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연필 2003-12-18  

시원한 눈맛에 감사
마곡사에 하얀 발자국 찍는 기분이 어떠하셨을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사진까지 찍어 보여주시니 조용히 들러 가기엔 미안스럽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한참이고 쳐다보았습니다. 책장에 꽂힌 이호신의 책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를 꺼내어 그려진 마곡사 전경을 새삼 훑어보았지요. 저도 나름대론 보헤미안 기질이 있어서 발바닥이 안달합니다.

정이현 소설집 리뷰 참 잘 보았습니다. 근래에 읽은 리뷰 중 가장 맛났습니다. 이번호 '문학과사회'를 보니 주례사 평론가 우찬제가 엄청시리 긴 정이현론을 장황하게 썼더라구요. 하릴없이 들뢰즈 가따리와 에릭 홉스 봄을 막 갖다 붙이는데, 읽으면서 '이건 문자 폭력이다'는 생각이 들 정도... 문학성을 상실한 그 장황한 글에 내용의 여하를 떠나서 짜증이 났었지요. 저 혼자만의 바람이지만, 소설평은 소설처럼 재밌었으면...

이런 소설집에는 님이 제대로 비유하셨듯, '싱글즈'나 '바람난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는 게 착착 읽히고 이해되죠. 그리고 역시 제가 여성(여자)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사실 제가 여작가들의 소설을 거의 읽지 못했거든요. 뿌리 깊은 마초 기질 때문(?)인지 잘 안 읽히더군요. 정이현 소설은 가독성이라는 그 재능 덕분에 훌훌 읽었고, 때문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역시 혼란스럽기만 하더라구요. 헐... 요본에 님의 리뷰를 보고 리뷰 안 쓰길 천만 잘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휴~

제가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하고는 '여주인공 1인칭 시점'의 책들을 읽어봐야지... 생각 중입니다. 벌써 두려워집니다. 왜냐면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는 데에도 힘겨웠거든요;; 가슴이 콕콕 찔리는 것 같아서.

님은 안 읽어본 여작가가 없으신 듯. 앞으로 여작가들의 작품 읽을 때 간간이 귀동냥 구하려 조르곤 하겠습니다. 매번 좋은 음악 선물을 주셨는데 저는 텁텁한 글줄만 남기고 가 조금은 미안하네요.
 
 
kimji 2003-12-1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오정희 작가의 글도 퍽이나 좋아하는 편입니다. 박완서 작가(나이 때문인지, 어쩐지 그냥 박완서,라고 말하기에는 좀 뭣한 기분이;;)의 글은 다소간 너무 친절한 부분이 걸리긴 하지만, 최근작인 소설일수록 참 좋게 읽은 기억입니다. 오정희 작가의 글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매번 힘겹게 읽지만, 창작의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에 숙연한 마음마저 들기도 하는 소설들이죠. 올 해 수능에 오정희 작가의 글이 출제되었는데, 왜 그리 기뻤는지 모를일입니다. ^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은 꽤 많습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작가도 없는 편이죠. 제가 좀 그렇습니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말이죠. 한강이나 조경란의 이름도 떠오르는군요. '레고로 만든 집'의 윤성희도, '바늘'의 천운영도 좋습니다. 다만 저와같은 편독쟁이는 그녀들의 소설에 너무 매몰된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는 오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지금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서사부재, 이미지로의 승부,인 소설들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소설읽기의 눈이 조금 꼬부장해졌다고 할까요.

kimji 2003-12-1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곡사는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도착한 절이었습니다. 이른 시간도 아니었지만 아침 나절에 만나는 눈이 쌓인 절은, 한겨울의 절은 참 묘한 맛이 느껴지는 곳이죠. 사진은, 아마, 극락교,위에서 찍은 사진일 겁니다. 극락교,라... 간간히 눈이 내렸고, 쌓이 눈 위에 또 눈이 내려앉고, 그랬답니다.

정이현의 리뷰를 쓸 때 저는 약간 머뭇거렸더랬습니다. 님의 마이페이퍼에 길게 적혀 있는 글을 먼저 보았거든요. 리뷰를 쓰실려나... 그럼 님의 달필에 나는 창피할 것인데. ^ ^; 이런 생각을 했더랬거든요. 여하튼, 그래도 쓰긴 썼는데, 리뷰,라는게 쓸 때는 재미있게 쓰는데, 웹에 올려진 걸 다시 읽으면 오타도 많고(이번엔 유독 많더이다;;) 창피하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읽어주셨다니 감사한 마음^ ^
여성작가라... 따지면 저는 너무 많이 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만이겠지만,, 그것이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오히려 저는 그래서 굵직한 남성적인 글들에 대해서는 조금 힘겨워하기도 하고요. 저는 편독쟁이 입니다. 처음으로 국내 현대문학을 접하기 시작한 것도 여성작가부터였고, 그들의 1인칭 시점이 저는 참 매력적이게 느껴지곤 했었고요

kimji 2003-12-1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편독은 여성작가들, 그리고 국내작가들의 소설에 국한되어 있으니, 우물은 좁고, 그 우물로 바라보는 하늘도 또한 좁으니, 저는 사팔뜨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우물밖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안다,라고 말하면서 조금씩은 채찍질하지만, 게으름은 또 이 우물을 벗어날 생각을 미처 못하고, 계속 웅크리기도 하고요. 악순환. 뭐 그렇다는 겁니다. (참, 수다스럽군요, 저란 인간^ ^: )
저는 님이 남겨주시는 '텁텁한 글'이 참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 있죠. 그냥 듣게만 하도록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를 말하게 만드는 사람. 님은 확실히 후자에 강한 편인듯 합니다. 늘 이렇게 수다스럽게 만들어주시니 말이죠.
인사, 감사해요. 눈 사진이 제대로 발송되어서, 그것만으로도 기쁜데. ^ ^
p.s.정이현 소설은 정말 끝내주는 가독성이죠. 그런 소설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물론,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조금 복잡해지게 만들던 소설이었음은 분명하다는. 리뷰 쓰세요, 기대할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