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그인 2004-09-14  

같은시간에 방명록을..
‘먼 길이 그를 규정한다.미친 세월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억새 무늬에 밀려 여기까지 왔어도 여전히 먼 길,혼자서는 갈 수 없어서 누군가 잡아주길 기다리며 남겨둔 그의 빈손은 아직도 텅 비어 허공만 움켜쥐고 혼자서는 갈 수 없어서 동행 찾아 헤맨 발걸음이 그를 이끌어 올 데까지 왔어도 여전히 먼 길 혼자서는 갈 수 없어서 결국 혼자 가는 먼 길이 그를 규정한다.먼 길은 그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다.’

오랜만에 뵈어요,정말 그렇지요.우연찮게도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위의 구절을 발견했어요.시구절 같기도 하고,소설의 어느 문장 같기도 한데,통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어쨋든 먼 길과 존재증명 두 단어 만으로도 이곳이 생각나더군요.그래서 들렀는데,거짓말같이 먼 길을 떠나시게 되었네요.(지금 막 밀린 페이퍼를 읽고서,알았습니다.)

여름에 선운사에 다녀왔었어요.하루쯤은 묵고 천천히 암자에까지 올라가보고 싶었으나 동행이 있어 그러질 못했어요.근데 선운사는 참으로 좋더군요.벚꽃과 동백을 보기엔 너무 많이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여름의 선운사는 또 여름대로 멋이 있었습니다.정말 시원하고 청아했었죠.윤대녕의 족적들을 따라 전국을 기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끔 들어요.실제로 제 여행길은 정말로 그러합니다.그것만으로도 많은 빚을 졌죠.

이건 정말 넘겨짚기입니다만,혹시나 이번 여행길에 조금이나마 윤대녕과 관련은 없을까,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kimji 2004-09-1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저는 선운사와 연이 잘 닿지를 못했습니다. 가까이, 근처까지 갔던 일은 종종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곳은 연이 안 닿았습니다. 그럴때마다 그렇게 주억거렸다죠. 동백이 피지 않은 계절에는 오지 않겠다,고. 핑계만 좋은 핑계를 주억거리곤 했었죠. 여름의 선운사였다면, 상사화를 보셨겠군요. 상사화 군락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었는데 말이지요. 사진으로만 보았던 저는 그저 그 황홀한 풍경에 넋을 놓고만 있었다죠. 그래서 동백이 피는 계절이 아니면 상사화 피는 계절에는 꼭 가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아직도 그 곳은 제게 먼 곳입니다.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면서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게다, 실제의 만남이 없는 분에게, 이런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분들에게 말이지요. 물론 저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제게 님은 '윤대녕'과 '바둑'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되었죠. 언제였던가, 님이 올리는 페이퍼에서 바둑 이야기를 읽고서 지인에게 바둑 보는 걸 알려달라고 괜한 떼를 쓰기도 했다죠. 보면 알게 된다는 답변을 듣고 혼자 무색해졌던 날도 있었군요. 기억은 때론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kimji 2004-09-1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그 기억이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 소통의 길목을 원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니까요.

이상하게 디딘 길들이 윤대녕의 소설들과 매치가 되곤 했지만, 기실 따지면 작가를 의식한 발걸음은 없었더랬어요. 그래서 훗날 돌아와 되돌아보았을 때 더욱 놀라곤 했던 터였죠. 사실, 그 사실을 인지시켜 준 건 바로 님이었구요. 그래서 님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윤대녕과 늘 함께 매치되곤 했습니다.
이번 여행도, 물론, 윤대녕을 의식한 길은 아닐겝니다. 혹여, 또 모르겠습니다, 돌아와 되돌아생각할때 윤대녕의 소설과 매치되는 걸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죠. 모르겠습니다, 낯선 곳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한 여자, 혹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될지. 혹은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스스로와 조우하게 될는지도요.

아무튼, 감사해요. 인용해주신 글도 오래 기억에 남도록 많이 읽어두겠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에요.

참 희한한 우연이에요. 같은 시간대에 서로의 방명록에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니 말이죠. 그래요, 님. 이 가을에는 이런 우연들이,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살이의 작은 기쁨이 된다는, 소박한 마음을 읽을

kimji 2004-09-1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 있기를 기원할게요. 더불어 님이 건강과 평안을요. 언제나 님에게 띄우는 글은 이리 길어지게 됩니다. 수다스럽다고 나무라지 마시길요-
가을, 좋은 계절, 잘 여무시길, 충만하시길 기원할게요.
고마워요, 님.

비로그인 2004-09-14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사화 군락은 아쉽게도 보질 못했습니다.대신에 상사화는 봤었구요.군락을 보려면 암자까지 올라가야 되는데,시간이 허락하질 않았어요.사실 그래서 많이 아쉬웠습니다.혼자간 여행길이었다면 분명 천천히 기억속에 저장해두었을 텐데요.그런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에,다음에 또 한 번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거겠지요.저도 동백이 필때쯤에 고즈넉히 혼자서 한 번 다녀오고 싶습니다.사실 말처럼 그렇게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요.언제고 홀연히 (윤대녕이 자주 쓰는 단어중에 이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갈 일이 생기겠지요.

때론 뵙지않아서 오히려 더 좋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소통의 방법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되고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아무래도 가교역할은 역시나 윤대녕이었던 것 같습니다.괜히 더 반갑고 친근했었던 같아요.

바둑은 사실 인생의 축소판,소우주 란 말들을 많이 하지만 바둑의 돌이 바둑판에 놓이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미학이 됩니다.일본의 오다케9단같은 기사는 바둑의 미를 중요시하게 생각해 그가 놓는 바둑돌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대체로 일본바둑이 모양바둑을 중요시해 바둑돌들이 놓여져있는 걸 보면,이쁩니다.

비로그인 2004-09-1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그런 우연적인 만남들이 참 많았지요.혹여라도 그 여행길에 윤대녕작가와 조우하게 될지도.(저는 가끔 뜬금없는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긴여행을 준비하시는 속내야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훨씬 가볍게 돌아오시기를 기원드려요.이국에서의 감흥은 또다른 어떤 것을 주겠지요.긴 여행길,건강하게,무사히 다녀오시기를 기원드립니다.오랜만에 만나자마자 또 어디로 가신다니,서운하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시리라 생각합니다.저도 정말 반가웠어요.

kimji 2004-09-14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 일이 생기겠지요. 네, 저도 그 말을 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래요, 갈 일이 생길겝니다.

윤대녕은 그러므로 참 고마운 작가에요. 님과의 만남을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저 역시 더 반갑고 친근했더랬죠. 바둑은, 읽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방법을 조금 진지하게 찾을까 생각중입니다. 역시나 님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가지게 된 관심입니다. 윤대녕의 가교역할이 이렇게까지 발전을 시켰군요. 바둑판의 돌을 통한 하나의 미학으로 읽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니, 그 시간을 통한 깊이에의 문제겠지요. 아무튼, 제게 바둑은 그렇게 알고 싶은 세계가 되었습니다. 관심을 만들어주신 것에도 저는 감사한 마음인걸요.

아무튼, 그래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다녀오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까지의 시간이 걸릴 듯 싶어서요. 님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리고 또 뵈요, 님.

(타국에서 윤대녕과의 조우는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