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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발견 -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누드클럽
윤용인 지음, 양시호 그림 / 글항아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재밌는 책이다. '통쾌하고 짜릿한 글'이라는 이 책에 대한 시인 안도현의 평은 솔직히 잘 와닿지 않았지만, 중년의 남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직 중년이 되지 않아서 일까. 결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난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생활은 다른 거 아냐', '저자가 스스로를 너무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온갖 인간군상이 한데 찌끄러져 모여있는 지하철 2호선의 출퇴근길에서, '공간이 부족한데 피해를 주면서 책을 읽고 있는 당신 같은 인간 때문에 통일이 안된다'는 식의 눈치를 주는 몇몇 직장인들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꿋꿋이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책 전반을 흐르는 유쾌하고 진솔한 이야기 때문이다.
유쾌함과 진솔함.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딴지일보 기자 출신답게 저자는 톡톡 튀는 말투로 '어른'에 대한 많은 편견들에 딴죽을 건다. 어른은 좀 참을 줄 알아야 한다, 눈물을 보이지 마라, 근엄해야 한다... 등과 같은 기존의 인식에 대해, 어른은 자신의 욕망을 잘 알아야 한다, 중년은 눈물과 함께 시작된다, 엄마의 품이 그립다면 곰인형이라도 껴안고 자라, 감정에 솔직해져라 등등 세세한 이야기를 통해 어른에 대한 기존의 인식체계에 조금씩 구멍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문장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새롭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중년의 남성들도 부엌에 드나들자고 노래했던 김국환의 노래('접시를 깨자')에서부터 지금 유행하고 있는 Mness족이라는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에 대한 혹은 남자 어른들에 대한 재해석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진솔한 이야기로 중년의 어른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이 책의 매력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중첩되고 나열되어 있어, '어른을 발견했다'는 저자의 외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오랜 사회화 과정을 통한 '체면' 문화 속에서 '자신'을 숨겨오던 중년의 남성들에게 딴지를 걸며 동심원을 그려나가는 작은 파장. 이 정도면 말이 될까.
'딴지'(딴지일보 말고)의 문제의식은 항상 'why'다. 안구건조증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 중년의 남성들에게 눈물과 곰인형을 선사하며('마흔 넘은 사내에게도 곰인형이 필요하다'), 기계적인 어른들의 '어른스러운' 독서행태를 지적하고("지하철에서 만화를 읽는 어른은 경제서, 처세서, 증권책을 보는 어른보다 멋스럽다"), 남의 눈에 낀 티끌은 보면서 내 눈에 낀 들보를 보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너도 환자'라고 외치는 것은 바로 이 '왜요 귀신'이 강림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흔의 남성들이 겪는 결혼, 육아, 사회 생활, 대인관계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뿐만 아니라 고개까지 끄덕이게 만든다.
딴지일보의 기자로 일했던 저자의 이력, 그 속에서의 경험으로 딴지관광청까지 만들고, 노매드라는 여행 컴퍼니까지 차린 사람. 직장을 일종의 놀이터쯤으로 생각하는 이 책의 저자, 윤용인이 발견한 어른은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제대로 놀줄 아는 어른. 자기 속에 있는 동심을 끄집어 낼 줄 아는 어른. 청춘의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사랑을 주고 받을 줄 아는 어른. 사랑 뿐만 아니라, 분노도 주고 받을 줄 아는 어른. 지하철에서 경제서, 처세서, 증권책 보다 만화책을 읽을 줄 아는 어른, 인생 3막(30대)의 연기를 접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4막의 연기를 펼칠 줄 아는 어른...
그런 대단치도 않은 이런 유형의 어른이 우리 사회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이런 당혹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며 마흔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어른들에게 저자는 위로의 말을 잊지 않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예수.그 예수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는 마흔의 당신. 멋지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빛을 발한다.
* 별 하나를 깎으려다 말은 이유: 블로그에 써놓은 글을 묶어놓은 듯한 이 책에서 '정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공들여 쓴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만일 내 짐작이 맞았다면, 그런 글들을 한 데 묶어 '발견' 테마로 분류한 저자 혹은 출판사의 편집능력에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이다. 그런 노력 때문에 쉽게 별을 깎을 수가 없었다. 하기사 내가 별을 몇 개를 주든 그게 무슨 공신력을 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