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죠 2004-12-16  

사진
우리가 떨어져 살 걸 알고 그랬는지, 그래서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자꾸만 지갑 속에 넣어준 당신의 증명사진을 들여다 보는 나. 잘 지내죠? 잘 지내요... 다가오는 봄에 다시 만나요. 안녕.
 
 
kimji 2004-12-16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라는 말에 흠짓 놀라고 말았다. 지난 번, 너를 마지막에 본 날에 내가 농담처럼 내년에나 보자고 했더니만, 그 말이 정말이 되는가보다. 올 해는 그렇다쳐도, 굳이 봄까지 왜 미뤄져야 하는가,를 나는 곰곰히 생각했더랬지. 음, 오즈마, 그랬구나. 그래서였구나.


나는 잘 지내. 요즘은 책을 부쩍 많이 읽고, 그러니까, 해야할 일을 다 하고나서야 밖에 나가 놀 수 있게 허락받아진 아이처럼,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어. 그래서 너무 빨리 읽히고, 너무 쉽게 흡수하게 되지만. 응, 난 잘 지내. 조금 게을러지고, 조금 살이 찌고, 조금 울증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가 있기도 하지만, 나는 대체로 잘 지내는 것 같아.

나는 아직도 앨범을 꺼내지도 못했는걸. 왜냐하면, 보고싶은 얼굴은 자꾸 들여다보면 더 보고싶어서 병 나거든. 차라리 안 보겠다고, 차라리 그러겠다고, 그렇게 이 악물면 마음이 조금 평온해 져. 나란 사람, 가끔 의미없이 모질고 독한 구석이 있어서, 요즘은 식구들도 안 그리울 정도야.

자꾸 다른 생각들을 해. 여행을 가는 생각이나, 책 속의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는 상상,

kimji 2004-12-16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에 해먹을 김치볶음밥에 스팸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따위들. 커튼을 빨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때목욕을 할까 말까 하는 생각들. 행동화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 나는 그걸 좀 즐기는 것 같아. 사실 정말 해야 할 일들은 버젓이 눈 앞에 쌓여 있는데도 말이야. 아무튼.


당신의 어조는 담담하지만, 어쩐지 기운이 없고, 또한 건조해 버석버석 곧 부서질 것 같다. 문장은 가끔 사람의 마음을 닮아내는 능력이 있기 마련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걱정이 앞선다. 무리하는 건 아닌지, 당신 마음에 생긴 저 큰 구멍은 대체 어떻게 메꿔야 하는 건지, 나는 왜 이렇게 멀리서 살게 되었는지, 하는 것들 말이야.

아무튼, 오즈마. 나는 잘 지내. 그러니, 너도 잘 지내야 한단 말이지. 다이어트 적당히 해. 건강 해치는 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야. 그니까, 적당히 했으면 좋겠어. 알았지?


여긴, 비가 왔다. 요즘 나는 조금 울적한 게 사실이야. 그냥, 해가 잘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다고, 요 며칠 흐린 날씨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어쩌면 스파게티를 못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아니, 어쩌면 무교동 낙지를 못 먹어서인지도.

kimji 2004-12-16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무교동 낙지를 먹자.


보고 싶은 오즈마야. 지갑 속의 사진은 얼른 다른 곳에 숨겨 두어라. 그게 좋은 방법이야. 차마 버리지 못하는 건 숨겨놓는 것도 괜찮은 방법. 내가 아직 옛집에서 담아온 상자를 펼치지 못한 것처럼 말이지.


맥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사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 갑자기 나도 맥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게지). 아직 서너 잔 정도가 남아있다. 오늘 읽어야 할 책을 내일로 미루게 되겠지만, 아직은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시기여서 나는 좋구나. 너도, 너의 유예기간만큼은 충분히 즐기고, 누리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