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노동 - 꼭꼭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
은수미 지음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노동. 사실 별 관심 없었다.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나 역시도 내 일이 바빴다. 내 앞가림 하느라 다른 사람의 노동에 신경 쓸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노동하면 생각나는 것은 그저 막노동’, ‘노가다라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사실 대학생인 나는 지금까지도 노동에 대해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교육과정을 밟아 온 사람이라면 아마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교육과정에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노동에 대해 배우지 않은 이유는 뭘까? 선생들은 학생에게 중립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이러한 이야기는 자칫 잘못 들으면 한 쪽으로 기울어져 보여서 일까? 요즘도 여전히 '노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노동권','사회주의','데모'를 생각하는 사람들, 노동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진보’ ‘좌파’, ‘좌빨이라고 이름 붙이고 색깔론의 틀에 맞춰 비난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매일매일 노동을 하며 살아가지만, '노동'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는 별로 없었던 듯 싶다.

 

 그러던 내가 노동에 관심 갖게 되었던 이유는 쌍용 자동차 사건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얼마 전 시청 근처에서 본 쌍용 자동차 분향소의 선명한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리 화나게 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이렇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까 싶었다. 뉴스나 신문에서 접한 '쌍용 자동차 사건' 얘기 보다 그 분향소의 이미지는 선명했고, 향을 피우는 냄새에 내 코는 찌릿 했고, 내 눈은 매워서였는지, 안쓰러워서였는지는 조금 빨개져 있었다.

 비단 쌍용 자동차 뿐만은 아니리라. 그 이후로 갖게 된 관심, ‘노동’, 노동과 관련된 많은 책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날아라 노동이라는 이 책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권을 존중 받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것과 맞물려 실제로 노동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장에서 있어 본 경험이 더욱 '노동'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내가 뉴스와 신문에서 접했던 쌍용 자동차 사건와 실제로 보았던 그 분향소의 느낌의 차이처럼, 책으로 보는 느낌과 직접적인 현장에서 지켜 본 느낌의 차이는 컸다.

 

병원의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면 서비스 품질 개선만큼이나 고용의 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사용자를 제자리에 앉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노동권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살펴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에게도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 (p,103)

 

 나는 요즘 병원에서 실습을 하는 간호학과 학생이다. 간호사 일이 힘들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생각보다 업무강도는 심했다. 연장근무는 물론 이거니와, 한 사람 당 간호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 일이 끝나면 다들 녹초가 된다. 일하는 시간 동안 거의 단 한 순간도 앉아 있지도 못하고, 밥은 10분 만에 먹고 해 치우기 일 수였다.

 병원에서는 고용의 질을 개선하려하기 보다는 더 많은 수를 뽑아서 나가면 대체하고, 나가면 대체하는 식이다. 그렇게 다들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다 보니, 경력 있는 간호사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양질의 의료서비스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실습 하면서 느낀 것은, 의사든, 간호사든, 간호조무사든,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노동권이 많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곳도 아마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역시 야근을 자주 하셨고, 우리 어머니는 역시 그랬으니까..

 

 노동문제를 생존권문제로 좁혀 온 것은 잘못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노동권을 생존권의 테두리에만 가두는 것은 중대한 오류다. 노동권을 생존권으로 바라보면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먹고 살 만하게 해 줄 테니 노동권을 포기해라고 말할 수 있고, 고임금 노동자에게는 먹고살 만한데, 왜 파업이냐?”라고 말할 수 있다. (p.65)

 

 어떤 사람들은 적성이 어떻든 간에, 대우가 어쨌든 간에, 오로지 취업이 잘 된다는 기준으로 전공을 선택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 일에 대한 적성과, 그 이의 노동권보다, 어떤 일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권을 생존권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노동 환경의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좋지 않은 노동 환경에서 일 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갈 것이다. 만약 노동권을 먹고 살기 위한 생존권으로 노동권을 폄하해 버리면 경쟁력이나 효율성 앞에서 노동권은 사라지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마저 흔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 스스로가 스펙 쌓는 것 이상으로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조합 가입이나 유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비중이 늘어나면 최저임금과 근로기준 준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관행으로 정착되는 것도 쉬워진다. (p.158)

 

일을 해도 가난한 이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답은 어찌 보면 분명하다. 저임금-실직-근로 빈곤의 악순환을 깨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여 시민이면 시민답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존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적어도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p.192)

 

 역시 뻔한 이야기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심이다. 우리가 노동권을 생존권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야한다. ‘노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보다, '노동'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당연한 권리인 노동권을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해야 한다. 사회적인 제도 역시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보편적 복지, 행복할 수 있는 권리 역시 현실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도 바뀌여야 할 사회적 제도들은 너무 많다. 하지만, 항상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또한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현실의 벽이 높을지라도, 우리는 계속 꿈을 꾸어야만 한다.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고, 모든 이가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사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노동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서서히 변화 시켜가야 할 것이다.
과연 노동은 날 수 있냐고? 날 수 있다.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노동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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