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개정증보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직히 시를 이해하는 건 아직도 어렵다. 20년전에 내가 처음으로 산 시집은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란 시집이었고, 그 시집은
내 온 마음을 사로잡았다. 생각컨대 그 때 대학 신입생에, 시국이 한참 시끄러웠을 때였고,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내게 그 책은 아주 적절한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갓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으니까...
<홀로 서기>는 정말 그 당시의 나에겐 절실한 문제였으며 무척 현실로 다가왔기에 아주 많은 위로가 되었고, 학생수첩의 빈 공간들은
많은 시 구절로 채워졌었다.
 
20대때에 <홀로서기>를 가슴에 넣어두고 살았던 내게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읽어보라고 누군가 권했더라면 어쩌면 이해를 하지 못
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40대가 되어 애들도 키워보고, 건강도 잃는 큰 사고를 겪고 보니 이 책에 나온 시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시, 나에게 보내는 시, 시인에게 보내는 시, 한국인에게 보내는 시, 하나님에게 보내는 시.

<1.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 을 읽으면서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꼈었던 신기하면서도 힘들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추억을 되새길수 있어서 참 좋았다.
 
<2. 혼자 읽는 자서전>에서 내 맘에 확 와 닿는 시 한편이 있었다.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
 
정말 그럴 때가 있었다.
20대때도 있었고, 30대때도 있었고, 40대때도 있었다.
내가 죽기 전까진 이럴 때가 더 있을텐데, 나 뿐이 아니라 시인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때가 있었을거란 생각을 하니 더 없는 위로가 된다.
 
<3. 시인의 사계절>에서 식물인간이란 시가 나왔다.
식물인간...
식물인간이라는 단어 자체는 내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 또한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한 달 반의 시간동안 나는, 우리 가족은 어떤 맘으로 살았을까?
서 너달이 지나 그래도 조금은 사람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날, 어린 두 애들이 찾아왔었다.
딸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날 보고 인사도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 때 나타난 내가 엄마가 아닌 줄 알았단다.
엄마를 데리고 온다고 했던 아빠가 이상한 아줌마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해서 아는 체를 하지 않은 거라고 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무얼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중얼거린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또 울고 있다고 했다.
나만, 내 주변만 무사하면 괜찮다고 하는데, 실제는 그 중에 누군가는 울고 있단다.
나만, 내 주변만 돌아보지 말고 좀 더 넓은 맘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시인의 바램이었을까?
 
<4. 내일은 없어도> - 한국인에게
개인적으로 제일 맘에 드는 시가 많기도 하고, 전혀 시란 느낌이 들지 않는 시도 있어서 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 준 단원이었다.
특히 <반대말놀이>란 시에 나오는 많은 반대말들은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힘들어하는 날 웃겨주려고 가르쳐줬었던 반대말들이다.
그 때를 기억하며 읽었더니 내가 실실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일이 안 보이더라도 힘을 내 보라고 날 채찍질하는 느낌?!
 
<5. 포도밭에서 일할 때> - 하나님에게
이 부분에 이 시집의 제목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가 들어 있다.
무신론자였지만 이미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 두 편으로 시인은 더 이상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세 번을 꼼꼼하게 반복해서 읽었는데, 여전히 시는 내게 참 어렵다.
내 나이가 시인의 나이가 되어 삶에 연륜이 묻어나게 되면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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