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 피귀르 미틱 총서 8
자크 아순 책임편집, 고광식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태초에 아담과 하와의 자식은 둘이 있었다. 아벨과 카인.

어떻게 보면, 아벨은 아무런 이유없이 야훼의 신임을 받아 이쁨을 받던 재수없는 애였고, 카인은 아무 이유없이 정성스럽게 바친 제물을 거부당한 소외받는 애였다. 아벨이 양의 피를 바쳤다면, 카인은 곡물을 바쳤을 것이다. 그래, 야훼는 육식주의자였나보다..

헤브라이즘이 유목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나서야 기록된 물론 이, 기록의 시점을 정확히 따지려면 문헌학적 검증이 있어야겠지만) 창세기 신화에서는 당연히 기독교도들의 역사적 전통을 강화시키기 위해 '아벨'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이유야 어쨌든, '카인'은 야훼의 마음에서 버림받았다. 이것은 카인의 살인 동기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아벨을 왜 죽였냐고? 야훼를 놓고 카인은 아벨을 '질투'한 거다. 그렇게 보면, 태초에는 로고스(말씀) 뿐만이 아니라, 살인도 있었고, 질투도 있었다. 질투로 인한 살인.

창세기 기록자는 이 최초의 살인사건을 인간성이 사회성으로 거듭나면서 드러난 첫번째 양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성경을 보면, 카인이 추방되고 나서 아담과 하와는 '셋'을 낳았는데 셋의 후예 가운데 '에노스'라는 애가 있다. 얘는 카인의 장자 '에녹(카인은 자신이 세운 도시의 이름을 '에녹'이라 불렀다)'과 이름이 비슷한데, 근거는 없지만 에노스와 상징하는 바가 비슷한 것 같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에노스는 'man'이라는 뜻이라는데 에녹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이건 모르겠고. 어쨌든 특이한 건. 창세기 기자는 카인의 후손을 먼저 기술하는데, 카인의 아들 에녹, 그리고 막 지나가다가 에녹의 자손 가운데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양치기였고, 그 동생 '유발'은 악기를 다루던 음악가였으며, 에녹의 5대 손 라멕은 실라라는 아내와 합체, '두발카인'이라는 대장장이를 낳았다. 이게 창세기 4장 17절에서 22절까지의 내용이다. 그 뒤에 5장 이하로는 다시금 아담의 계보를 진술하는데, 여기서는 카인의 후예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쭈욱 그 이름들을 서술하는데 그들의 직업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5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500세에 낳는다. 물론, 신(엘로힘)은 노아만 마음에 들어해서 노아의 후예들만을 살린다고 기자는 전한다. 

창세기 기자는 왜 이 지루한 족보 열거를 통해 도시 문명의 상징을 카인의 후예 '에녹'으로, 문화예술(음악가)과 철강산업(대장장이)의 모태를 유발과 두발카인으로 표현한 것일까. 물론, 야발이라는 유목적 직업을 가진 후손도 있었지만, 이 셋에 비하면 그 비중이 감소되는 편이기도 하고, 그 이유가 내 의도하는 바에 맞지 않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창세기 4장 이하를 보면, 인류의 문화 형성에 기여한 최초의 사람들은 모두 카인의 후예다.  

그렇다면, 무언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인류 문명의 형성에는 '살인'과 '질투'가 전제되어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건 아닐까. 카인이 자신의 죄를 느끼고 고향을 떠나 에녹이라는 도시문명을 건설했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생겼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게 아닐까. 그 잘난 기독교 창조신화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카인의 후예들이 인류 문명을 건설했다는 사실은, 질투의 대상이 되는 타자의 존재를 개인 역사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사회성에서 발견한 창세기 기자의 목청높힌 이야기는 아닐런지. 존재-삭제(혹은 말소)의 충동은 타자를 향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우리가 '유서깊은 살인자 혈통의 후예'라고 말을 했던 것인가.

하지만, 이런 류의, 문헌적 근거에 토대하지 않은 이런 상상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상상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곳은 바로 문헌학적 공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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