

 

   여하튼 이 Grammar in Use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반드시 level에 의한 구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의 문법이 필요한가에 따라서도 각각의 의미와 효과를 지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난이도면에서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만, 단지 난이도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현재 영어 공부에 있어서의 문법 필요성의 의미를 알고 선택할 경우 효과를 배가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Essential 혹은 Basic Grammar in Use는 특히 말하기에 있어 기본적인 문법 실수가 잦은 학생들에게 좋습니다. 기본적인 문법 이해가 적은 학생이라면 상황과 해당되는 문법 사항을 좀 꼼꼼히 다져가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고, 문법에 대한 이해는 있는데, 말하기에 있어서 좀처럼 적용이 잘 안되거나 생각이 나지 않는 학생이라면 연습문제를 일일이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바로 입으로 답을 말하는 연습을 함으로써 정확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2002년판에 포함된 CD는 예문들을 모두 녹음한 것인데, 이렇게 일정 패턴으로 계속 해당 문법이 사용된 예문들을 자꾸 듣고 따라하는 것도 입에 영어 문장의 구조를 배이게 하는 훈련이 됩니다.

  
파란색 혹은 은보라색 Grammar in Use는 이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되지만, 내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뉘앙스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분들이나, 무턱대고 그런 줄 알거나 외우기만 하던 문법에 한계를 느끼신 분들에게 영어라는 언어의 감각과 구조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좋은 책입니다. 제 경우에 한국말이 가지는 이러이러한 느낌과 뉘앙스가 영어 문법적으로는 이렇게 표현된다라던지, 영어에서 이렇게 표현되는 것들이 한국말의 이러이러한 것과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던지, 영어에는 이러한 것이 분화되어 있지만 한국말은 그렇지 않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등등을 다양하게 전달하는 것을 이 교재를 사용하는 문법 강의의 주된 줄기로 삼고 있지요.

  
이 Grammar in Use의 가장 큰 특징은 말로써의 그 느낌과 의도를 충실히 표현하기 위한 문법책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말로서의 느낌이나 감정없이 시험을 위해서만 외워야하는 사항이나 감흥없는 단편적인 지식으로서의 문법이 아닌, 피부로 느끼고 공감하는 문법이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들은 그냥 문법서가 아닌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영어로 다가가는 가장 탄탄한 받침대가 될 수 있는 다양하고도 효과있는 종합 학습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의 풍부한 예문들은 실제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공감가는 상황을 기초로 하였기 때문에, 그것만을 추려도 좋은 회화 구문 모음이 되고, 어휘 또한 가장 우선적이고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로 사용되어 그것만으로도 별다른 단어장등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Essential 혹은 Basic Grammar in Use의 경우에는 정확도를 연습하는 학생이라면 독학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극적인 학습자나 제어가 잘 안되는 초급 학생이라면 좀 더 스피디하게 말하기를 훈련시키는 가이드가 있는 편이 더 낫습니다. 친구와 둘이 서로 교대로 빠르게 문제를 입으로 풀어간다던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Grammar in Use의 경우에, 저는 강사가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조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책에 나온 문법 사항들을 보다 학생에게 공감되게 전달할 수 있고, 어떻게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예시할 수 있으며, 책에 연관된 여러가지 배경이나 지식등을 함께 전달 할 수 있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가능한 모국어에 가까운 공감대를 외국어에게서 끌어내어 학생의 입 언저리나 머리 가장자리에서 맴돌고 마는 영어가 아닌, 가슴과 머리에서 정말로 표현되어 나오는 언어로서의 영어가 될 수 있게 하는 가이드가 있을 때, 이 교재는 몇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서적은 또한 한국어와 영어라는 두개 언어 자체에 대한 이해가 고루게 갖춰진 강사가 강의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또한, 더 효과를 배가하자면, 그렇게 학습한 뒤 반드시 실습을 하여 체화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외국인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의 회화를 통한 적용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스스로 영작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 이해된 것을 바탕으로 생산해 내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아홉걸음을 걷고 마지막 한걸음을 디디지 않아 목표한 곳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Essential 혹은 Basic Grammar in Use로 집에서 혹은 스터디 그룹등을 통해 지속적인 훈련을 하면서, 학원이나 학교에서의 Grammar in Use 를 통해 보다 깊은 이해를 다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대개의 학습자들이 실제 말하기에 있어 문법이 많이 불안하기 때문에 (고급학습자도 알면서 끊임없이 틀리는 문제들을 보면 그렇죠) 쉬워보여도 우선 한단계 쉬운 Grammar in Use를 통해 그런 불안 요소부터 제거하는 것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 뒤에 다음 단계의 Grammar in Use를 공부하는 것이, 그렇지 않고 하는 것보다 더 체화되고 공감될 수 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기본기는 튼튼하게 다지면 다질 수록 나중에 금이 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공식은 여기서도 예외가 없지요.

