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독백 - 서경희 소설집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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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섯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밟히고 또 밟혀도 비 한 번 내리고 나면 다시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버섯

살기 위해 화려해지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버섯

이 책을 펴기 전 꼭 책소개 글이나 책장의 맨 끝에 있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보길 추천한다. 제대로 소설

을 이해하기 위함이랄까?

단편소설 8편을 묶여 펴낸 <밤의 독백>은 각 편마다 색다른 느낌을 준다.

현실이라는 괴물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가 괴물이 된 자들의 이야기. 현대인들이 고독과 소통 부재를 주제로 다룬 8편의 단편소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오히려 재미있게 본 책이다.

서경희 작가님의 소설은 이전에도 두세편 정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인상 깊게 본 소설은 한 편정도밖에 안되더라. 개인적인 취향에는 좀 어긋나긴 했으나 편독하기 싫어서 나름 열심히 읽었다.

이번까지 작가님의 소설을 4권정도 보니 작가의 특색이 어떤지 파악이 된다.

주로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맞서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도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였는데, 판타지 요소가 섞인 것보다는 현실적인 내용이 좀 더 좋아서 작가님 책 중 그나마 <수박 맛 좋아>가 가장 인상깊었다.



아줌마 내 말 꼭 기억해. 언제나 최후의 비밀 병기는 눈물이야.

<밤의 독백> '아름다운 연기' 중에서

진숙은 50대의 여성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 동아리 활동과 대학 4년 내내 주연을 놓지치 않았다.

졸업을 하고 당연하듯 극단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10년 내내 단역 아니면 스테프 일을 했고, 그 때 연출가인 남편을 만났다. 결혼하지 말고 배우가 됐더라면 좋았을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지은. 그리고 지은의 죽음,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온 진숙은 이때부터 연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이야기 끝의 반전이 좋았다. 50대 여성의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묘사까지 아주 잘 드러난다.

육체적, 심리적인 권태로 인해 파멸을 일으키고 그로하여금 자신의 해방을 만끽하는 진숙.

이 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고인 조사라는 배경을 두고 전개된다.

조사를 받으며 지난날을 회상하는데, 진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역순행적 구성으로서 진숙의 속마음까지 가감없이 드러난다.

완벽한 마무리보다 약간의 여지를 남겨주면서 독자에게 남은 결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투쟁 4000일을 앞두고 언론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전부 거절했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4000일을 기념하는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이렇게 하루하루가 모여서 4000일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 투쟁은 일상이었다. 기념일이 아니다. 동료들은 이야기했다.

투쟁하면서 잃어버린 것은 '아름다운 나의 20대'라고.

<밤의 독백>'길가에 서서' 중에서

자신에게 위로가 되어준 친한 친구들마저 괜한 자격지심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고, 옆에서 늘 지켜주던 남자친구마저 지쳐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은수. 10년 넘게 복직투쟁으로 가족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잃게 된 은수. 투쟁을 하며 빚까지 떠안 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의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이야기다.

<밤의 독백>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길가에 서서'.

가난, 부재, 고독이 만들어 낸 괴물들. 그 괴물들 또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무도 그걸 몰라줄 뿐이였다.

처음부터 모두 괴물이 아니다. 무거운 이야기만 담겨 있어 책을 덮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련이며 눈물겨운 사투다. 갈수록 냉엄해지는 현실이 걱정되면서도 또 다른 괴물들을 자꾸만 낳게 될까 두렵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에 행복보다 불행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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