  어떤 단계의 어떤 책을 선택하시더라도 중요한 것은, 머리속에만 넣고 마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말로 글로 표현하고 써 먹을 수 있는 도구를 습득하는 것이라는 사실임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이미 퀴즈대회용의 vocabulary나 시험용의 문법등은 지겨울대로 접하신 여러분이 아니신가요? 이제는 말하고 쓸 차례입니다.

 

 

  - 첼시앤서울 영어학원 Julien -


출처 : http://cafe.naver.com/BoardRead.do?cluburl=satcafe&clubid=10672964&menuid=15&listtype=M&boardtype=&page=&articleid=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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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111 > 역사교육 신약성서
역사교육의 이해
정선영, 김한종, 양호환 외 지음 / 삼지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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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구약성서라 칭해지던 '역사교육의 이론과 방법'을 같이 본다면 매우 효율적인 책이다. 이 책과 함께 서로 상호보완하는 효과를 보이며, 나름대로 쉽게 소개되고 있어서 처음 역사교과론을 접하는 이에게는 다가설 수 있는 여지를 훨씬 더 많이 준다.

내용상의 특징에서 보자면 각각의 이론들의 소개에서 외국사례를 중심으로 하기 보다는 현장에서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짤막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활용도가 약간은 높다. 이와 함께 흔히 글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집어넣는 외국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보다는 현장에서의 목소리와 쉬운 사례 설명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역사교과의 수업모형이다. 체계적인 소개가 '역사교육의 이론과 방법'보다는 휠씬 이해도가 높다. 아울러서 삐아제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 인지이론과 역사 인식에 대한 세밀한 비교부분은 향후 발전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함께 한국역사교육의 변천사도 정리하고 있어서 한권의 개론서로서 충분하다란 평가를 들을만 하다.

단점이라면 한권안에 여러가지 내용을 다 집어넣다 보니, 아무래도 짤막한 소개로 그치고 마는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한단 점이다.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연계와 비교 부분처럼 너무 짦은 설명때문에 곤란하다란 점도 있고,새로운 이론과 견해를 담아내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소개에 그치는 경향도 있어서 개론서로서만 받아들여야 한단 점도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교수학습이론과 교육공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최근 발간된 '우리아이들에게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것인가'를 참조해보아야 한다. 특히나 이 책이 중요성을 띄는 이유중의 하나는 역사교과의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교과교재로서 하나의 정례화된 문구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단 점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이론과 방법' 책이나 이 책이나 모두 특정학교 출신들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심지어 임용시험의 출제위원들도 이 학맥으로 이어져 있기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교과 교육론의 구성에서 좀더 다양한 논박이 필요하단 면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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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다시 역사를 고민하게 만든 책: 아프리카

내가 처음 영어사전을 구입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본 단어는 "섹스sex"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중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막내 삼촌이 직접 서점에 데려가 골라 준 사전이 "혼비영영한사전"이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해야 한다는 다짐 끝에 골라준 사전이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범문사에서 나오던 이 사전은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모양이다. "영한사전"도 아닌 "영영한사전"이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하던 나에게 과연 적절한 사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단어를 영어로 우선 풀이한 뒤, 다시 한국어로 풀이하는 형태의 이 사전은 내게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해 접근하는 경로를 열어준 첫 열쇠였다. 상식을 넓히는 방법은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건 사물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걸 의미한다.

호기심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어서 뭔가 새로운 단어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로부터 무수히 많은 궁금증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백과사전을 클릭해서 하나의 사건을 살피면 최소한 3개 이상의 링크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 파악하는 과정이 단지 그 하나의 대상만으로는 불가능한 것과 같다. 영어사전에서 '블랙black'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대개 '검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black'은 '음산한, 침울한, 화가 난, 험악한, 심사가 고약한, 사악한, 죄악으로 더럽혀진' 등등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black'은 접두사로 사용되거나 관용적 용례까지 살피더라도 'black'이란 단어가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찾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화이트white' 의 의미는 '희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결백한, 순진한, 오점이 없는, 악의가 없는, 정직한, 공정한, 훌륭한' 등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 같은 이는 "화이트와 블랙은 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선(善)과 악(惡), 희망과 절망의 상징이었다."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검은 대륙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고, 우리가 그곳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에서 검다. 우리 말을 우리는 국어라 말한다. 우리 역사를 국사라 말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협소한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한 증빙이다. 우리는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를 배운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 개념으로 외국어, 세계사가 있다고 말해야 옳다. 국어와 국사란 말에는 이미 학문적 객관성을 상실하고 들어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바꿔 미국이란 나라가 자기들 기준으로 태평양을 서해로, 대서양을 동해로 표기하겠다고 나선다면 분명 우리는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도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가 있다. 그리고 태평양도 있고, 대서양도 있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개념은 바다를 육지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협소한 개념이다. 우리의 바다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가 바뀌어가는 싸움에 우리가 밀리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우리의 세계 인식이 그만큼 협소한 탓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계화를 부르짖은지 햇수로는 어느새 10년여가 넘어간다. 어떤 이들은 그때의 해프닝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화가 국제화, 지구화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은 당시의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영문 표기를 들어 개념도 미처 세우지 못했던 세계화를 다른 개념들과 차별화하려고 시도했었다. 어쨌든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개념을 끝끝내 정의하지 못하고 IMF사태를 불러들였다. 오늘날 우리들도 세계화를 국제화나 지구화와는 조금 다른 무엇이지만 하여튼간에 잘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굳이 이 개념들에 차별을 두자면 세계화란 말에는 "우리가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세계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어찌되었든 "세계화"란 단어가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살아남아 성공리에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고, 유학생은 물론 단순한 여행목적의 해외방문도 흔해졌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아직도 멀고 낯설다. 롤랜드 올리버(Roland Anthony Oliver)의 책 "아프리카"는 부제로 "500만 년의 역사와 문화"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원저서명은 "The African Experience"다. 'experience'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험(經驗)'이란 말로 체험보다는 간접적, 이지적인 인식의 함축성을 지닌다로 정의되고 있다. 지은이는 런던대학 아프리카사학과 명예교수로 아프리카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이력 중 이채로운 것은 그가 1948년 당시로서는 최초로 오리엔트, 아프리카사학과 교수에 임명되었다는 것인데, 이 말만 듣고 생각하기엔 1948년 이전엔 유럽, 영국에서는 아프리카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롤랜드 올리버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아프리카의 경험"은 그가 런던대학 교수에서 은퇴한 뒤 4년 동안 아프리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사로서 집필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 한 권에 아프리카 500만년의 역사를 담는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쓰였다는 걸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쉽게 쓸 수 있다는 건, 대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아프리카를 많이 공부하고, 많이 알고 있다는데는 동의할 수 있어도 과연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 책은 모두 21장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 중 역자 서문에도 등장하고 있듯 제20장의 제목은 '완전노출(full exposure)'이다. 이  책의 기본적 관점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발견해 들어가는 혹은 "아프리카가 서구세계에 등장하는 과정으로서" 의 아프리카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구태여 이런 시각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서 그네들의 역사 인식 혹은 이 책의 저자인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시각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예를 들어 이런 부분만큼은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이 책의 '제10장 주인과 노예'편에서 악명높은 노예무역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들거나 책임을 외면하려 드는 인상을 준다.

대서양 해안에서조차 노예무역은 별로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그 무역이 17, 18세기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느냐하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한 짧은 대답은 그것이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대서양 무역이 절정기에 왔을 때에도 대부분의 노예는 전쟁포로 출신이었으며, 상황을 좌우했던 유럽인은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도처에서 이러한 전쟁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유럽인의 출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전쟁의 원인은 주로 현지 사정이라고 하며, 포로를 이송하는 해양무역이 없었더라도 이러한 전쟁은 역시 발생했을 것이라고 한다. <본문 193쪽>

아프리카에서 팔려나간 혹은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표현을 빌어 수출된(?) 노예의 수가 1,1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연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민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저런 방식의 기술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기술은 '나이지리아 내전(비아프라 전쟁)'에 대한 "무엇보다도 나이지리아 내전은 국가 기반 건설을 위한 사건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 나이지리아 전체의 단결이 크게 고양되었기 때문" 이라는 식의 기술에서도 엿보인다. 나이지리아 내전의 원인에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 지역에 있던 석유가 서구의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이해관계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뒤, 과거 백인정권과의 참회와 화해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 기적의 많은 부분은 넬슨 만델라의 성격에 돌려져야 할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남아연방국민들의, 흑인들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아니라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도 아니고, 넬슨 만델라의 성격이 원인이라니...

이 책에 대해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대륙에 관한 한 그의 모든 지식들을 이 한 권의 책에 품위 있고 이해하기 쉽게 압축한 것" 이라는 평가는 절반만 맞은 것이다. 원문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문장이 품위(refinement)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품위(dignity)가 있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지난 2일 MBC 백분토론에서 했다는 발언으로 뜨겁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일제시대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었고, 역사청산은 먼저 우리들 자신의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영훈 교수는 경제학부 교수지만 한국경제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해 한때 사회적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나는 앞서 국사, 국어란 표현이 학문적 객관성과 인식의 문제를 협소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훈 교수는 지난(2003년)해 8월 21일 임지현 교수 등이 주도하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 주최한 ‘국사 해체를 향하여’라는 이름의 공개토론회에서 '국사해체'론을 주장한 바 있다(이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담은 책이 "휴머니스트"에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란 제목으로 지난 2004년 3월에 출간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 "국사라는 이름 아래 닫혀진 다양한 (역사적) 측면들을 보는데 '국사'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런 뜻에서 내가 말하는 국사해체는 '역사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는 측면에 동의한 것이다. 재일동포인 이성시(와세다대) 교수는 "우리에게 국사는 은폐이며,억압이며,배제" 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를 열린 자세로 논의하자는 주장은 합당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것을 거칠게 보자면,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에 의해서 수행되었고, 일본의 식민지화 과정을 단순히 착취와 수탈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발전과 응전의 시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어느 시기이든 패배의 역사로만 바라보려는 시각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예를 들어 식민체험에 대해, 우리의 독립에 대해 어떤 이들은 우리의 독립이 자주적으로 성취되지 못하고,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패배적인 역사인식을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말을 붙이고 싶다. 우리는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였다가, 식민지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저항했고, 그 결과 세계 각국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자본주의의 맹아도 경험했고, 미숙하나마 자체적인 근대화의 추진도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주장대로 학문적인 맥락에서 수긍한다 할지라도 이런 주장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학문적 논의에서의 논리란 것은 주장하는 이의 손을 떠나 논리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갖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논리의 어느 일방만을 받아들여 꾸준히 밀고나간다면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한 일본 식민지 체험은 앞서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말대로 나이지리아 내전이 나이지리아의 국민 통합을 이룩하도록 해줬다는 식의 논리적 귀결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이영훈 교수는 방송에 나와 너무나 손쉽게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으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한국업소 주인들이 있고, 그 명단이 있으며 일제 징용 11만명의 한국인들 중에서 다수가 군위안소를 다녀왔는데 이들의 반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의 경제사적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주장이 일면의 작은 사실에만 주목하여 문제의 본말을 전도시켰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신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을 찾아보면 없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정신대피해할머니들 중 상당수의 증언은 초기에 그 진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안엔 그것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일인 줄 알고 나섰다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게다가 11만명이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에 동원된 동안 거기에 끌려나간 조선인 중에서 군위안소를 이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그런 일부의 문제로 정신대 문제가 자발적인 참여와 공창이란 식의 인식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그 누구도 처벌할 수가 없다. 5천만 겨레가 모두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벌 줄 수 있겠나? 그의 논리대로라면 5천만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총참회 의식이라도 열어야 하지 않는가?

최근 우리 학계 일각에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탈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나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학문의 영역에서 일탈하여 사회적 이슈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임지현 교수 등이 주도하는 "우리안의 파시즘" 논의가 '개인의 성찰' 이란 위치에 있을 때는 위험하지 않으나 이를 넘어 '사회의 성찰' 로 전이될 때, 지극히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듯 보이는 이런 논의들이 도리어 수구보수세력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반을 끌어내는 것,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야 한다. 이는 도덕적 근본주의 자체가 성찰을 타인에게 강제함으로써 파쇼화하고, 지적, 도덕적 폭력으로 진화해가는 내적 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H.카(Carr)의 고전적 명제 "역사란 무엇인가?"로 돌아가보자. 그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카는 19세기를 지배했던 랑케의 실증사학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자신의해석에 따라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정의해보자면, 역사란 단순히 현재와 과거의 대화가 아닌 현재의 역사가가 과거 사실과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란 것이다. 카는 근대역사학의 확립자인 랑케의 주장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 지상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를 비판하면서,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이기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 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오늘날 많은 대학에서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는 역사학의 고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난 1980년대 초 금서였다. 이 책이 금서였던 까닭은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인 E.H.카가 역사의 진보성을 주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는 말하길 "역사가는 과학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문제를 고뇌하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생을 살아가는 지도를 구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역사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그 근본 문제는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생의 문제로 고뇌하고, 현재의 역사로 고뇌하기 보다는 드높은 상아탑의 아카데믹한 논리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로서의 소명을 망각한 이들이 쓰는 역사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가 늘 정의롭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각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 길을 알려주는 것 또한 역사여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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